[광기와 삶 - 송승연] 정신장애인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중 일부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가치는 중요한 삶의 목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

2년 넘게 남자친구랑 사귀었는데, 처음 사귈 때 부모님한테 얘기했더니 “우리 인연을 끊자, 너 계속 연애를 하려면.” (상대방이 비장애인인데도) 그 이유가 “너는 직업재활기관에서 10만 원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지 않냐. 그 10만 원이 일반인으로 치면 정상적인 월급이냐. 아직은 안 된다. 정상이 아니다. 너는 연애를 안 했으면 좋겠다.” - '정신장애인의 일상생활 차별경험에 관한 연구'(2018) 중.

위의 글처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정신장애인에게 사랑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과 연애, 결혼에 대해서 개인과 개인 간의 문제인 사적 영역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랑’은 계급, 빈곤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청년세대를 ‘사토리(달관) 세대’ 혹은 ‘N포 세대’로 규정한다. 사토리 세대는 자동차, 사치품, 해외여행 등에 관심이 없고 돈과 출세에도 욕심이 없는 일본 청년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청년층이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없고, 무기력하고, 무욕의 존재가 된 것이 자발적 선택일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사회적 배제와 같은 외부의 압박에 의해 ‘사랑’과 같은 자신의 기본 ‘욕구’를 타의에 의해 거세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달관처럼 보이는 무기력과 무욕은 처절하게 싸울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반발의 표현일 수 있다.

정신장애인의 현실은 어떠할까?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보건복지부)를 살펴보면 15가지 장애유형 중 정신장애는 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이 9.7퍼센트로 최하위권(13번째 순위)이며, 이는 지체장애(46.02퍼센트), 시각장애(39.53퍼센트) 등에 비해 크게 낮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비율을 보면 정신장애인은 58.4퍼센트(장애인 평균 16.9퍼센트)로 빈곤상태 또한 최악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계급과 빈곤의 문제는 정신장애인의 사랑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이탈리아 영화 ‘위 캔 두 댓'(We can do that)은 1980년대 초 '법안 180'이 통과되고, 정신병원이 폐쇄된 뒤 지역사회로 나오면서 변화하는 정신장애인의 삶을 보여 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시설에 머물러 있을 땐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일’을 통해 소득이 생기면서 억압된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존재로 바뀐다. 그들은 차를 사고, 집을 사며, 극장에 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꿈꾼다. 정신장애인 또한 무욕의 존재가 아니었음을, 사회적 배제 때문에 욕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음을 이 영화는 상징적으로 그려 낸다.

"우리 결혼해도 살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Unsplash)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배제와 사랑의 관계를 보다 더 면밀히 들여다보기 위해선 ‘사회적 낙인’과 ‘자기 낙인’의 렌즈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작용하는 사회적 낙인은 정신장애인의 ‘실업’이라는 위기와 관련하여 높은 사회적 불안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별 탈 없이 다니고 있던 직장도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부정적 사건(기사, 뉴스 등)이 보도되면 사회적 낙인이 발동되고 원치 않아도 급작스레 실직의 위기상태로 끌려 들어간다. 이러한 사회적 낙인은 자기 낙인(Self Stigma)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태도와 사회적 신념을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 자기 낙인이 사랑과 어떤 관계일까?

“글쎄. (정신장애인 스스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나는 병이 있으니 결혼도 포기하고 자식도 포기해야지 하는 생각들.” 주변에 있는 당사자에게 ‘사랑’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돌아온 말이었다. 관련 연구들에 의하면 자기 낙인은 절망감, 자존감 감소, 사기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 낙인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로 하여금 스스로 사회적 거리를 두도록 이끄는, 자발적 고립의 상태로 향하게끔 하는 것인데, 이는 결국 사랑에서 멀어지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낙인과 자기 낙인이 결합한 사례로 2005년 자신의 정신장애를 숨기고 결혼한 여성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법원이 판결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자신의 장애를 꼭꼭 숨겼던 것은 사회적 낙인과 이로 인한 차별의 두려움, 더불어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자기낙인이 결합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관점의 전환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연애와 결혼은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오히려 당사자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 퇴원해서 지역사회에서 취업도 하고 주거도 확보해서 자립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현재 연애 중인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자신의 고민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 결혼해도 살 수 있을까?” 

물론 더 이상 위험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게끔 정신장애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 미디어 보도형태의 변화를 촉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우리는 정신장애인 복지체계 구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커플은 농담 반 진담 반 “결혼해도 호적은 합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정신장애인 한 쌍이 결혼하게 되면 호적이 합쳐지면서 전체적 수급비가 줄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것’은 결국 ‘정치적인 것’이다. 그들이 끝까지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거복지, 취업지원뿐만 아니라 아이 돌봄과 같은 양육지원시스템 구축 또한 중요하다.

더불어 정신장애인 사랑의 복원을 위해선 앞서 이야기한 자발적 고립인 ‘자기 낙인’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정신장애인 혐오가 사라져야 하며, 정신장애인 혐오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양성이 인식되어야 하고, 다양성이 인식되기 위해선 모든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 집단을 위한 혐오가 사라져야 한다. 정신장애인 사랑의 자유와 평등을 외치기 위해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성소수자 집단과 모든 혐오를 몰아낼 수 있는 약자의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약 먹고 잘 자. 늦잠 자고 내일 통화하자.” 앞서 이야기한 당사자 연인이 잠자리 들기 전 서로에게 해 주는 마지막 인사다. 약은 수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신과 약물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늦잠의 의미는 약물을 복용함으로 잠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반영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한다. 모든 것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다. 자기낙인 해체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사회에 광기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온전히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