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김지환]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시카와 야스히로, 나름북스, 2016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시카와 야스히로, 나름북스, 2016. (표지 제공 = 나름북스)

세상을 뒤흔들었던 사나이

“지위의 선택에 즈음하여 우리가 주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인류의 행복과 우리 자신의 완성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그가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의 완성을 위해, 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일할 때만이 자신의 완성을 달성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서 ‘지위’는 각자 원하는 ‘직업’을 뜻하는데, 17세의 소년은 '직업 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자신의 인생관을 피력했다. 이 소년은 훗날 그 자신이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대사상가가 된다.

1818년 5월 5일에 마르크스가 태어났으니 올해 5월 5일 그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된다. 200주년을 기념해서인지 5월 17일에는 영화 '청년 마르크스'가 상영된다.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조직인 ‘화요회’도 마르크스가 화요일에 태어난 데서 유래한다. 이 불세출의 인물에 대한 많은 것은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에서 관리되었고, 인간 마르크스에 대한 수많은 뒷이야기는 가려졌다. 한참 뒤에야 인간 마르크스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되었다. 얼마 전 <한겨레>에서 마르크스가 하인 사이에 아이가 있었고, 엥겔스가 자신의 아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푸른숲, 2001)은 비교적 균형감 있게 마르크스의 생애를 다루었다 생각하는데, 마르크스 삶의 고단함을 표현하는 대목이 종종 눈에 띈다. “내가 무슨 사업이라도 할 줄 알았으면 좋으련만! 친구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사업만이 푸르네, 불행히도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네.”(“마르크스 평전”, 348-349쪽) 이때 마르크스가 철도 관련 사무직에 원서를 냈다가 악필 때문에 떨어졌다고 한다.

누군가는 ‘마르크스는 한물갔어’라는 말을 아주 용감하게 내뱉는다. 이런 용감한 발언을 하시는 분을 위해 저자 이시카와 야스히로가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은 마르크스를 아주 쉽게 소개하지만, 그에 대한 오해를 벗겨 내고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르크스가 어떠한 의미이며, 왜 그를 읽어야 하는지 역설한다.

“우리는 단순히 마르크스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마르크스를 읽는 게 아닙니다. 그의 이론을 오늘의 현실에 활용함으로써 ‘발전’시키기 위해 읽는 거죠.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이론이 뭐든 ‘올바르다’고 전제해서는 안 되겠죠. 마르크스 자신이 좋아하던 ‘모든 것을 의심하는’ 정신에 따라 21세기의 현실에 비추어 마르크스를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마르크스에 대해 ‘내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69쪽)

마르크스, 따뜻한 과학의 창시자

예전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황금시대'라는 드라마를 보면, 은행가의 아들 박상원이 친구 차인표를 찾아가는데, 거기에 마르크스 서적이 있다. 이때 차인표가 박상원에게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지식인은 마르크스 서적을 열심히 읽었을 텐데, 오히려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에 들어와서는 더 마르크스를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불온시되고 억눌렸던 마르크스주의가 한국에서 폭발한 것은 1980년대다. 확실히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마르크스는 중요한 교양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자신의 과학을 정립하기 위해 “자신의 학문 영역을.... 제한하거나 좁은 시야와 뜻을 가진 인물”이 아니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학문이라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도전하는” 사람이다.

마르크스의 과학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집중된다. 자본주의란 좋든 싫든 우리의 현실이다. 자본주의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정서적으로야 거부감이 들 때도 있지만, 마르크스도 지적했듯이 그건 역사적 구성물이다. 그는 확실히 자본을 악으로 규정했다기보다 그것의 유효성에 주목했다. 역사적으로 진보적 임무를 수행했지만, 그게 어느 순간 약발이 떨어진다는 점을 밝혀낸다. 그게 과학이다. 그 과학적 바탕 위에서 다른 세상을 그려 낸다.

많은 이는 마르크스를 상당히 왜곡해서 받아들이는데, 저자는 그런 지점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특히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자본주의의 종말과 관련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종말은 곧 인류가 멸망해 버리거나 사회가 일대 혼란에 빠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인류가 자본주의보다 나은, 좀 더 살기 좋은 다음 단계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52쪽)

또 지금은 대부분 붕괴했지만, 한때 소비에트를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과연 온전하게 마르크스를 전유했는지도 비판한다.

노년의 마르크스. (사진 출처 = ja.wikipedia.org)

“여러분도 1991년 소련이라는 나라가 붕괴된 것을 알고 계시죠?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정식 국가명인 이 나라는 오랜 기간 우리야말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모범이라고 세계에 어필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실태는 소수의 특권층이 경찰력과 군사력으로 국민을 지배하고, 동유럽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에 힘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말도 안 되는 나라일 뿐이었죠.
그렇다 보니 ‘공산주의란 소련의 체제를 말하는 것’, ‘그런 나라는 원치 않는다’, ‘마르크스는 소련 같은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같은 오해가 세계로 확산돼 버린 겁니다. 여러분은 우선 이런 사정을 제대로 파악한 후에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회론을 바르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67쪽)

정말로 마르크스만큼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된 인물이 있을까 싶다. 그는 자기 시대의 비참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던졌다. 그에게 과학은 그것을 위한 강력한 무기였다. 인류애를 기반으로 한 그의 과학은 분명 ‘따뜻한 과학’이었다. 학자이자 사상가요 혁명가였던 그에게 폭력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사실 얼토당토않은 생각일 뿐이다.

“마르크스를 한 마디로 특징짓자면 혁명가입니다. 혁명이라고 하면 무조건 ‘무섭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폭력이나 사회 혼란 같은 이미지가 겹쳐 떠오르는 분도 계실 거고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많은 이들의 합의에 근거해 가능한 한 평화적으로 사회 구조를 바꾸려 했던 사람입니다.”(89쪽)

마르크스를 읽어야 삶이 든든해진다

저자가 학자이다 보니 마르크스의 학문적 태도에 집중하는 측면이 있지만, 저자에게 마르크스는 확실히 단순한 연구의 대상을 넘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이정표이자 좋은 스승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끊임없이 지금 여기로 소환한다. 그에게 ‘마르크스라면 어땠을까?’는 매우 중요한 화두다.

“이 마르크스가 만약 지금의 일본에 살았다면 얼마나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했을까요.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청년 마르크스의 인생에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행한 일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연구도, 정치 활동도 모두 스스로 결정했거든요. 이런 마르크스의 삶의 방식을 참고해서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41쪽) “그(마르크스를 읽는―필자) 목적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지성을 연마하고 삶의 방식을 보다 충실하게 함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의 방향, 혹은 힌트를 얻는 데 있겠죠.”(160쪽)

'청년 마르크스', 라울 펙, 2018. (포스터 제공 = AK엔터테인먼트)

우리 1980년대에는 마르크스가 부흥했지만, 그것이 잘 뿌리내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를 열심히 읽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본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우치다 타츠루 선생은 저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시카와 선생은 ‘마르크스 꾼’이다. 마르크스 연구자는 죽은 마르크스에게만 관심이 있지만, ‘마르크스 꾼’은 현재를 살아가는 마르크스를 상상한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던 바를 시시콜콜하게 따져 가며, ‘맞네, 안 맞네’는 사실 무의미하다. 그의 삶과 사상에서 아직도 배울 만한 것이 많다. 반드시 사상 이론뿐만 아니라 삶과 학문의 태도 그리고 열정 등, 마르크스를 훨씬 풍성하고 다양하게 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마르크스 꾼’인 저자의 바람이겠다. 이 책은 200년 전에 태어나 격동의 19세기를 불꽃처럼 살았으며 지금도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이 인류의 스승에 대한 태도를 적시해준다. <청년, 마르크스>가 개봉되면 꼭 가서 봐야겠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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