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김지환] “신의 변명: 기독교와 유대교, 메시아를 둘러싼 왜곡의 역사”, 옥성호, 파람북, 2018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예수라는 청년이, 오래전 십자가에서 처형된 갈릴리 출신의 청년이 메시아라는 소리였다. 그가 유대 민족이 그토록 기다렸던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말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메시아를 죽인 당사자가 로마가 아니라 유대 민족이라는 것이다. 메시아를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던 유대 민족이 그를 못 알아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였다고 했다. 정작 가장 기이하고도 놀라운 말은 그 다음이었다. 유대 민족도 알아보지 못한 메시아의 정체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방인, 그것도 로마제국이라는 것이다.”(16-17쪽)

“신의 변명: 기독교와 유대교, 메시아를 둘러싼 왜곡의 역사”, 옥성호, 파람북, 2018. (표지 제공 = 파람북)

구약이 아니라 히브리 성경, 전혀 다른 두 개의 종교

사랑의 교회를 개척한 옥한흠 목사의 장남인 저자는 오랜 기간 성경을 연구하며, 그리스도교와 한국교회의 문제를 언급한 글을 써 온 소장 신학자다. 그는 기존의 성경에 대한 파격적 주장을 담은 몇 권의 저서를 이미 낸 바 있는데, 이 책 “신의 변명”을 통해 구약으로 대표되는 유대교와 신약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의 차이를 밝히고자 하였다.

성경에 문외한인 나는 한 번 읽으면서 쭉 빨려 들어갔다. 저자는 성경의 문헌비평적 방식을 통해 지난 2000년간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리스도교의 탄생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유대교에서 성경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교가 구약성경이라고 부르는 ‘히브리 성경’뿐이며, 유대교에서 히브리 성경은 오래된 과거의 약속이 아니라 ‘영원한 약속’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히브리 성경이라 표기하는데, 그리스도교의 신약과 대비할 때만 구약이라는 표현을 쓴다.

저자가 보기에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듯하지만, 전혀 다른 종교다. 같은 신을 섬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혀 다른 신을 섬긴다고 말한다. 두 종교는 전혀 다른 신관과 인간관을 담았는데 사탄, 구원, 죄, 의로움, 유일신, 율법, 내세 그리고 메시아까지, 모든 주제에 걸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가령 히브리 성경에서 사탄은 자유의지 없이 그저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천사의 역할, 직책을 묘사하는 단어일 뿐인데, 신약에서는 ‘감히’ 신인 예수를 시험하려는 누구도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로 탈바꿈한다.

에덴동산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인간관을 드러내는 대표적 예로 제시된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그리고 원죄가 여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교는 에덴동산에서 비극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성장과 독립을 읽어 낸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에덴동산 교리를 따라가면, 노동과 출산은 죄의 대가가 되고 만다. 하지만 유대교의 해석에 따르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타락해 죄로 오염된 유전자를 가진 게 아니라, 오히려 독립함으로써 주체적 유전자를 갖게 되었다.

구원은 유대교에서는 언제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위기처럼 ‘당면한 현실의 위기’에서 구원이다. 또한 극심한 육체적 고통일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리스도교가 내세 지향적이었다면 유대교는 현세 지향적이다. 저자는 사탄, 인간, 유일신, 내세 등을 통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믿는 하느님이 전혀 같을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는데, 메시아 문제는 두 종교를 결정적으로 가른다고 한다.

예수는 어떻게 메시아가 되었나?

유대인에게 메시아는 미래에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게 해 줄 해방자다. 언제나 메시아를 기다렸던 유대인에게 예수를 받아들이게 하려면, 예수는 메시아가 되어야만 했다. 저자가 보기에, 신약성경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게 하려고 히브리 성경을 살짝살짝 조작하고 왜곡해서 만들어진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메시아 조작기’ 또는 ‘메시아 조작의 추적기’인 셈이다.

신약의 저자는 예수를 메시아로 또는 신으로 격상하기 위해 구약의 많은 부분을 가공하는데, 4복음서 중에서는 특히 요한 복음의 저자가 가장 노골적이라고 한다. 로마 시대 다른 종교와 경쟁하려면 그리스도교의 신은 아주 매혹적이어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예수의 조상이 다윗이어야 했던 족보, 나사렛을 떠나 머나먼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탄생 이야기, 처녀 수태 등 상당 부분이 끼워 맞춰졌다는 것이다. 구약의 수많은 이야기가 마치 예수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식으로 엮다 보니 다소 어거지 식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원래 유대교에는 이원론적 요소가 전혀 없었으나,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현실을 ‘실질적 이원론’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유일신론에 그리스의 다신론을 교묘하게 섞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적 모순이 생기며, 그리스도교 교리가 가진 수많은 모순의 근본 원인이 된다. 하지만 애초에 그리스도교가 그런 이원론을 채택하지 않았더라면, 이원론에 익숙한 로마제국의 종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지난 2000년간 서구사회를 지배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현실과 교리 사이에 근본적 모순이 생긴다.

메시아가 육신을 입은 하느님 자신, 예수였다면 왜 하느님은 그 중요한 사실을 당사자인 유대민족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오히려 로마제국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메시아를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던 유대 민족이 그를 못 알아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였다고 했다.

저자는 히브리 성경이 왜곡되는 과정에서 반유대주의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사실 예수는 로마 당국에 의해 반란죄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처형받았음에도 ‘예수를 죽인 유대인’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다. 신약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에 다소 호의적인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빌라도는 너무 극악무도해 로마에서도 꺼리던 인물이다. 반유대주의적 정서는 루터에 의해서 증폭되었고, 훗날 나치는 이를 더욱 악랄하게 정치적으로도 악용한다. 20세기의 비극인 유대인 대학살이 벌어지고 만다.

맹목적 믿음에서 삶으로, 내세의 문제에서 현세의 문제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영감을 전해 준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 성경 왜곡의 역사이면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서의 성격을 갖는다. 저자가 보기에 그리스도교는 히브리 성경과 연속성이 아니라 단절이며, 유대 민족의 영원한 약속을 철 지난 약속(구약)으로 치부하며 전혀 성격이 다른 종교로 태동한다. 일반 그리스도인이 보기에 저자의 주장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전제를 허문다고 느껴져 위험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신성모독적이며 사탄의 계략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매우 설득력 있게 전개하지만, 그리스도교는 나름 탄탄하게 교리를 다져 왔을 것이다. 그것은 좀 더 전문적이고 복잡한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혹여나 거부감이 있더라도 이 책 곳곳에 스며 있는 저자의 메시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새겨들을 만하다.

이 책의 기본 논지는 개신교 교회개혁에 목소리를 높였던 저자의 입장과 맞닿은 측면이 있다. 그리스도교가 갖고 있는 폐단과 한계를 성경 이해와 교리에서 찾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은 그리스도교인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지만, 현재 그리스도교의 폐단과 관련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저자가 보기에 유대교의 핵심 메시지가 그리스도교에서 와서는 상당 부분 거세되고 만다. 저자는 히브리 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결코 뼛속까지 타락하지도 않았고, “하느님 보기에도 ‘좋을 정도로’ 아주 잘 만들어진, 창조주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위대한 존재다. 사탄에게는 없는 자유의지도 갖고 있다.”

창세기 첫 장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원죄론은 사실 아우구스티노에서 정착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도 비판하는 바다. 저자에 따르면, 죄로 범벅이 된 그리스도교의 부정적 인간관은 교리적으로 자신의 모든 탓을 사탄에게 돌리는 책임 회피의 효과를 낳는다. 그러면서 삶을 외면한 채 막연하게 믿음의 문제로만 돌린다. 그리스도교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현실에서 답을 찾는 대신 미래로, 천국으로 미룬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아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라는 ‘비참한 인간관’은 무려 2000년 가까이 서구 사회를 지배 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핵심 메시지에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열려 있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사실의 이야기라기보다 그 이야기가 가리키는 사건의 핵심을 이해하고, 그 진실을 통해 자신을 변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러니까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교인은 축자적 믿음을 갖고 살아가지 않는다. 그런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본다면, 그리스도교를 바라보는 더 넓은 시선과 통찰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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