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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자본주의라는 제3의 길 제시한 제3의 신학”[인터뷰]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 역자 주원준 박사

“저는 자본주의와 세계 경제가 실질적으로 인간의 얼굴을 갖추는 데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가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이 책을 썼습니다.... 우리는 진보에 대해 새롭게 사고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형제애를 새롭게 숙고하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장기적으로 볼 때 전체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잡는 일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믿습니다.”(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 한국어판 서문)

현재 독일 주교회의 의장이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 개혁을 위해 설치한 특별 기구 ‘6인 추기경 평의회’(C6, 9인 추기경회에서 6인으로 바뀌었다)의 일원으로 교황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

그는 2008년 세계 경제 공황의 상황에서 인간 존엄을 파괴하는 경제 질서의 회복을 호소하며, 새로운 경제 체제, ‘질서 자본주의를 제안했다. 2008년 독일에서 초판된 이 책은 10년의 시간을 지나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출판됐다.

“저는 귀하(칼 마르크스)의 날카로운 관찰과 사상을 존경하지만, (인간을 망각했고, 인간의 자유를 망각했다는 의미로) 결국 귀하의 이론에 반대합니다....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정치적 규범을 통해 틀을 만든 다음, 사회적 시장경제로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바른 길입니다. 이런 근거로 저는 사회적 시장경제와 멈출 줄 모르는 자본주의 간의 차이를 분명히 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세상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효율성뿐 아니라 정의도 이뤄야 한다는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 (주원준 옮김), 눌민, 2020. (표지 제공 = 눌민)

이 책의 서장은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에게‘라는 제목의 서한 형식이다. 서문을 대신한 이 장에서 마르크스 추기경은 칼 마르크스를 존중하면서도, 그가 내세운 이론의 실패를 분명하게 짚고, 폭력 혁명이 아닌 또 다른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 개혁의 방향과 원천은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비롯된다.

“마르크스에게 정치적 자유주의로 획득한 자유권은 오직 형식적 자유를 보장할 뿐이었다. 그것은 ’추상적 국가 시민‘의 권리일 뿐 실제로 인간 삶의 조건, 특히 산업 노동과 완전히 분리됐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책에서 먼저 자유를 비롯한 개념들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가톨릭 사회교리 입장의 분석, 성경을 통한 경제와 사회적 정의가 무엇인지 말한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인간 삶과 그 조건(노동, 경제)에서 분리된 추상적 자유를 비판하면서, 가톨릭 사회교리로 보는 참된 자유란 자본과 경제인들의 무한하고 고삐풀린 자유가 아니라 경제 활동에 모든 이가 참여하고 누구도 삶을 위한 경제 활동에서 배제되지 않을 자유,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 존엄을 누릴 자유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의 무한 자유로 인한 인간성 파괴를 조목조목 제시한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 벌어지는 인간성 말살에 가까운 노동 착취, 자본의 무한 증식, 배제하고 배제되는 삶들을 목격하고 분석하는 마르크스 추기경은 현장의 현실과 가톨릭 사회윤리 이론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사목자이자 학자로서 그 모든 것은 교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통합되며, 물 흐르듯 전달한다.

그리고 묻는다. “원시적이고 무한정한 자본주의를 반대하지만 시장경제 체제를 허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할까?”

“경제를 위한 가정이 아니라 가정을 위한 경제”
“자본보다는 노동이 우위에 있다”
“인간이 경제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인간에 봉사해야”

이 책을 번역한 주원준 박사(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는 이 책을 번역한 동기에 대해, 한국 교회에서 사회교리를 다루는 방식에 안타까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너무 회칙 위주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너무 어렵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현실을 사회교리에 입각해 설명하고 풀어주며, 영감을 주는 책이 필요하다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회칙과 구체적 현실 세계, 교리를 모두 꿰뚫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주 박사는 “마르크시즘을 역사의 큰 눈으로 보도록 초대하며, 마르크시즘을 쉽게 받아들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내치지 않으면서 잘못된 것을 가리고, 계승할 것을 찾고 있다”면서, “가난한 이들이 제 몫을 받도록 지식인, 종교인 그리고 모든 이가 참여해서 노력해야 하며 바로 이것이 가톨리시즘이라고 안내한다”고 설명했다.

주 박사는 책의 부제이기도 한 “질서자본주의”에 대해 “창조질서, 사회교리의 질서”라며, “창조 때 하느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한 창조질서가 발현되면 생태적으로, 인간 관계 안에서도 모든 것이 온전할 것이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이상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피할 수 없다면 자본주의의 나쁜 것을 줄이도록 운영해야 하고, 그것이 질서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마르크스 추기경이 강조하는 것은 질서, 새로운 질서입니다. 2008년 경제 위기 때 목격했던 신자유주의와 기업 자유의 극대화, 그리고 시장만능주의의 결과는 결국 원시 자본주의로 돌아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칼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그 시대입니다. 또한 질서의 파괴이기도 하고요.”

주원준 박사는 “노동과 삶, 존엄에서 벗어난 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을 생각하자는 것에서 출발해, 현재의 단점을 극복, 보완하는 질서 자본주의로 귀결된 것”이라며, “정부가 정책으로 질서를 바로잡고, 또한 모든 자리에 있는 구체적 시민들이 참여해서 사회를 점검하고 들여다봐야 한다는 요청이다. 이런 질서 자본주의에서는 필요하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정책을 같이 쓸 수도 있으며, 여기에는 (이념적) 좌도 우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번역한 주원준 박사는 마르크스 추기경이 세계 경제와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며 쓴 책의 내용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주류 신학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이것이 주류 신학이다”

주 박사는 마르크스 추기경이 제시한 현 시대 분석과 제안은 새로운 주류 신학이며, 이러한 신학을 통해 미래를 탐색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 책의 내용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세계적 대가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사회교리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분석하고, 또 적용하고 있는지, 이론과 사목 현장을 어떻게 통합하는지 보여 주고 있다. 신학의 폭은 이렇게 넓고, 또 이것이야말로 신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사회교리를 요청하는 이들이 여전히 해방신학에 경도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읽으며, 교리에 비춰 새롭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책 속에서....

"나는 이 책이 반대를 포함하여 토론을 더 부추기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기초 토론이 필요하다. 인간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기능하는 사회적 배제의 메커니즘이 교회 내부로 연장되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공동 책임을 지고 있다."

”가톨릭교회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 사회윤리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사이에 ’제3의 길‘을 형성한다고 자주 말한다. 가톨릭사회학자들은 이 ’제3의 길‘에 대해서 독특한 개념을 하나 개발했는데, 바로 연대주의다.“

"인격적 존엄성을 지닌 인간 자체야말로 목적이며, 시장은 인간에게 봉사하는 도구일 뿐이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를 혁신한 20세기 선구자들도 바로 이 점을 정확히 보았다. 1938년 파리에서 열린 ’월터 리프만 콜로키움‘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알렉산더 뤼스토프는 경제란 ’인간성에 봉사하는 시녀‘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얘기하자면 나는 ’예수의 마음을 지닌 마르크스주의자‘편이다."

"오늘날에도 새로운 연대를 가능하게 하려면 자기책임성이 더 많이 요구된다. 자기 스스로를 책임지는 일과 타인, 공동체를 책임지는 일은 서로 연결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는 시민한테서 자기책임성을 빼앗으면 안 된다. 국가는 시민이 자기책임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건설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강력한 국가를 변호한다. 국가는 시민 각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공동체를 위해 신뢰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야 한다."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활동에서 공동의 목표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배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는 도덕적으로 요청될 뿐 아니라 만인의 경제적 이해이기도 하다.... 경제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계산하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윤리적 계명, 다시 말해 ’사회 정의‘라는 계명을 보기 때문에 말한다."

"우리는 시장경제가 질서의 틀안에서 존재하도록 일해야 한다. 공동선을 지향하고 제대로 기능하는 복지국가에서 제도화된 연대성의 공간을 보장하고, ’국제공동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로 보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자체로 윤리적으로 합당하다. 그러나 세계화된 세상에서 정치경제적 격변은 한계 없이 퍼져 나가고 있고 국제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에, 세계적 연대성이라는 윤리적 요구는 정치적 지혜이자 명령이 된다."

"세계적인 연대성과 정의를 위해 일하는 것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사명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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