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사제 평가제를 검토할 때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 공론화가 시작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뜬금없는 말은 아니다. 오래 고심했다.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그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냐?”는 동료나 선후배의 비난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다. 인정한다. 퇴직하고서야 비로소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게 조금은 슬프고 미안하다. 나의 고질적인 게으름 탓이 작지 않다.

조심스럽게 평가제를 꺼내는 이유는 이렇다. 지금까지 교회(성직자)의 개혁과 쇄신을 누차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종용하고 기대했던 면이 컸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의 성직자라는 특수한 신분을 십분 고려한 주문이었지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교회와 사회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외부의 압력 또는 충격이 필요한 이유다. 일시적이고 개별적인 느슨한 형태가 아닌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교회의 언론이 실제로 본연의 사명인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못(안)하니 더 그렇다. 사목자에 대한 평가제의 도입은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그들이 안하무인, 무사안일의 자세를 낮추고 추슬러서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에 쏠리는 교회 안팎의 이목을 두려워하고 자중 자숙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 감시와 비판을 통한 견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종교만은 해당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가설은 설득력이 없다.

“조직 인간이 조직의 안전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이 내부 견제나 감시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절대화되면 바로 그 이유로 조직이 망한 사례가 무수히 많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반대로 망하지 않고 더욱 발전하면 그런 조직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좀먹기 마련이다.

-중략- 우리는 어떤 조직이나 집단의 조폭문화가 사회적 스캔들로 비화하면 분노하지만, 우리 자신도 가담하고 있는 조직에 대한 충성문화의 본질을 비켜 가면서 이른바 ‘내로남불’의 심리적 위장 평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인정하자. 조직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다. 구성원의 자격에 엄격한 제한을 두면서, 조직의 무한성장을 추구하고, 조직의 이익을 구성원만 독점하고, 조직 내외의 비판에 조직의 이름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격렬하게 대항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폭력’ 그 자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모든 조직을 없애야 한다는 유토피아로 나아갈 필요는 없다. 조직의 폭력적 속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대처를 제도화하고 문화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강준만, <한겨레> 2018. 2.12. 칼럼, ‘조직은 폭력이다’ 중에서)

가톨릭 교리는 전통적으로 교회란 ‘하느님의 백성’, ‘죄인들의 집단’이라고 가르친다. 그런가 하면 현실의 교회는 여전히 성직자가 각종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폭력적일 수 있는 크고 탄탄한 수직 조직이다. 강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다. 우리 교회도 사목자들에 대한 상시적인 평가제 도입을 제안한다. 없던 제도를 만들고 실행하는 것은 힘겨운 작업이고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검토와 논의조차 안 되나? 시작이 반이다.

호인수 신부의 '열린 교회로 가는 길' 시리즈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빛두레>에 실린 다음 주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전재되고 있습니다. -편집자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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