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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제가 가난하지 않다는 거야 2[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문제는 사제가 가난하지 않다는 거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깜짝 놀랐다. 내가 ‘빛두레’ 1360호에 쓴 칼럼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열흘이 넘게 ‘많이 본 뉴스’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요즘 인천교구의 병원을 비롯한 천주교회의 기관들이 보이는 부끄러운 추태가 근본적으로는 사제가 가난하지 않은 데 기인한다는 나의 지적에 공감하는 독자가 그만큼 많은 건지, 아니면 그럴 만한 또 다른 까닭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는 댓글이나 메아리가 없으니 더하다. 하지만 지대한 관심을 끈 건 분명해 보인다. 내친김에 지면 관계상 못했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

지난 1월말에 우리나라의 3개 종단에서 쇄신과 개혁을 바라는 몇몇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모인 ‘이게 종교냐-자성과 혁신 연대’(가칭)가 주최한 워크숍이 서대문의 한 조그만 회의실에서 열렸다. 천주교의 발제자 심현주 박사는 인천교구의 병원과 대구교구의 복지시설을 거론하며 운영의 민주화와 재정의 투명성을 위하여 교구마다 감사위원회의 설치를 요구했다. 개신교의 박경양 목사는 대형교회의 세습, 교회의 성장주의, 계급주의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장로가 되는 데 수천만 원, 권사는 수백만 원이 든다는 의미의 장수천, 권수백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정의평화불교연대의 이도흠 교수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는 조계종 총무원장이나 큰 절의 주지를 선출하는 데 거금이 오가는 등 갖가지 적폐가 넘쳐난다고 폭로했다.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4시간이 넘도록 진지하게 발표하고 토론한 내용은 묘하게도 거의가 성직자가 관련된 돈 문제였다.

개신교의 목사에게는 소중한 자식이 있다. 평생 피땀으로 일군 알토란 같은 교회며 신도들을 내 핏줄을 외면하고 생판 남에게 거저 내주는 건 너무 아깝다. 날밤을 새우며 고민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도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저명한 고승이 아닌 무명 스님이라면 점점 나이 들고 몸이 쇠약해지는데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하다”(루카 16,4)는 생각이 왜 안 들랴.

천주교 사제에게는 하나라도 더 챙겨서 물려줘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자손이 없다. 궁핍하지 않은 노후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뿐 아니라 죽는 날까지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갈 일이 없다. 개척교회의 목사처럼 춥고 배고프거나 스님들처럼 나이 드는 게 불안하지 않다.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은 누구도 벗지 못하는 필생의 멍에니 유독 사제의 독신제가 돈을 모아 장롱 깊숙이 감춰도 좋다는 면죄부는 될 수 없다.) 등 따습고 배부른 목자의 눈에 양들은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는 이게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 학교를 마치고 사제가 된 후 / 먹을 게 없어 분식집 앞을 서성이거나 / 신을 게 없어 구멍 난 양말과 / 밑창 새는 구두를 버리지 못한 적 없었다 / 보고 싶은 책이나 영화를 못 보고 / 차비가 아까워 팍팍한 십리 길을 걷고 / 여관비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거나 / 하고 싶은 여행을 못해본 적 없었다 –중략- 가난은 오늘도 남의 말 / 행복은 여전히 멀다” (졸시 ‘나는 가난하지 않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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