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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여성은 도우미일 뿐인가[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자료사진. ⓒ강한 기자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이 종교계라고 비켜 가지 않았다. (최근에 잠시 주춤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순전히 남북정상회담 덕분이다) 그나마 개신교나 불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덕성을 인정받던 가톨릭이 맨 먼저 도마 위에 올랐다. 안팎으로 충격은 컸고 주교회의를 선두로 각 교구는 뒷수습과 예방책 마련을 서두르는 품새다. 성직자는 물론, 직원들을 상대로 인성교육을 의무화하고 성교육을 새로 한단다. 교회가 직접 피해자 신고센터를 개설해서 민원을 접수한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름의 노력을 보여 주기 위한 단순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원인은 거기에 있지 않다.

지금까지 밝혀진 각종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은 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불미스러운 추태나 실수로 볼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남성의 횡포, 힘없는 사람에 대한 권력자의 인권 유린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권력자가 저지르는 치사한 갑질 가운데 하나다. 죄악이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행태도 다르지 않다) 권력이 없는 사람은 미투운동의 대상이 되려야 될 수 없다. 그래서다. 이 문제는 권력의 목표가 지배가 아닌 섬김이라는 복음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자,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자. 나는 이미 15년 전, <영성생활>에 기고한 칼럼에서 교회에서 여성은 더는 기쁨조도 아니고, 도우미도 아니라고 썼다. 그럼에도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우리가 본당이나 교구에서 쉽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실례를 든다. 여성 사제직 같은 거창한 문제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쉬운 것,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보고 고쳐 가는 게 순서다.

하나, 본당에서 미사에 참례하는 남녀 신자의 비율은 보통으로 3대7 정도인데 가장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목협의회의 회장은 다 남성이다. 여성은 항상 부(副) 자가 붙은 보조자에 불과하다. 남녀 혼성으로 구성된(혹은 여성이 대부분인) 제 단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여성은 선천적으로 능력 부족, 자격 미달의 존재인가?

둘, 어느 본당이든 성체 분배자는 주로 남성, 그것도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다. 동작이 민첩하고 씩씩한 젊은이는 찾아볼 수 없다. 식사 때에 식구들 가운데 제일 어른인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밥을 퍼 주는 가정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유독 성당에서 성체를 나눠 주는 일은 남성 ‘어르신’이 해야 할까? 왜 여성은 터부시될까? 여성은 불결하다는 터무니없는 선입견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됐나? 여성도 같은 여성 분배자 앞에는 줄을 안 선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데 수녀는 괜찮단다. 뒤죽박죽,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더 하자. 교회의 각종 행사장에 한복 부대(?) 여성들이 무더기로 동원되는 관례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한복을 차려 입은 채 땡볕에 땀 흘리고 찬바람에 얼굴이 새파란 여성들의 모습은 안쓰럽다. 여성 신자들의 자발적 봉사 활동이라는 설명에서 오히려 일찍부터 가부장적인 성직자 중심주의에 길들어 있는 한국 천주교회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 한국인 고유의 정서와 전통을 핑계로 낡고 보수적인 사고의 틀을 유지하고 싶은가?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성모님을 더욱더 찬양하고 기리자는 오월이다.

호인수 신부의 '열린 교회로 가는 길' 시리즈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빛두레>에 실린 다음 주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전재되고 있습니다. -편집자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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