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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대리를 선출직으로[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가톨릭에서 미사 드리는 모습. ⓒ강한 기자

우리나라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다. 어둡고 긴 군부독재하에서 수많은 의인이 귀한 목숨을 바치고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룬 결과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국민의 충복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천만에! 오산이었다. 오랜 세월 복종에 길든 우리 서민들은 권력의 속성을 잘 몰랐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뽑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나란히 감옥에 보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빤한 진리를 늦게나마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불행이며 다행이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총리 지명자는 국회의 까다로운 청문회를 거쳐 과반수 임명 동의를 얻어 내는 매우 어려운 시험대를 통과해야 비로소 합법적인 권한이 부여된다. 총리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란 착각에 빠져 있다면 국민은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한 바다.

가톨릭 교회에서 교구장 주교는 교황이 임명하는데 그 절차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간혹 사전에 사제들의 의견을 개별적으로 묻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한정된 소수다. (나는 지금껏 그런 질문지를 받아 본 적이 없다) 교구장은 교회법적으로 교구의 모든 권한이 주어진 최고 책임자다. 성사집행은 물론 인사, 경제권까지 한 손에 쥐고 있다. 사제는 교구장의 명을 받아 그가 허락하는 제한된 권리를 행사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신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40여 년 전, 내가 신품을 받을 때만 해도 인천교구청에는 교구장과 상서국장이란 직함의 사제 한 명(본당주임과 겸직)밖에 없었다. 사제와 신자가 단출해서 그랬을 터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교세가 빠르게 확장되면서 교구장은 교구청에 운영과 관리 감독을 위한 여러 분야의 부서를 두고, 관할구역을 소단위 지구로 나누어 책임자를 임명하고, 그들을 총괄하는 총대리를 임명했다. 총대리는 총리에 해당하는 직책이랄까?

우리나라에는 주교가 한 명만 있는 교구와 둘 또는 여럿인 교구(서울, 대구, 광주, 수원 등)가 있다. 주교가 둘 이상인 교구들은 주교가 총대리다. 보좌주교가 교구장 승계권이 있는 부교구장이면 반드시 그가 총대리직을 맡지만(제주) 승계권이 없을 때는 권고 사항일 뿐이라는 게 교회법 전문가의 설명이다. 보좌주교가 없는 교구는 사제들 가운데 한 명이 총대리가 된다.

교회의 조직원이 교회법을 어기거나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제안한다. 교회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총대리를 선출직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정 미덥지 못하고 불안하다면 총대리 후보자를 2배수 3배수로 뽑아 추천한 가운데서 최종적으로 교구장이 지명하는 것은 어떤가?

덧붙여 제안한다. 인천교구는 언제부턴가 사제들이 지구장을 뽑는 투표는 하되 결과와는 무관하게 교구장이 임의로 임명한다. 전례 없던 일이다. 선거제를 왜 슬그머니 임명제로 바꿨는지 이유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대리구를 둔 교구(대구, 수원)에서도 대리구장은 선출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 발짝이라도 열린 교회로 가 보자는 충정이다. 결정은 전적으로 교구장 주교의 의지에 달렸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남과 북의 철조망이 바야흐로 걷히고 있지 않나.

호인수 신부의 '열린 교회로 가는 길' 시리즈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빛두레>에 실린 다음 주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전재되고 있습니다. -편집자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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