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지난 2월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여정 특사가 함께 북한 예술단 공연을 관람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눈이 온통 강원도 산골짝 평창에 쏠려 있는 때입니다. 어느 나라의 누가 메달을 따느냐가 관심거리지만 그보다 더한 이슈는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북한의 등장이 아닌가 합니다. 남북단일팀이 급조되고 북의 예술단과 응원단이 와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스포츠와는 또 다른 감동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북의 고위급 인사들이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최고지도자의 친서를 전달하며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는 여운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이 열기가 가시기 전에 애타는 심정으로 주교님들께 한 말씀 올립니다.

인터넷을 뒤져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이하, 주교회의)의 임무를 찾아봤습니다. “주교회의는 이 땅의 복음화와 공통 유익의 증진을 위하여, 특히 국가와 시대 상황에 가장 적합한 사도직 형태와 방법을 참작하여,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고 연구, 협의하며 교령을 결정하고 이를 집행한다. 보편교회와 한국교회의 공동선을 위하여 할 것들이나 사도좌에서 요청한 것들을 다룬다.”

한동안 북핵 문제로 인한 북미의 설전이 극도로 험악해지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한반도는 연일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천운입니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절호의 기회입니다. 바로 지금이 한국천주교회의 최고기관인 주교회의가 평화를 말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는 지금 이 시기에 무슨 말씀을 하실까 깊이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간절한 염원이 화해와 평화라는 복음을 혼신의 힘을 다해 남과 북에, 미국과 일본에 선포해야 합니다. 둘이나 셋을 넘어 7000만 동포의 함성과 기도를 호소해야 합니다. 유보하거나 전가해서는 안 될 예언직의 수행입니다.

제가 특별히 주교회의에 간청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교황의 말씀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분이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이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의 한 교구장인 호르헤 주교라면 그만한 파급 효과가 있겠습니까? 살벌하던 군사독재 시절에 신자들은 물론, 많은 국민에게 힘이 되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찬가집니다. 대표성도 권위도 없는 지방의 일개 사제나 신자들이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아무리 큰소리로 외친들 들어 주기나 하겠습니까? 명실 공히 한국가톨릭을 대표하는 주교회의가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주교회의가 보이는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침묵이 안타깝습니다. ‘신천지’에 현혹되지 말라는 등, 소극적이고 체제 수호적인 가르침 외에는 별로 들리는 게 없습니다. 어렵게 남한 인구의 10퍼센트를 넘어선 신자들이 분열되어 반목할까 염려되십니까? 예수는 당신 때문에 사람들이 갈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요한 7,43) 오히려 당연시하신 것 같습니다.(루카 12,51) 혹, 주교회의가 관여할 바 아닌 정치문제라거나 감당하기 힘든 멍에라 생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기약도 없이 져야 하는 무거운 짐은 시지프스의 신화를 연상케 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저의 제언이 지나치게 당돌하거나 도에 어긋난 짓이라면 용서하십시오. 반 복음적이라면 당장 거두겠습니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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