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교회비평 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설조 스님을 살려야 한다[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스님이 너무 힘드시니 한 2-3분 정도 짧게 인사만 드리고 나오는 게 좋겠습니다.” 지난주 조계종 적폐청산과 개혁을 위해 장기간 단식을 하고 있는 설조 스님을 개신교, 불교, 천주교 인사들이 연대 방문했을 때 불교 측에서 나온 제안이다.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88살이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나이인데 그토록 오래 단식을 해 오고 있으니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터였다. 이제 단식 35일을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단식을 계속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목숨을 건 필사의 단식’이다. 무엇이 스님을 이렇게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인가. 7월 18일 ‘3.1 100주년 종교개혁연대’ 대표자들이 설조 스님을 방문한 바로 그날 불교계 시민단체는 <한겨레>에 ‘조계종 개혁’, ‘파계 의혹 있는 권승 퇴진’, ‘설조 스님 단식 중단과 이후 종단개혁 도모’ 등을 내용으로 하는 큼지막한 광고문을 실었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스님에게는 번잡스럽고 지나친 기우였을까.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노출된 천막 안으로 들어갔을 때 방문객들은 노스님의 풍채와 표정, 작지만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에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단식 중인 설조 스님. (사진 출처 = 3.1 100주년 종교개혁연대)

“불교는 언로가 막혀 있기도 하고 깊은 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환자임을 의식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회생이 어렵습니다. (현 조계종의 권승들은) 사부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이들은 이상한 변이를 통해 출구를 잘못 찾아 나온 일종의 변종들입니다. 누군들 집안의 추한 것을 냄새 피워 다 알리고 싶겠습니까.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나아질 희망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집안 사정을 토로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누가 잘못 되었다’고 얘기하는 것도 죄이기도 하니 불쌍하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종교의 탈을 쓰고 종교인뿐 아니라 비종교인에게 더 이상 해악을 주지 못하도록 힘을 모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설조 스님 녹취록, 2018. 7. 18. 황경훈)

예상보다 10분을 더 있다가 물러나온 종교개혁연대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단식을 중단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스님의 건강을 걱정했다. 설조 스님이 조계종단 개혁에 대해 말하고 행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에 조계종단 개혁회의 부의장을 맡을 정도로 종단 자정과 개혁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역부족이었고 끝내는 목숨을 건 필사의 단식투쟁을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조계사 마당 한가운데서 벌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신학연구소와 13년째 연대활동을 해 오고 있는 ‘참여불교 재가연대’의 태동과 활동이 조계종 개혁과 자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데서 보이듯이, 그러나 이 문제는 오래 묵은 것이다. 지난해 10월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금권 선거 논란이 불거지고 현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허위 학력과 숨겨 둔 딸 문제 등 의혹이 제기되었다. 급기야 대표적 탐사보도인 'PD수첩'에 조계종 총무원장, 교육원장 등이 연루된 구조적 비리가 두 차례나 방송되면서 일반인들은 불교의 부패상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백기완 선생을 비롯해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 평화를 위해 노력해 온 시민사회 원로들이 ‘설조 스님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하고, 조계종의 비리와 불법행위를 정부가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조계종의 적폐청산은 종교 내부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민주화의 하나라는 데 뜻을 모았다고 했다. 민주화운동의 원로선배들은 이 자리에서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결탁한 자승 총무원장 체제에서 10년 동안 2500억 원의 국고예산이 투입되는 전통사찰 방재시스템 사업을 수사한 검찰은 결과를 발표하고,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수년 간 수백억 원의 템플스테이 비용이 정부 보조금으로 집행됐지만, 배임과 횡령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어 문화체육관광부와 감사원의 감사를 강력히 요구한다.”(서현욱, 시민사회원로 “정부 방관 말고 조계종 비리 수사하라”, 뉴스렙, 2018. 7. 19.)

설조계종 적폐청산과 개혁을 위해 단식하고 있는 설조 스님은 단식한 지 30일도 더 지났다. (사진 출처 = 3.1 100주년 종교개혁연대)

이웃 종교의 일이라 내 일처럼 말하기 저어되는 바 없지 않지만, 어찌 자승 전 총무원장만으로 불교 적폐문제를 끝낼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불교는 그 오랜 세월 억압과 차별에 시달리고 1980년대 법난이라는 군부의 폭정을 겪었음에도 이 나라와 민중에게 봉사할 호기를 이러한 부정부패로 배반하려는가. 사회원로들과 종교개혁연대 대표들은 한국의 주요 종교인 개신교, 불교, 천주교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식민지 때부터 이어 온 적폐청산에 실패했으며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종교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 거대한 조직적 범죄 앞에서 ‘내부 고발자’ 설조 스님은 단독으로 맞서 인연으로 받은 생명을 한 켜 한 켜 내려놓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입이 아니라 온몸으로 설파하고 있다. 연꽃이 흙탕물에서야 비로소 피어나는 이치를 모르는 바 아니나, 촌각으로 타들어 오는 배고픔의 고통을 밑천으로 하는 단식투쟁은 복마전의 이 상황에 비해 너무도 고귀한 대응이 아닌가 말이다.

종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진리를 보고, 영원히 살 것 같은 삶보다는 그것도 사라지고 죽어간다는 죽음 쪽에서 삶을 보기에 사회에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한 종교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기에 기성 종교들이 이미 자정의 힘을 다 잃어버렸다면, 그리하여 썩어 가고 있다면 이제 남은 일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내부의 ‘의인’들과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환부를 도려내는 대수술을 감행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부위가 너무도 크다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겠지만 달리 도리가 있겠는가? 종교의 자리는 삶이고 그 삶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차별을 두지 않으므로 온전히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성별, 귀천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삶을 되돌려 주는 일에 복무해야 하며, 바로 여기에 종교개혁과 운동의 목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고 있는 설조 스님은 그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야 한다. 스님의 생명은 그 자체로 귀하며 우리 종교개혁 운동의 생명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