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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정신장애인 억압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가?[광기와 삶 - 송승연]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강해지고 있다. 그것은 무조건적 긍정성을 추구하는 사회, 반대로 말하면 일말의 부정도 허용치 않는 사회다. 다이어트는 기본이며, 요가부터 필라테스는 꾸준한 자기관리의 표상이 되었다. 백옥주사, 신데렐라 주사 등 각종 주사, 보톡스, 성형수술, 지방흡입은 옵션이다. 비단 신체건강에 대한 완벽함뿐 아니라 이제는 정신건강에 대한 완벽함도 추구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이러한 현상을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자기착취라고 설명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부정성이 배제되고 타자의 명령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명령으로 주체를 마모시킨다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할 때, 혹은 긍정성과 부정성으로 나누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정상과 긍정성을 이상적인 목표로 놓고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내가 덜 노력했기 때문에 더 스스로를 옥죄고, 채찍질하게 된다.

긍정성을 향한 맹목적 추구는 부정성 혹은 비정상으로 구분되는 범주에 대한 배제로 나타난다. 과거에는 그 배척이 명확했다. 1939년 히틀러는 우생학적 사상에 기반하여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을 강제로 안락사시키는 T-4 작전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7만 5000명이지만 최대 20여만 명의 장애인이 학살됐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정상이라고 지칭되는 범주에서 벗어난 집단에게는 정신의학적 꼬리표가 붙었다. 예를 들어 여성과 히스테리스의 관련성이 있다. 

히스테리(Hysteria)는 ‘자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론(hysteron)에서 유래한다. 히스테리가 자궁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것은 고대에는 자궁이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장기로 보았기 때문이며, 이러한 ‘방황하는 자궁'(wandering womb) 개념은 여성의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자궁적출술(Hysterectomy)과 같은 극단적 치료법도 시행하였다. 또한 1851년에 미국 정신과 의사 사무엘 카트라이트는 흑인 노예가 탈주하려 하는 경향을 ‘드라페토매니아'(drapetomania)라는 일종의 정신병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불과 50년 전에만 해도 호모섹슈얼리티는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 규정된 공식적 정신질환이었다. ‘성 불쾌감’이라는 질환은 DSM이 5번째 개정판이 나올 때까지 살아남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성 불쾌감’ 질환의 선별 질문은 “당신은 잘못된 성으로 태어났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다. 역사적으로 여성, 흑인, 동성애자는 정신의학에 의해 비정상으로 규정된 경험이 있는 집단이다.

그러나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점점 더 긍정성의 과잉이 가속화되면서, 비정상으로 인지되는 부정성을 배척하는 것은 당연시되고 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불분명하고, 모호하고, 투명해졌다. 왜 지금, 정신장애인 차별 문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가?

다소 뜬금없지만 이 칼럼의 제목은 ‘정신장애인과 삶’이 아니라 ‘광기와 삶’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광기’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썼다. 이는 지금 정신의학체계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정신장애인의 억압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심리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물질적 고통 및 궁핍은 분명 있다. 그러나 서구화된 정신의학 기반인 의료모델 깔때기를 거치는 순간 모든 요인은 사라지고 정신의학적 요소로만 귀결된다. 

히스테리는 '자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론에서 유래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러한 흐름에 반기를 들고, 최근 캐나다와 영국을 중심으로 Mad Studies라는 새로운 학문이 부상하고 있다. 광기학 혹은 미친학문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Mad Studies의 중요한 것은 광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관점에서 광기를 바라보고, 그들로부터 지식이 제공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Mad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른다. Mad Studies는 바로 그 부정적 이미지를 전복하는 것이 목표다. 왜냐하면 Mad의 그 느낌은 현재 억압받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퀴어(Queer)와 비슷하다. 원래 ‘괴짜의’, ‘이상한’을 뜻하는 이 단어는 과거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멸시적인 속어였으나 1980년대 급진적 동성애자 인권운동 진영에서 이 용어와 개념을 긍정적이며 전복적 방식으로 재정의하여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부정적 함의는 거의 사라졌다.

Mad Studies는 억압된 집단의 연대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진행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개념으로 블랙 페미니즘이 있는데, 젠더차별을 넘어 그 안을 들여다보니 젠더 내부에서 백인과 흑인이라는 인종차별이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흑인 여성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계급차별의 문제도 발견된다. 즉 정신장애인 억압의 문제는 단순하게 정신장애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의 정신장애인 차별철폐의 운동 초점은 ‘정신질환’그 자체에 묶여 있다고 보인다. 이는 기존의 정신의학으로 인한 억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억압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또 다른 억압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신자유주의가 있다. 신자유주의가 규정하는 정상, 긍정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다 죄가 된다.

우리는 현재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외부의 압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압박에서 오는 불안감과 분노를 타자에게 돌리게 된다. 자국민은 외국인노동자에게, 청년은 기성세대에게, 남성은 여성에게, 비장애인은 정신장애인에게 혐오를 덧씌운다. 정신장애인 배제는 어쩌면 정상으로 규정되는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고자 함의 역설적 상황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의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가속화는 어쩌면 더욱더 자기착취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약해진 자아가 아님을, 그것에는 주체를 억압하는 기제가 있음을, 그리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연대’라는 힘임을 우리는 발견해야 한다.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 현장에 있다가, 지금은 한국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비당사자 활동가로 당사자운동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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