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부제로 서품됐었고, 될 수 있다"

(필리스 자가노)

적어도 25년 전, 당시 뉴욕의 대주교였던 존 오코너 추기경은 여성에게 다시 서품 부제직을 허용하기 위한 비밀 토론이 로마에서 있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을 부제로 서품하되 사제로는 아닌 것으로 하는 방식을 어떻게 정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편집자 주- 현재의 가톨릭 부제품은 일부 종신부제직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 1년의 단기에 걸친 것으로 곧바로 (정식) 사제가 되기 위한 전 단계일 뿐이다.)

혼란은 남는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한 사제는 최근 내게 다음과 같이 써 보내왔다. “여성을 부제품에 서품하는 문제에 전문가가, (여성 부제가) 여성 사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뭔가 부정직해 보인다.”

하지만 여성 부제의 문제는 여성 사제에 관한 어떠한 논의와도 연관돼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

문제가 나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다. 먼저, 초대 교회의 여러 곳에서, 여성과 남성이 부제로 서품됐다. 그리고 점차 교계제도(처음에는 부제, 그리고는 사제, 그리고는 주교)가 발전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주교는 사제들 중에서뿐 아니라 부제들 가운데서도 선출됐다.

중세시대에는 (교회 안에서도) “명예로운 출셋길”(cursus honorum, 로마 시대에 출세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거치는 5단계 관직 코스)이 확립되면서, 여성을 부제직에서 점차 제거했다. 이 명예로운 출셋길은 (교회에서는) 소품인 수문품(문지기), 강경품(독서직), 구마품, 시종품과 대품인 차부제품, 부제품, 사제품, 그리고 주교로 이뤄진다.

그리고 이 명예로운 출셋길이 법으로 정해진 절차가 되자, 삭발례에서부터 사제 서품식에 이르기까지에 이르는 그 과정은 오직 (최종적으로) 사제가 되려는 사람만 밟을 수 있게 됐다. 사제직에 맞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아무도 그 절차를 시작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성 부제직은 수도원들로 국한되었고 결국은 사멸했다.

극히 일부 예외는 있지만, 이제 부제직은 심지어 남성에게도 종신 직무가 아니고 오직 사제가 되기 위한 한 단계로만 되어 수백 년이 지났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부제직이 종신직으로 부활되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7년에 교황교서 ‘라틴 교회의 종신 부제직을 부활시킨 일반 규범’(Sacrum Diaconatus Ordinem)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어 1972년에는 ‘일부 직무’(Ministeria Quaedam, 라틴 교회의 삭발례와 소품과 차부제품에 관한 규율을 개정하는 자의교서)를 발표해, 삭발례와 소품들과 (대품 가운데) 차부제품을 폐지하고 독서직과 시종직을 대체로는 사제직 후보자를 위한 직무로 설정했다. “과도적 부제품”은 계속되었고 또 계속되는 가운데, 바오로 6세 교황은 (종신부제 제도로) 부제품을 (사제직과 분리된) 별도의 직무로서 재생시킴으로써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게 됐다. 여성 부제는 어떤가?

그리고 그는 당시 아주 존경받는 학자이자 교황청 국제신학위원이던 한 신학자에게서 답을 들었다. “그래요, 여성들은 예전에 한때 부제로 서품됐었고, 지금도 또 서품될 수 있어요.” 그때가 1974년이었고, 그 답은 카말돌리수도회의 치프리아노 바가지니 신부가 이탈리아의 한 교회 잡지인 <Orientalia Christiana Periodica>에 실은 정밀한 신학 논문에 들어 있었다. 대부분의 주요 학자들은 그 전이나 뒤에도 바가지니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1862년 성공회 첫 여성 부제가 된 엘리자베스 캐서린 페라드.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그렇다면, 여성은 부제가 될 수 있는가? 교회가 지난 50년간 부제품을 종신 직무로 흡수하기를 계속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며, 또한 새로이 여성을 부제품에 넣은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같은 질문이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다. 오코너 추기경이 나와의 대화 중 언급했던 그 이른바 비밀 모임들은 아마도 교황청 신앙교리성 산하에 있는 국제신학위원회가 1992-97년에 검토했던 것을 가리켰던 것이다. 누구에게 들어도, 당시 국제신학위원회는 여성 부제를 승인하는 쪽으로 의결했는데, (신앙교리성 장관으로서) 국제신학위원장이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이 이 논문을 공표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국제신학위는 1997-2002년에 다시 처음 것보다 4배나 긴 연구논문을 써서, 여성 부제는 교도권이 (교황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즉 그들은 안 된다라고 말하지 않았고, 다만 된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의 두 교황, 즉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는 이 문제를 미뤄 놓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에 부제직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시금 꺼내어 학자 12명으로 구성된 여성부제직 연구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완전 비밀이다. 하지만 교회 곳곳에서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된 사제가 내놓았던 한 가지 난제는, 사제로서 여성은 어떠한가? 라는 질문이다. 일부 비판자들은 여성 부제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또는 자신 스스로가 부제로 서품되기를 바라는 여성들은 다른 숨은 목표가 있다고 말한다. 즉,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개, 이러한 비판자들은 부제직은 (사제직과) 별도이며 종신직인 성소이며, 이러한 부제 서품은 사제품으로 이어진다는 뜻이 아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기혼 부제들(종신부제)은 사제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 부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물러서면....”이라든지, “일단 문을 열어 놓고....”와 같은 표현들은 일부의 걱정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이런 걱정은 부제직과 연관된 교회문서들의 현대 역사를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서인 ‘인류의 빛’(Lumen Gentium,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에서는 부제와 탁덕(presbyter, 사제)의 직무를 뚜렷이 구분했다. 그리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에 교회법 1009조를 수정하여 제3항을 추가함으로써 이 사실을 반영했는데 다음과 같다. “주교품이나 탁덕품에 세워진 이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할 사명과 권한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부제들은 전례와 말씀과 사랑의 봉사로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힘을 받는다.”

하지만, 비판자들이 부제와 사제의 이러한 차이를 인식한다 하더라도, 여성 부제에 반대하는 주장에 힘을 주는, 부제직 일반에 대한 편견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때에, 한 교구 사제는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제직은 쓸모가 없다, 그리고 (교구에 사제가 부족하여 상주하는 사제가 없는) 작은 본당에 부제를 보내느니 그냥 문을 닫는 게 낫다고. 그의 본당관은 분명히 사제직 중심이며, 우리가 직무라고 부르는 것 대부분에 전혀 여지를 두고 있지 않다.

여성 부제를 반대하는 또 다른 주장은, 여성 부제직은 불필요하며 교회의 성직주의를 더 강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미 종신부제로 서품된 전 세계 4만 4000여 명의 남성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될 것이다. 이들은 (불필요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또 여성 부제를 반대하는 사람들 일부는 이 지점에서 범주들을 섞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일부 교구에서) 여성이 맡고 있는 교구 사무처장직이나 재정책임자, 기금모금책임자, 영성 지도자, 그리고 소수민족사목 담당 등과 부제직을 혼동하는 것이다. 즉, 이들은 부제직은 (이러한 일들과) 구분되는 직무이며 분명히 (성품으로) 서품받은 직무라는 것을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부제 성소는, 교회 안의 하나의 온전하고 종신인 품으로서, 말씀과 전례, 그리고 자비의 봉사를 위한 것이다. (지금도) 성직자이자 자격 있는 부제는 교회의 혼인 재판에서 단독 재판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부제가 수행할 수 있는 몇 가지 전례와 성사가 있다. 서방 교회에서는, 부제는 미사 중에 강론을 하고, 특히 부제로서 역할들을 할 수 있으며, 세례를 주고 혼인식을 주례할 수 있다. 하지만 말씀의 청지기로서 부제는 또한 자비의 활동 안에서 복음을 하느님 백성에게 전한다. 그는(또한, 바라건대, 그녀는) 교회의 직무와 사명을 감독하는 주교를 대신하여 복음과 자비 둘 다를 전한다.

하느님 백성에게 여성 부제라는 서품된 직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태만으로서, 서방 교회는 800년이나 그렇게 살아왔다. 종신 성소로서 부제직을 부인하는 것은 교회론적 오류로서, 이는 무지를 통해 나온 것이다. 이는 또한 하느님 백성이 요구하는 직무의 필요들을 부인하는 것이다.

(필리스 자가노는 미국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여성 부제들: 과거, 현재, 미래”(2011)를 썼다.)

기사 원문: http://www.uscatholic.org/womendeacons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