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는 좋고 여성은 안 된다고?"

(제이미 맨슨)

지난 6월에 아르메니아를 방문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자들에게 자기가 화가 났다고 말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난민이 죽어가는 것이 계속되고 있어서나 새로운 환경 재해의 증거가 알려지거나 또는 인신매매가 늘어난다는 잔인한 통계를 들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지난 5월 12일에 국제수도회장상연합(UISG) 총회에서 여성의 부제직이 가능한지 연구하는 위원회 설립을 생각해 보겠다고 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 그가 “여부제직에 문을 열었다”고 본 때문이었다.

“그래요?” 하고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내가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말한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나는 언론에 좀 화가 났어요.” 그리고 그는 그 총회 뒤에 자기가 신앙교리성 장관(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에게 초대 교회에서 여성 부제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연구할 위원회에 임명할 만한 이들의 명단을 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뭔가 해결되기를 원하지 않으면 위원회를 하나 만들어라”라는 농담을 했다. 이 말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출신국) 아르헨티나의 한 전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 기자회견이 있고 몇 주가 지난 8월 2일, 그는 남성 6명과 여성 6명으로 “여성 부제직 연구위원회”를 임명했다.

하지만 여성을 어떤 형태의 부제직에 받아들이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라는 생각에 교황이 화를 냈던 것은, 여성에게 교회 안의 권한의 모습을 띤 것을 준다는 생각만 해도 떠오르는 불안이 얼마나 깊은가를 시사한다.

이번에 만들어진 위원회에서, 설사 일이 잘 되어도, 무엇이 해결될지는 모른다. 우리는 위원회가 얼마나 오래 진행될지 모르고 있고, 이들이 무엇을 권고할지 모르며, 그 권고들을 받아든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 위원회가 여성을 사제직에 서품하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들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첫째, 여성 부제가 있었다는 역사 증거들은 명확하지만, 여성 사제가 있었다는 명확한 선례는 없다. 둘째, 여성 부제는 바뀔 수 있는 교회법의 문제이지만, 반면에 여성 사제는 교회의 교리로 금지되어 왔다.

하지만 여성에게 사제직이 거부될 더 큰 이유는 가톨릭교회가 교회적(ecclesiastical), 성사적 권한의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같은 권력을 허용하는 데 대해 근본적으로(radical) 반대하기 때문이다.

교황과 교계제도에 따르면, 여성은 교회 안에서 동등한 권력을 가질 수 없다. 자연에 어긋나기 때문이란다. 이는 이들이 하느님께서 남자는 지도자가 되고 당국자가 되며 의사결정자가 되도록 창조하셨고 여성은 종이 되고 보조자가 되며 양육자가 되도록 만들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은 동등한 존엄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되풀이 말하면서도 여성이 동등한 권력의 자격이 있다고는 말한 적이 없는 것은 그 까닭이다. 그는 여성의 의견이 토의에 반영되기는 원하지만, 여성에게 결정하도록 맡기기까지는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번 연구위원회를 통해 교황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여성 부제직의 유일한 형태는 그가 성과 성애 관련 문제들을 얘기할 때마다 늘 상찬하는 남-녀 보조성의 모델을 존중하는 형태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 신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나는 이번에 이 위원회를 만든 것은 여성을 교회 안의 의사결정 지위에 포용하려는 작지만 중요한 전진이라고 보는 이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전진을 축하하는 가운데, 나는 엄연한 현실을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여성에게는 남성과 동등한 권력을 여성에게 사실상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 우주와 인간관계를 정하셨다고 고이 믿는 교계제도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여성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투쟁은 다양한 감정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킬 것이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얘기를 듣고 발끈할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이나 보수적 신자들이 내는 화나 분노에 너무 신경 써서는 안 된다. 우리가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교회 안에서 여성이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신자들이 보여 주는 불편한 모습이다.

보기를 들어, 여성 부제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나는 부제가 되기를 원하는 여성들은 “권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봉사하기를 또는 봉사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할 뿐이라는 주장을 적어도 한 번 이상 들었다.

그런 수사는 남성들을 너무 겁주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나는 안다. 여성이 부제가 될 수 있을지 아닐지는 (현재로서는) 결국 남성들이 결정할 것이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교회적 권력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줄이고, 봉사하려는 여성의 열망은 크게 보이게 만들면 여성을 위한 부제직이 축소된 형태로 만들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형태란 남성 부제직과는 다른 것으로, 여성 부제는 봉사만 하도록 딱 정해지고, 새 책임들만 잔뜩 짊어지며, 실제 권한은 아주 조금만 받는 형태다.

교계제도는 이미 여성은 종의 역할을 하도록 태어났다고 믿으며, 여성이 (남성과 달리) 고유하게 완수할 수 있는 것은 봉사라고 스스로 확신해 왔다.

그러므로 사제를 지원하는 데 중점이 있고 성사적 기능(faculty)은 별로 없는 새 (여성) 부제직의 형태로 결론이 나면, 이는 진보를 향한 전진이 되기보다는 교회 내 여성 평등을 향한 투쟁을 사실상, 수백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십 년은 퇴보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위협이 교회 내 여성 평등을 향한 투쟁 위에 드리우고 있는 바, 여성 사제직 운동을 하는 이들을 겨냥한 비판의 이야기를 나는 듣고 있다. 일부 진보적 가톨릭 신자들은 평등하게 인정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요구라는 듯이, 여성사제 운동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교회 내 여성의 진보를 조금이라도 이룰 가능성을 가로막는다고 분개해 왔다.

나는 또한 (여성을 부제나 사제로 ‘서품’하면 “성직화”될(clericalized) 것이라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고를 그대로 본떠) 사제직을 원하는 여성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권력에 굶주린 출세주의자라고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런 주장이 특히 거슬리는 것은, 사제가 되려는 젊은 남성을 두고 그런 못된 동기에서 비롯했다고 비난하기는 듣기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성 신학생에게는 미심한 점을 선의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신이 사제가 될 만하다고 느끼는 가톨릭 여성에 대해서는 그런 좋은 의도가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제도적 교회 안에는 남성에게 주어진 권력과 똑같은 것을 원하는 여성을 악마화하는 모습이 있다. 때로는 눈에 잘 안 보이게, 때로는 좀 더 뚜렷하게. 이런 식으로 수치를 주고 비난하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 제도적 교회가 봉사하는 유일한 목적은 여성이 교회 안에서 진정한 정의와 평등으로 대우되기를 바라는 가톨릭 신자들을 분할하여 통치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여성이 자신의 교회 안에서 평등한 권력을 바라는 데에는 아무런 부끄러워 할 일이 없다고 주장해야만 한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권력”(power)이란 “특정한 방식으로 무엇을 하거나 행동할 능력이나 자격” 또는 “다른 이의 행위나 사건의 진행을 지시하거나 영향을 줄 자격이나 능력”이다. 여성이 자기의 교회 안에서 이러하게 기능하기를 원하는 데에 죄가 있다는 말인가?

좋은 사제들과 좋은 주교들을 만난 축복을 누렸던 이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교회적 권력을 좋은 일을 하는 데 쓴다고 찬양하는 이들은 모든 교회 권력이 썩지만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런데 왜, 여성은 똑같이 좋은 일을 하도록 어떤, 그리고 모든 성직 자리를 맡아서는 안 되는가? 왜 어떤 여성이 성사적 또는 의사결정 권력을 원하면 그녀의 이미지는 지배를 추구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야심에 가득 찬 인물로 훼손되고 마는가?

여성 부제에 관한 우리의 토론을 진전시켜 가는 가운데, 우리는 교회 안에서 평등한 의례를 원하는 여성들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한 여성이 성사적 또는 영적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것이 전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이 그러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수치가 아닌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여성들도 하느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주신 그 권력을 주장하려 할 뿐이다.

(제이미 맨슨은 <NCR>의 도서 편집자다. 예일대 신학대학에서 가톨릭 신학과 성윤리를 공부하고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기사 원문: https://www.ncronline.org/blogs/grace-margins/stop-shaming-women-seeking-equal-power-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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