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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로 우리 함께 돌아가자[장영식의 포토에세이]

KTX 해고 승무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부산지역 결의대회가 1월 11일(목) 오후 7시 30분 서면 쥬디스 태화 앞에서 열렸습니다. 혹한 속에서도 부산 시민단체와 정당 그리고 노동자들이 참석한 결의대회에서 KTX 해고 승무원들은 "세 살짜리 딸을 두고, 무거운 짐을 안고 먼저 떠난 친구의 딸이 올해 여섯 살이 되었다. 그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우리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12년의 모진 시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천주교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이영훈 신부는 "해고는 커다란 위협이며 때로는 살인이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에게도 커다란 위험이 된다"고 말한 뒤 "정부와 코레일에게 부탁한다. 해고 승무원들의 눈물을 기억해 달라. 또한 그들 뒤에 있는 가족들의 눈물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대법원 판결 이후 세상을 먼저 떠난 KTX 노동자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장영식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KTX 승무원들이 대법원에서 패소한 뒤 세 살짜리 아이를 두고 목숨을 끊었던 00 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여 결의대회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낭독했던 편지 전문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린 외롭고 쓸쓸한데 아이마저 두고 홀로 떠난 ○○ 씨는 얼마나 춥고 외로울까. 때때로 웃기도 하는 우리가 아프고 힘든데 상처들을 고스란히 안고 울며 떠난 ○○ 씨는 얼마나 힘겨울까.

○○ 씨가 떠난 지도 3년.

그곳에서도 궁금해서 애가 탈 텐데, 미안해 ○○ 씨. 우린 아직 그러고 있어.

12년.

정규직화의 약속만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해고되고 그렇게 버려졌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싸움이 12년이 됐고, 우리들의 가장 빛나던 시절은 눈물과 한숨으로 되돌아보기도 아픈 상처가 됐다. 이번엔 끝날 거야 했던 엄마와의 약속은 늘 거짓말이 됐고, 올해 안엔 복직할 거야 했던 다짐은 해가 열두 번이 바뀌도록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를 배반하기만 했던 희망들. 그게 제일 힘들었다.

나도 나를 믿을 수 없어 막막하기만 하던 희망은 늘 멀었고 절망은 순식간에 나를 바람 부는 들판에 홀로 세워 두곤 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우리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었다. 너희가 잘못한 게 아니라며 곁에 서 있어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규직 시켜 준다 약속해 놓고 300명을 다 해고한 코레일이 잘못한 거고, 12년을 외쳐도 단 한 마디도 들어 주지 않은 정부들이 틀린 거니까. 거짓말한 건 철도공사였고 우릴 내치고 짓밟았던 건 권력이었다.

떼를 써서 정규직이 되려 한다는 말들. 애를 맡길 데가 없어 데리고 피켓팅을 하니 애를 앞에서 감상팔이 한다는 모진 말들.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아이한테 미안한 일인지 모르는 이들의 날선 말에도 상처받던 수많은 날들.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들에게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반대했던 인천공항 정규직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임승차가 아니라 15년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열심히 일해 왔던 노동자들이었다. 인천공항을 채우는 85.7퍼센트 비정규직들이 아니었으면 공항운영이 가능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럼에도 정규직의 좁은 문은 노동자들끼리 적을 만들었고 비정규직들조차도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어 왔다.

○○ 씨. 그 많은 말들을 안고 홀로 떠난 ○○ 씨.

새파란 20대 청춘의 우릴 버린 세상을 향해 원망의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가 버린 ○○ 씨.
12년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우린 여기 있을 거야.
죄 없이 쫓겨나고 엄마가 보는 앞에서 경찰들에게 무자비하게 끌려갔던 자리. 그 자리에 있을 거야.

○○ 씨가 마지막 카톡에 남겼던 자리.
"이번 주에 부산역으로 갈게."
오고 싶었으나 끝내 오지 못했던 자리.
그 자리에서 ○○ 씨를 기다릴게.
우리랑 같이 돌아가자.

꿈에라도, 영혼만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던 곳
KTX로 우리 함께 돌아가자.

부산지역 결의대회에 참석한 KTX 해고 승무원들이 모진 세월을 이겨 내며 눈물 대신 환한 웃음으로 "다시 빛나는 우리는 KTX 노동자"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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