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우리 국민의 87퍼센트가 종교인 과세를 찬성했다. 지금까지 교계의 눈치를 살피며 차일피일 미뤄 왔던 정부는 지난 연말에 국무회의에서 종교인소득 과세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일부 개신교의 반발이 거센 데 반해 천주교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한국 천주교는 이미 1994년부터 성직자들의 소득세 원천징수를 실시하고 있어서다. 세금만 내면 우리는 임무를 다한 것인가? 어쩐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예수께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고 하셨지만 교회도 돈이 있어야 유지, 운영할 수 있고 자선사업이든 복음화 사업이든 원활하게 펼칠 수 있다. 언제부턴가 교회의 재정 상태가 교회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 게 사실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돈에 쏠리는 이유다. 교회의 주된 수입원은 말할 것도 없이 신자들의 기부금이다. 본당 주보에서 한 주간에 들어온 교무금 헌금의 액수가 특히 주목을 끄는 건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교회의 책임자들은 출납부의 수입란을 살피기보다 먼저 각종 지출란을 조목조목 따져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기부자의 뜻에 따라 복음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를 반성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제가 교회의 공금을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가구와 집기를 바꾸는 데 사용하는 건 정당한가? 정해진 활동비로는 어림없는 선심성 선물이나 음식 값을 접대비 명목으로 지불한다면? 낡고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건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뜯어고치는 일이 논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집행된다면? 부족분은 고스란히 신자들의 두 어깨에 지워지고 교회는 계속 쪼들릴 수밖에 없다.

성당 신축도 그렇다. 사전에 충분한 검토는 필수다. 일단 결정이 나면 당연히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어야겠지만 주님이 쓰시겠다(마르 11,3)는 구실이 지나친 호사나 사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왕에 빚을 지는 거 조금 더 한들 어떠랴 하는 배짱은 주임사제의 욕심의 투영일 뿐,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예수(마태 8,21)를 닮은 가난한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지난해에 모금한 후원금 총액이 535억 원이란다. 그 돈을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간담회비로 지출하고 심지어는 차량 구입비나 본인의 재판비용으로 썼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치가의 일거일동을 공사를 불문하고 싸잡아 정치활동으로 간주해도 좋은가? 그렇다면 사제는? 칼로 긋듯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쌈짓돈을 주머닛돈으로 착각하고 마음대로 꺼내 쓰는 것은 사회나 교회나 마찬가지로 불의요 부정이다.

나는 교구가 편의상 수입을 기준으로 분류한 특급, 1급 본당에는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했다. 도시 변두리나 농어촌 본당에 산 날들이 더 많다. 연료비가 모자라 기름보일러를 연탄아궁이로 바꾼 곳은 있었지만 돈 문제로 신자들을 닦달한 적은 기억에 없다. 오히려 본당을 떠날 때는 통장에 적지 않은 잔액을 남기기도 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출전표에 결재하기 전에 재고 삼고하면 강론하면서 얼굴 붉힐 일 없다. 돈 때문에 고민할 일 없다. 교구나 본당에 사목회가 있고 재정위원들이 있지만 결국 최종 결재자는 교구장과 주임사제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주된 수입원은 말할 것도 없이 신자들의 기부금이다. ⓒ왕기리 기자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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