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미사예물도 촌지다. ⓒ왕기리 기자

촛불은 헌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새 대통령을 세웠다. 누군가의 말대로 나라가 바뀌는 데 하루면 되는 것 같더니 반년이 넘은 지금 우리는 청와대의 정무수석이 쇠고랑을 차고 해수부의 고위 공무원은 세월호에서 발견된 유해 조각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듣는다. 남 얘기가 아니다. 전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새 교종이 탄생된 지 수 년이 지났건만 우리 성직자들의 사고나 언행은 좀처럼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겹겹이 쌓여 온 관습과 관행이란 얼마나 깨기 어려운 것인지, 무서운 것인지....

지난 초가을에 나는 운 좋게 ㄱ여행사가 주선한 유럽성지순례에 동행했다. 떠나는 날 여행사 사장님이 인천공항에 나와서 일행에게 나를 소개하며 순례 기간 중 매일 미사예물은 그때그때 바치라고 공지했다. 나는 이른바 지도신부로서 인사말을 해야 했다. “제가 교우들과 함께하는 해외성지순례는 이번이 세 번쨉니다. 순례 기간 중에 저는 미사를 드리되 예물을 받지 않으려 합니다. 첫 번째 순례 때는 멋모르고 교우들이 주시는 미사예물을 다 받았습니다. 예상 외로 많은 돈이었습니다. 왠지 마음이 썩 편치 않았습니다. 두 번째도 으레 전례대로 받았는데 문득 이게 아니다 싶어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명목으로 다 돌려드렸습니다. 그래섭니다. 여러분은 메모지에 지향만 써 주시면 제가 기억하며 미사를 드리겠습니다.” 내 맘대로 이래도 되냐고 사장님께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교우 한 분이 감사하다며 박수를 치다가 슬그머니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순례 첫날 제대 위에 수북이 쌓였던 메모지가 이튿날엔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사흘째던가, 교우 한 분이 내게 와서 말했다. “신부님, 예물을 안 내면 성의가 없어 보여 하느님이 기도를 안 들어주신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받아서 좋은 일에 쓰시는 게 어떨까요?” 듣고 보니 그도 그럴 듯했다. 왜 나는 이다지도 귀가 얇을까? 미사 끝에 곧바로 정정 발언을 했다. “정성껏 미사예물을 바치고 싶은데 내지 말라니 서운하다는 교우가 있답니다. 정 그러시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다음 날부터 바로 한두 개의 예물봉투가 다시 제대 위에 놓였지만 순례가 끝나는 날까지 예전처럼 많지는 않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맹세코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사제가 교우들의 예물을 받아서 한턱 내기도 하고 그럴 듯한 명목을 달아 인심을 쓰면 칭찬 들어 기분 좋고 생색도 낼 수 있어 일석이조 삼조의 효과를 본다. 나는 그 맛을 안다. 거절하기 어려운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순례자들은 거액의 참가비에 용돈, 미사예물까지 이중 삼중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대부분 벼르고 별러서 몇 년씩 적금 들고 곗돈 부어 마련한 돈이다. 그들 덕에 무임승차한 내가 그걸 받아 챙겨? 분명히 말한다. 미사예물도 촌지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결벽증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사소한 일에 목청을 돋우는가?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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