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문제는 사제가 가난하지 않다는 거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일전에 ‘인천성모, 국제성모병원 정상화 시민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김창곤 씨(전 민노총 인천본부장)를 대폿집에서 만났다. 마침 인천교구 서품식이 있던 날 저녁이었다.

“저는 오랫동안 노조활동을 하면서 천주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 노동자 주일을 제정한 곳이 인천교구입니다. 그래서 미카엘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나는 그가 천주교 신자인 줄 몰랐다) 요즘처럼 이렇게 교회가 싫고 미운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녹음을 안 해서 정확한 인용은 어렵지만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모병원 문제가 한 신부의 개인적인 일탈에서 비롯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교구에서 단행한 인사와 병원 당국의 후속 조치들을 보면서 이건 개인이 아니라 교구 전체의 문제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노조 관계자를 상대로 주교가 제기한 손배소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교구와 병원은 별개다, 모른다, 병원에 물어보라던 인천교구의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원 관리자들이 나서서 직원들에게 한국노총 산하의 새 노조에 가입하라고 권하는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 노조를 와해시키고 어용노조를 세우려는 공작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행태입니다. 그런 와중에 노조지부장이 병사하는 가슴 아픈 일까지 생겼습니다.” 요즘 <뉴스타파> 등 언론을 통해서 나도 대강은 듣고 있던 터였다. 김창곤 씨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정작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왜 300명이 넘는 신부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 나서서 교구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분이 안 계십니까? 왜 전태일 열사 같은 분이 없습니까? 신부는 왜 되셨습니까?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왜 모두 눈 감고 고개 숙이고 계십니까?” ‘왜’, ‘왜’를 계속하는 그의 목소리는 처절했다. 아, 그랬구나! 그가 오늘 내게 하고 싶은 말은 주교와 일부 병원 신부들에 대한 성토가 아니었구나! 부끄러웠다. 한없이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볼 수조차 없었다. 순간, 나는 결심했다. 그래! 고해를 하자! 참담한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겠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적지 않은 신부들이 교구의 실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도 매일 미사 드리고 성사를 집행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알고 있고 관심이 있어도 애써 모른 체하고 입을 다문다는 겁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신부들이 가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제 생활은 불편과 부족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풍족하거든요.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잘 아는 법인데 저희들에게는 가난하고 외로운 과부가 되어야겠다는 절실함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신부가 가난하다면 지금보다는 한결 정의롭고 치열해질 텐데요. 둘째는 공연히 목소리를 높이다가 주교의 눈 밖에 나면 나만 손해라는 얍삽한 이기심 때문입니다. 비겁합니다. 남 얘기가 아닙니다. 제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회개하려는 용기가 없으니 용서해 달라는 말씀조차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의 두 눈이 촉촉이 젖는 것을 나는 보았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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