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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의 도화선은 감옥에 있다[특별기고 - 서영섭]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
“야만적 자본주의는 베푸는 것도 이득을 위한 것이다.”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을 현대에 맞게 고치면,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마라”

자본주의의 패악함을 준엄하게 질타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씀은 속 시원하다 못해 못내 아쉽다. 부끄럽지만 어디까지나 교황의 말씀으로 끝나는 듯하다.

2016년 우리나라 재벌들이 쌓아 온 사내유보금이 무려 710조라고 한다. 그야말로 규제 없는 자본의 독재가 이 사회를 지배하는 형국이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없었다. 어떻게든 덜 주고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의 형태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교회는 “노동은 신성하다,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에 있다.” 라고 고백하며 가르친다.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으며, 진실하게 가르치고 있는지 되묻고 싶은 요즘이다. 여전히 선언으로만 입속에서만 머물고 삶으로는 전혀 육화되지 않고 있는 노동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다. 어디 교회뿐일까?

소위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노동정책 기조는 노동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획기적인 내용은 별로 없다는 게 사실이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거리에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넘게 해고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삶을 보내고 있다. 하루가 천년처럼 느껴지는 고통과 삶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온 노동자들에게 자꾸만 기다려 달라고 하는 건 희망고문이다.

30대의 노동자가 40대로, 40대의 노동자가 50대로, 50대의 노동자가 60대가 되었다. 백발이 성성하여 일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린 이들에게 그 기다림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2015년 12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노동개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뉴스타파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시간 광장에서의 우리의 외침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비인간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개혁이었다. 하지만 유독 특정 사회적 의제만큼은 너무나 날카롭고 완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름 아닌 노동문제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와 투쟁을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며 심지어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에는 찍소리 못 하더니 이제 와서 큰소리로 친다며 힐난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노동문제는 크게 진전된 게 하나 없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 하늘로 올라가는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하늘 벼랑 끝에서 자본의 횡포에 맞서 파인텍 노동자 두 명이(박준호, 홍기탁) 53일째(2018년 1월 3일) 목동 열병합 발전소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노동문제는 나아진 게 없다.

무엇보다도 촛불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아직도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은 며칠 전 2년 넘는 수배생활 끝에 결국 구속되어 영어의 몸이 되었다.

지난 10여 년간 노동자들은 적폐세력들에게 온갖 말 못할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다. 적폐청산 화두인 지금의 사회에서 진정 적폐청산의 첫걸음은 규제 없는 자본의 독재 횡포에서 해방되는 일이다.

아울러 강탈당했던 노동의 존엄한 권리를 즉각 환원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과 이영주 사무총장의 석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저 지체한다면 적폐청산과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아득하기만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간절하게 희망해 본다.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우리였으면 한다.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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