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첫 심포지엄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12월 9일 첫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약소국이 꿈꾸는 평화’를 주제로 신자들과 의견을 나눴다.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은 ‘고대 이스라엘과 한반도의 정의와 평화’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약소국은 정의와 평화의 본질을 성찰하고 신학적 심화를 이루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점에서 “한반도는 동북아의 평화를 성찰하기 좋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가치들과 실천적 사명의 근본 원인이 하느님이시라는 사상은 유일신교의 독특한 성찰로서 지금도 유효하다”며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 보전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현대의 ‘정의, 평화, 창조질서’(JPIC) 운동도 같은 맥락의 성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 연구원은 “현재의 남한은 세계적으로나 아시아에서 절대 약소국이 아니며, 오히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대해 경제적이나 문화적으로 준제국주의로서 기능할 위험성을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민족끼리’의 사고는 남북의 친근성과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는 꼭 필요하지만 자칫 지나치면 우리의 시각을 한반도의 민족적 차원에 가둬버리고, 일부의 준제국주의적 행태나 군사주의를 합리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이미영 <가톨릭평론> 편집장,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 맹제영 신부. ⓒ강한 기자

토론자로 참여한 이미영 <가톨릭평론> 편집장은 많은 이가 정의, 평화에 관한 교회의 여러 가르침을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신앙 담론으로 여기고 있다며, “교회의 노력에 오늘의 질서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는 구체적인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주원준 연구원은 하느님 중심의 정의, 평화를 세상에 이루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은 좋지만, 시대와 맥락에 따라 교회의 실질적 참여가 어떤 내용인지 성찰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 의정부 천주교 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에서 열렸다. 교구 사제와 수녀, 신앙교육원에서 활동하는 평신도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관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강한 기자
토론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종이에 써 낸 질문에 발표자들이 답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평화, 정의가 급하게 필요한 억압받고 소외된 계층은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물었다.

토론자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은 정의와 평화가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나 “다가감은 자비와 연민뿐 아니라 저항도 포함한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우리가 약자에게 다가갈 때 (그들과 함께) 저항해야 하는데, 한국의 운동의 문제는 비폭력 직접 행동의 구체적 매뉴얼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폭력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비폭력 직접 행동으로 악에 맞설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의 워크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영 편집장도 이러한 모임에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공감하고 의견을 나눈다”는 점에서 “교회의 많은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고 귀를 닫고 있는데,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할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은 옳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좋은 사람의 말을 듣는다고 한다”며 “교회 안에서 정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옳게 살지 못하고, 안 좋게 나타나는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 아닌가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정의, 평화를 말한다면 교회 밖에서만 말하는 게 아니라 안에서도 고민을 깊이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석자 중에는 강대국 사이의 군사적 충돌을 용납할 수 없다는 주교회의 입장에 동의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과 굶주림에 대해 강력한 경고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강한 기자
발표자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자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북한 인권을 말하는 국제 논리는 뒷날 김정은 정권을 단죄할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이 주도권을 쥐고 통일되면 열악한 북한 인권의 책임을 지금 북한 정권에 유엔 차원에서 묻겠다는 것”이라며, 북한 인권 주장의 취지는 좋지만 동의하는 순간 더 큰 폭력적 국제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동참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가톨릭 사회교리로 바라본 한반도 사드 배치와 동북아 평화’를 주제로 발표한 맹제영 신부(의정부교구 참회와 속죄의 성당 협력사목)는 군비경쟁을 군비축소로 대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평화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핵과 사드 배치로 일어난 동북아 군비경쟁, 신냉전 체제에 직면해 “관련 국가들이 ‘연대’하여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과 군비 축소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맹 신부는 이를 위해 동북아 국가들의 연대, 남북한의 연대가 필요하며, 특히 신자들은 사드 배치 문제를 떠안게 된 지역민,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평화학자인 이찬수 교수는 ‘인문학적 평화론 : 평화다원주의’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평화는 다양성의 공존”이라며 “특정한 평화 개념을 절대화하고, 그 방법론을 단일화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에도 있어 온 ‘자기중심적 평화주의’를 피해야 하며, 다양한 평화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평화다원주의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12월 9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심포지엄에서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오른쪽)이 고대근동의 국제 관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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