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잘 알고 지내던 후배 부부가 (그냥 제 추측일 뿐이지만) 저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에 감명을 받았는지.... 세례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모범으로 삼은 사람이 저라니 좀 부끄럽습니다. 그냥 시간 날 때 같이 식사와 반주를 한 것이 그토록 감동을 줄 수 있었다니 전교가 하나도 어렵지 않군요.

그래서 이 후배 부부 한 쌍은 물론, 몇 달 뒤 결혼을 앞둔 두 쌍의 커플을 포함해서 교리반을 급조하게 되었습니다. 첫 모임을 마치고 상큼한 시작을 위해 뒤풀이를 갔던 자리에서 후배 부부가 물어왔습니다. 지금은 비신자이지만 함께 세례를 받게 되면 매우 행복할 것인데, 혹시 혼인성사도 해야 하냐는 것이 그들의 질문이었습니다. 흠.... 아직 성사까지 진도가 나가려면 몇 주 더 있어야 하는데 이미 혼인성사란 말도 알고 있는 걸 보니 더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비신자들끼리 결혼을 하여 살다가 함께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면, 이들은 가톨릭 전례를 통해 다시 혼인성사를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은 예전에 속풀이에서 이미 다루었던 다른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신자가 민법상 이혼을 하면...?”“사제들도 고해성사를 하나요?”을 함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법상 혼인성사는 부부로 맺어질 사람들이 모두 가톨릭교회의 신자이거나 어느 한쪽이라도 신자인 경우에 요구되는 전례입니다. 그러므로 결혼 당시 둘 다 신자가 아니라면 당연히 혼인성사의 의무는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왔던 부부가 나중에 가톨릭 신앙에 입문하려고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게 되면, 이 세례를 통해 그들 사이의 혼인관계는 자동적으로 혼인성사의 효력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니 결혼식을 한 번 더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세례 받은 것을 기뻐하고 친지, 이웃들과 잔치를 벌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습니다. 하지만 의식해야 하는 것은 그 부부의 관계가 성사혼이 된 것이므로 두 사람은 이제 갈라질 수 없는 유대로 묶인 것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비신자들로서 이혼이나 재혼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혼인성사가 가지는 유대는 사실상 “이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사회법에서 봤을 때 “이혼"이 요구되는 상황이 발생하여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다면, 교회는 그것을 그저 “별거"로 간주합니다. 즉, 따로 살지만 여전히 혼인은 지속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다시 결혼을 하고자 할 때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법상으로 여전히 혼인관계로 묶여 있는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혼인관계를 해결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지속되고 있는 혼인의 유대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교회법원에 현재 혼인에 대한 ‘무효’ 판정을 청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정리해 보면, 교회법에는 “이혼”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으며, “혼인무효”라는 개념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교회법원을 통해 현재 혼인이 무효라고 인정되어야 다른 혼인이 가능해집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현재 혼인이 계속 유효한데 교회법을 무시한 채 사회법상 재혼을 하는 것이므로, 십계명 중 제 6계명(간음하지 말라)을 어기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비신자인 후배 부부의 세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너무 멀리 나왔다 싶기도 합니다. 일단 이 친구들이 신앙을 찾는 여정에 함께 하게 되어 개인적인 보람을 느낍니다. 저 만큼이나 후배 부부를 비롯한 결혼을 준비하는 두 쌍의 젊은이들도 그리스도 신앙을 알아가는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내어 놓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온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던 당신의 권능을 접어 내고 그 자리에 우리가 사는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나의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은 그러므로, 하느님을 닮은 모습입니다. 부부로 살아가는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기만이 누리던 세계에 짝을 위한 자리를 서로 내어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이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렇게 내어 주는 하느님의 삶을 날마다 연습하는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성사(Sacrament, 聖事)란 이처럼, 하느님의 자비를 연습하고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리를 내어 주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이웃에게 보여 주는 것. 부부처럼 그것을 명확히 보여 주는 이들도 없을 것입니다만, 꼭 부부가 아니더라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들, 혹은 서로 긴밀히 협력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 안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는 자비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함께 그리스도 안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들이 일구는 삶을 아름답고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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