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매우 생소한 단어인 “근본 유효화”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틴어로는 sanatio in radice(싸나티오 인 라디체)라고 표기되는 이 교회법률 용어의 원뜻은 "뿌리에서 치료함”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유효한 혼인을 하지 않은 경우, 즉 무효한 혼인을 하여 현재 성사생활을 하는 데 장애를 가진 이들과 관계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 예가 혼인성사를 통해 결혼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교회법상 모든 신자는 혼인성사를 통해 결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배우자가 신자가 아니라서 유효한 절차를 밟지 않고 결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내 배우자가 신자가 아니더라도 관면(조건부 허가로 보시면 됩니다)을 받고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받을 수 있음에도 (냉담을 하다 보니) 교회법을 잘 몰라서 혹은 배우자가 그것을 원치 않아서 등등 여러 이유로 혼인장애가 생겨납니다.
사회혼 이후에 이 상태를 교회법상 유효한 혼인으로 인정받고 싶어졌습니다. 즉, 현재 상태가 무효한 혼인상태라는 것을 부부가 인지하여 유효한 것으로 바꾸고자 합의한다면 거주지 근처의 본당에 찾아가 사제와 상의 뒤 혼인예식을 통해 장애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단순 유효화"(convalidatio simplex)라고 합니다.
그런데 단순 유효화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 있습니다. 단순 유효화가 이뤄지기 어려운 경우는 보통 비신자인(혹은 냉담 중인) 배우자가 유효화를 원치 않을 때 벌어집니다. 단순 유효화는 그 부부 중 유효화를 원하는 쪽의 성사생활을 위해서 이뤄집니다.
근본 유효화의 전제는, 단순 유효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부부가 몇 년 동안 부부관계를 서로 충실히 유지해 왔고 앞으로도 자신들의 가족 공동체를 책임감 있게 잘 꾸려 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본 유효화는 사도좌(교황청)로부터 수여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신자의 소속 교구의 교구장으로부터 수여될 수 있습니다.(교회법 1165조 참조) 이를 위해서 부부 중 근본 유효화를 원하는 쪽이 본당 사제를 찾아가 상의해 보셔야 합니다. 이런 면담을 통해 1) "혼인의 근본 유효화를 위한 청원자의 진술서”(혼인 양식 특6호) 2) 이 진술을 바탕으로 사제는 “혼인의 근본 유효화를 위한 사제의 건의서”(혼인 양식 특7호)를 작성하게 됩니다. 교구장은 이를 검토하여 “혼인의 근본 유효화 인정서”(혼인 양식 특8호, 2부 작성)를 발급합니다.(의정부 교구법원 홈페이지, “단순 유효화, 근본 유효화" 안내 참조)
주변에 단순 유효화나 근본 유효화를 요청하여야 할 분들이나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신앙 생활을 재고하고 심화하는 기회가 되리라 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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