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미사에서 평화 예식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움에 떨고 있던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 주신 선물인, 평화를 기억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초창기 교회의 전례에서부터 있어 온 오래된 전통이었고, 그러던 것이 중세를 지나며 제단 위에 있는 이들 곧, 주교, 사제, 부제, 복사들끼리만 하던 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다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미사에 참례하는 모든 이들이 서로 평화를 빌어 주도록 오랜 전통을 되살린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우리가 거의 기계적으로 바라는 안락, 문제 없음, 욕구충족, 안전 등과는 다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 27)라고 말씀하시듯,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어떤 위협에도 흔들림 없는 용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 미사에 참석한 이들이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평화 예식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주시려는 선물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기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방교회(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평화의 인사가 영성체 바로 전에 있으나 동방교회(이에 대해서는 "가톨릭 전례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에서는 봉헌예식에 앞서 이뤄집니다. 이것은 제단에 예물을 바치러 나가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라(마태 5,23-24 참조)는 가르침을 실천해 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아무튼 로마 교회의 미사전례지침에 따르면, 평화 예식이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만큼 생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종 평화 예식의 마지막 부분인 '평화의 인사'는 생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제가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하면, 사제와 회중 모두가 이웃 신자들에게 인사하며 "평화를 빕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평화의 인사인데, 이 부분을 생략하고 바로 영성체 준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 2011년 4월 살레시오회 조성태 신부의 장례미사 장면. ⓒ김용길

하지만, 전례상의 원칙은 이 평화의 인사도 생략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지 예외가 있다면, 장례미사가 될 것입니다. 미사경본에는 다음과 같이 붉은 색 글씨로 지침(rubrica, 전례에 관한 지침에 대해서는, "혼배성사 때 누가 먼저 들어오든 상관없다?"도 참고하여 보세요.)을 두고 있습니다.

이어서 부제나 사제는 교우들에게 서로 평화와 사랑의 인사를 하도록 권한다. 장례미사에서는 생략할 수 있다.

그리고 장례미사 예식서를 다시 찾아 보았더니 마찬가지로 붉은 색 글씨로,

이어서 부제나 사제는 교우들에게 서로 평화와 사랑의 인사를 하도록 권한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이것으로 이해해 보면, 미사전례지침은 평화의 인사를 부제나 사제가 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장례미사 때는 예외적으로 생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장례미사지침은 생략에 대한 예외를 명시하지 않고 있으니 생략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모호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모호한 까닭은 일반적인 미사 지침을 따를 수도, 장례미사 지침을 따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장례미사에 대한 제 기억에 비춰봤을 때, 장례미사 때는 평화의 인사를 안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평화의 인사를 하는 사제들이 있음을 의식하게 되었는데, 저는 그들이 그냥 실수로 하는 줄 알았지 뭡니까. 그리고는 주님께서 주시려는 평화의 본 의미상 평화의 인사를 하는 것이 전례지침에 맞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최근입니다.

하지만, 한국 문화의 정서 안에서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의 죽음과 그로 인한 깊은 상실감 앞에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라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는 강요처럼 보일 수도 있고, 장례미사에 참여한 이들 중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평화 예식의 앞부분인 그리스도의 말씀은 전해 주지만, 미사 참석자들끼리 평화의 인사를 나누도록 권하는 것은 피하는 주례자들이 적잖게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평화에 대한 간단한 해설로서 위로의 뜻을 전하고, 그런 의미로 평화의 인사를 차분하게 나누라고 권하는 것은 어떨까요? 슬픔에 빠진 유족들에게 억지로 기운내라, 이젠 강해져야 한다는 식의 강요가 아닌, 말없이 손을 잡아 주고, 어깨를 도닥여 주는 몸짓 정도면 장례 때의 평화의 인사로 족할 듯합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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