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마이단 쿠데타 이후 ‘어느 쪽 정교회 소속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이념적 판단 기준으로 작용해 왔다. 경쟁 관계에 놓인 두 개의 ‘우크라이나 정교회’(UOC=Ukrainian Orthodox Church와 OCU=Orthodox Church of Ukraine)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정교회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며, 각자가 우크라이나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정교회라고 주장한다.

키이우에 본부를 둔 UOC는 1990년 우크라이나 독립국 수립 이후에 설립되었으며, 2022년 5월까지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라는 명칭으로 러시아 정교회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그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UOC는 러시아 정교회와 결별하고, 5월 27일 모스크바로부터 완전한 독립과 자치권을 선언했다. UOC는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으며, 협상을 통한 평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에 호소했다.

UOC의 수장은 오누프리 대주교로,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 1세의 입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UOC는 완전한 교회 자치권을 누리고 있고, 자체 주교협의회를 운영 기구로 두고 외부의 간섭 없이 수장과 주교들을 선출한다. 모스크바 및 러시아 정교회와의 관계는 순전히 역사적, 영적, 전례적 성격을 지닌다. UOC의 본거지는 주로 우크라이나 동부에 있으며, 이곳 주민 대다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서방 세계의 영향하에 있는 키이우 정부는 UOC를 ‘러시아의’ 교회로 규정하며, 이 교회가 러시아의 입장을 선전한다고 의심한다. 2015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 사용이 금지되고 키이우 중앙 정부가 동부 지역의 자치권을 억압하면서, 우크라이나 안에서는 UOC를 적대하는 투쟁이 시작되었다.

2018년에는 다른 두 개의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UOC의 반대편에 선 OCU에 합병되었다. OCU는 주로 우크라이나 서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2024년 공식 통계에 따르면, UOC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종교 공동체다. UOC에는 가장 많은 신도(현재까지도 1만 명 이상)와 사제, 수도사, 수녀들이 속해 있지만, 2015년 이후 UOC에 대한 우크라이나 당국의 탄압이 거세졌다. 예를 들어, UOC의 사제와 주교들은 경쟁 관계인 OCU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2024년 3월, 우크라이나 문화부는 UOC 소유였던 키이우의 유명 관광지이자 동굴 수도원인 ‘페체르스크 라브라’를 비우라고 명령했다. 이 수도원은 국가에 귀속되어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수도사들은 추방당했다.

UOC에 대한 탄압은 2024년 8월 20일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종교 단체의 러시아 정교회와의 협력 금지 법안’이 통과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UOC는 바로 러시아 정교회와의 협력 혐의로 비난받았고, 이 금지 조치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UOC는 올해 5월 말까지 교구를 해체하고 경쟁 교회인 OCU에 편입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지난 7월 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누프리 대주교의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박탈하면서 UOC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했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SBU는 오누프리가 2002년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오누프리는 현재 추방 위기에 처해 있다. UOC는 이러한 비난을 일축하며, “오누프리 대주교는 우크라이나 여권만 소지하고 있고, 그 외에 러시아 연방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여권은 전혀 소지하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밝혔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UOC 정교회 중 하나. (사진 출처 = Flickr)
우크라이나 UOC 정교회 중 하나. (사진 출처 = Flickr)

우크라이나 내 UOC 본당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베를린 소재 러시아 정교회 ‘성모의 가호’ 교회의 한 사제는 최근 독일 온라인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최근 상황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전국의 UOC 사제와 주교들이 협박, 심문, 체포당하고 있다. 교회와 교회 내 공동체들은 군사 조직과 유사한 조직폭력배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SBU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가택 수색과 체포를 자행하며, 날조된 혐의를 제기해 이들이 징역형을 받게 만든다. 많은 UOC 사제와 주교들이 날조된 혐의로 수개월, 때로는 수년간 수감되었다. 스비아토고르스크 수도원의 아르세니 대주교는 2024년 4월부터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미결 상태로 구금돼 있다. 박해받는 교인 대부분은 도피와 이민을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할 마지막 희망으로 여긴다. UOC 교구와 수도원은 공식적으로 몰수되고 약탈당하고 있으며, UOC의 공식 조직들은 방화, 폭력, 신체 폭행, 그리고 추방 사건들을 보고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위의 베를린 교회 사제는 이러한 사건들을 1920년대 초 소련 볼셰비키의 교회 박해 및 1938년 11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과 비교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경찰과 정보기관이 UOC 교구와 사제들에게 자신들의 교회를 배신하고 다른 국가 산하 교회로 전향하도록 끊임없이 압력을 가한다. 교구 사제들이 더이상 압력을 견뎌 내지 못하고 도피하면, 그러한 교회들은 대개 완전히 폐쇄된다. 인수되거나 몰수된 교회들은 대부분 텅 비어 있으며 그곳 신도들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국가 소유의 교회들은 완전히 몰수되는 반면, 민간 소유인 교회들은 계속 존속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교회 전례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세속화되어 사적인 목적에 사용된다. 예를 들어 술집, 디스코텍, 상점 등으로 개조되는 교회가 많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UOC 금지 조치’를 규탄했다. 2024년 10월,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우크라이나의 종교 자유 제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UNHCR)은 같은 해 12월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당국의 UOC 박해와 그 신도들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에 경각심을 표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그리고 종교 자유의 보전을 단호히 촉구했던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UOC 금지 조치를 비판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유럽 연합(EU), 그리고 키이우를 지지하는 다른 서방 국가들은 이에 상응하는 비판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침략한 전쟁”이라는 논리에 따라, EU 집행위원회는 2024년 8월 20일에 통과된 법안이 “국가 안보와 러시아의 외국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 통과되었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미 2023년 11월에 “우크라이나 당국이 우크라이나 헌법에 보장된 종교 및 신앙의 자유를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의 현실과는 명백히 모순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 4월, 에스토니아 공화국 의회는 자국 종교 단체들이 에스토니아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해외 영적 지도자와 공적으로 연결되는 일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금지 조치는 이제까지 모스크바 정교회 총대주교청과 유대 관계를 유지해 온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어 사용 지역 정교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알라 카리스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이 법안이 종교 및 결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여 헌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하면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민주주의 원칙을 수호하려는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