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이 넘도록 쉼 없이 치열하게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방 국가들은 일관되게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라고 부르며, 이 전쟁은 러시아와 나토(NATO) 간의 군사적 대립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라는 주장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팽창주의의 첫 번째 희생자에 불과하며, 실제로 유럽 전체와 국제 질서가 러시아에게 위협받고 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나토 회원국들은 군사비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2025년 봄, 독일 정부가 국방 예산을 3.5퍼센트로 증액하기로 결정한 것이 하나의 예다.
독일 정부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래식 군대 재건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나토 회원국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올해부터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퍼센트로 올렸다. 국제전략연구소가 발표한 다음과 같은 수치는 증액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가를 보여 준다. 2024년 나토의 국방비는 1조 4,300억 달러였으며, 미국을 제외한 나토는 4,320억 달러, 러시아는 1,460억 달러였다. 나토 국방비를 GDP의 5퍼센트로 올릴 경우, 2025년 나토 국방비는 2조 7,800억 달러, 미국을 제외한 나토는 7,910억 달러가 되고, 러시아는 1,460억 달러 그대로 변동이 없다.
이 수치만으로도 나토가 러시아에 비해 엄청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위협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10월 13일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열린 나토 의회총회 연례 회의에서 “우리 나토의 경제 규모는 러시아보다 25배 더 큽니다. 군사력은 러시아 군대보다 훨씬 우월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가 대체 왜 이 나토라는 압도적인 초강대국에 맞서, 자살이나 다름없는 군사적 대결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군비 증강은 언론이 주도하는 대규모의 이념적 선동으로 뒷받침된다. 독일에서는 “전쟁 준비 태세” 또는 “전쟁 수행 능력”이라는 해괴한 용어가 미래에 있을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전쟁 시기는 2026년이나 2029년으로 예측된다. 정치인들과 이른바 군사 전문가들은 이 메시지를 독일 국민의 마음속에 날마다 주입하려고 애쓰고 있다. 더 이상 외교적 또는 평화지향적 접근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오히려 러시아와의 갈등에 대해 외교적 해결책을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든 즉시 “푸틴 옹호론자”이자 정치에 무지한 인물로 비난받는다. 요즘에는 과거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의 데탕트 정책을 계승하려는 독일 사회민주당(SPD) 당원들조차 격렬하게 거부당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과열된 전쟁 히스테리 속에서도 올해 독일에서는 사회에 만연한 호전적인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길을 제시하는 세 권의 책이 등장했다. 첫째, 고대 중국 철학자이자 군사 전략가인 손자(기원전 545-470년)의 유명한 저서 "손자병법"의 개정판이다. 손자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년. "전쟁론"을 쓴 프로이센 왕국의 군인이자 군사학자. 나폴레옹 시대의 탁월한 전략가이자 서양 최초의 군사철학자로 불린다) 견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다루는 상세한 서문 주석에서, 번역자들은 손자의 평화주의적 접근 방식을 지적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전쟁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전쟁이다. 그래서 "손자병법"의 독일어 개정판 제목 역시 "전쟁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전쟁"이다. 손자에 따르면, "손자병법"은 전쟁을 피하는 것이며, 그는 전쟁이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해롭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항상 막대한 군사 작전 비용을 요구하고 대다수 국민에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할 것은 국가와 국민 모두를 빈곤하게 만드는 장기전이다. 손자와 달리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 비용과 그로 인한 국민 부담, 즉 지역 전체의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손자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와 국민의 복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통치자는 현명하고 예방적인 외교적 접근을 통해 전쟁을 완전히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독일의 사례는 한편으로는 무기에 대한 투자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경제적 부문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다는 심각한 불균형을 보여 준다. 국방 예산은 현재 620억 유로에서 2029년에는 1,520억 유로로 늘어날 예정이지만, 2030년까지 긴급하게 필요한 인프라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3,660억 유로가 부족한 사정이다.
전 미국 해병대 장군 스메들리 버틀러(1881-1940)가 1935년에 처음 출간한 논란의 에세이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 ‘래킷’은 부정한 돈벌이 또는 사기 행각을 뜻함)가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독일어판 제목은 "전쟁 따위는 지옥에나 가버려"(Zur Hölle mit dem Krieg)로, 버틀러 책의 마무리에 적힌 바로 그 문구다. 버틀러는 명예 훈장을 두 차례나 받으며 성공적인 군 경력을 마무리한 뒤,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는 인물이 되었다. 군 생활을 마감할 무렵, 그는 자신이 수천 명의 군인을 미국의 자본을 위해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제국주의 전쟁과 군수 산업의 호전적인 로비 활동에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국방만을 “유일하게 정당한 전쟁 행위”로 간주했다.
그의 관점에서 전쟁은 사기이자 수익성 있는 사업이었다.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는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켜 이익을 취하는 자들이 아니라 바로 국민이다. 버틀러는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백만장자가 2만 1,000명 탄생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전쟁 백만장자 중 실제로 소총을 사용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라고 질문한다. 그의 주장이 오늘날에도 얼마나 타당한지는 주목할 만하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독일 정부의 재무장 및 군사화 정책은 독일 군수 회사, 특히 ‘라인메탈’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고 그 주가를 상승시키고 있다.
버틀러는 군축 회의나 평화 협상을 통해 이러한 전쟁 사업을 없앨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은 요구를 했다. 첫째, 모든 군사 장비를 폐기하고, 더욱 잔혹해지는 살상 무기 연구를 금지해야 한다. 둘째, 군수 산업의 주요 인물, 은행가, 투기꾼들을 일반 군인처럼 30달러에 징집해야 한다. 셋째, 군 복무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람들, 즉 일반 군인만이 전쟁과 평화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
버틀러 저서의 독일어판을 발간하고 서문을 쓴 에리히 바트(Erich Vad) 역시 독일군 준장 출신으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군사 정책 대변인이었다. 그는 현재 독일 언론과 정계에 만연한 히스테리에 가까운 대 러시아 군비 증강 정책과 전쟁 선동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대신 외교적이고 평화 지향적인 계획의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한다.
올해 3월, 27세의 저널리스트 올레 뉘묀(Ole Nymoen)은 저서 "나는 왜 조국을 위해 결코 싸우지 않으려 하는가: ‘전쟁 수행능력’에 저항하다"(Why I Would Never Fight for My Country: Against Warfare)를 출간하며, 독일 정치계 및 언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전쟁과 군국주의에 저항하며, 단순하게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사고방식에 반대한다.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는 것은 그에게 있어 인류애의 실천이자, 더 큰 집단적 자결권을 향한 저항이다. 인기 이야기 쇼와 공식 석상에서 그는 반대자들의 맹렬한 공격에도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지켜 나간다.
지난 6월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독일 국민이 뉘묀과 비슷한 견해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 독일 국민의 16퍼센트만이 “조국을 위해 주저 없이 무기를 들겠다”고 답했고, 36퍼센트만이 군 복무를 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는 갈수록 많은 사람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 상담 센터를 방문하고 있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비판적 시선'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2년간 독일인의 시선으로 국제 정세와 평화를 함께 나눠 주신 게르만 호흐 씨께 감사드립니다. 번역을 맡아 주신 이용숙 씨께도 감사드립니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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