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운동' 30년을 돌아본다 3

해방신학자 성정모와의 재회

한 10년전 쯤 방한해 우리신학연구소와 대담을 나눴던 브라질의 해방신학자 성정모 교수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지난 10년의 시간을 살짝 피해간 듯한 낯익은 얼굴은 몇 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여전히 회복 중에 있다는 예기치 못한 소식과는 대조적으로 건강해 보였다. 두 시간 가까이 쉬지도 않고 진행한 대담에서 ‘2세대’ 해방신학자라는 타이틀이 단지 나이만이 그 기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해방신학자들을 포함해 많은 신학자가 성 정체성이나 여성의 권리, 젠더, 문화, 탈식민주의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중요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며, "실제로 죽고 사는 현실 문제가 어떻게, 왜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1) 교황청 신앙교리부의 심한 박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레오나르도 보프는 지나치게 교회와 신앙 문제로 신학을 제한시켰고,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구티에레스도 억압받는 이들과 이들의 해방에 대해 얘기했지만 신자유주의에 깊이 침윤된 현 자본주의 아래 돈과 시장이 신이 되어버린 우상의 문제, 물신주의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성정모는 ‘인민 신학’(theology of people)을 태동시킨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함한 아르헨티나 신학 그룹의 가장 큰 신학적 공헌은 바로 이 자본과 시장의 물신화를 비판하고 그것을 신학의 주제로 삼은 데 있다고 했다. 문화, 젠더 이슈, 성정체성의 문제도 바로 돈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모든 인간이 이 ‘새로운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노예가 되어버린 현실, 또 그 속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이들을 경제 체제라는 구조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팎의 극우 비판자들이 현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를 비판했다고 해서 교황을 빨갱이요 해방신학자라고 몰았는데, 사실 그 부분은 자신의 스승인 우고 아스만의 경제 비판 이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지 그 자체를 해방신학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교황의 인민 신학에서 옹호되고 있는 ‘가난한 이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로서의 토착원주민 문제는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지난 8월 5일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대담하고 있는 성정모 교수.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br>
지난 8월 5일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대담하고 있는 성정모 교수.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도하고 있는 ‘시노드를 통한 교회 개혁은 완수할 수 없으며 그것을 교황도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의미가 있다면 시노드와 그 과정에서 좀 더 나은 이론과 제안이 나올 수 있고, 이를 통해 나중 세대가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정도라고 평했다. 세계 교회개혁 그룹 가운데에는 프란치스코의 교회 개혁이 그 정점이자 마지막 시도라고 여기는 시각이 꽤 있는데, 이들에게 성정모의 이런 평가는 ‘김새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 결과가 어떻다고 말하는 건 섣부를 수 있겠지만, 시노드에 대한 한국 교회, 특히 교계 지도자들의 무관심과 무책임한 태도를 보노라면 그 끝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것만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건강 문제에도 열정적으로 쏟아낸 해방신학자 성정모의 메시지는 간명했다. 신자유주의 아래 돈과 시장의 우상화로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해방하라는 것이다. 이는 ‘무한 경쟁과 상품화로 구조적으로 죄를 필연화하고 양산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우신연이 신앙적, 실천적으로 양립할 수 없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해 왔다’2)고 평가한 우신연의 신학운동 방향과 거의 일치한다. 이렇게 본다면,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가 명을 다하지 않는 한 앞으로 30년 우신연 신학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답은 부분적이나마 이미 나온 것으로 봐도 좋겠다.

엘리자베스 수녀의 우환 의식

성정모의 심각하지 않은 촌평에 가까운 시노드에 대한 평가와는 다르게, 앞서도 언급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프로젝트를 교회 개혁의 마지막 기회로 보는 교회 내 인사들은 그처럼 담담할 수가 없다. 엘리자베스 데이비스(Elizabeth Davis) 수녀가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녀는 지난해에 로마에서 열린 시노드의 여성 참가자 54명 중 하나이자 또 참가 여성 수도자 5명 중 하나인데, 올해 다시 참가하려니 ‘두렵다(fear)’고 했다.3) 그 두려움은 교회 개혁 과정에 대한 그녀의 우환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더 정확하게는 지난 시노드의 결과를 알기에 같은 일이 반복될까에 대한 우려에 있는 듯하다. 추기경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36개 원탁에 함께 둘러앉아 평등하게 얘기하고 경청하는 자리는 시노드의 목표인 ‘공동협의적 교회’(synodal church)인 것처럼 느껴져 감동이었는데, 폐막 미사에는 다시 수직적인 위계로 돌아가 그 평등의 교회는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도면 거의 미사를 핵심으로 여기는데, 제대에는 교황과 추기경들이 자리하고 그 뒤로는 주교와 대주교가, 또 그 뒤에는 사제와 수도자가, 결국 맨 마지막에 평신도가 서 있는 풍경은 그간 평등하게 격의 없이 듣고 토론하고 나누고 했던 과정을 ‘없었던 일’로 무화시켜 버렸다는 데에 대한 낙담인 것이다. 이 캐나다 출신의 성서학자에 따르면, 그런 형태로 미사를 배치한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참가자 거의가 그것을 당연지사로 여겨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엘리자베스 수녀뿐만 아니라 진정한 평등의 교회를 열망하는 이들이 ‘시노드 참가자들의 대표성’(representation)에 대한 의구심, 곧 ‘진정 이들이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자 회의라고 할 수 있다.

시노드 두 번째 회기를 위해 얼마 전에 나온 ‘의안집’(working document)4)도 그녀의 그 두려움을 다시 불러일으킨 듯하다. 엘리자베스 수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수많은 말과 글과 문헌과 강연, 그리고 실제 행동과 조처에서, 또 이번 의안집을 포함해 시노드 여러 문서에서 ‘교회 내 여성 평등과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로 본다. 그러나 이번 의안집 17항에서 “여성 부제직은.... 제2회기 주제로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함으로써, 이번 시노드에서 ‘여성 문제가 진전되기는커녕 명백히 후퇴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70항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주교와 주교단과 로마 교황의 의사 결정 책임은,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의 교계 구조에 근거하기에 양도될 수 없는 것”이라고 못박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더욱 개탄스러운 언사로 그러한 의사결정권이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가정하는 잘못된 신학적 주장’이다. 엘리자베스 수녀에 따르면 이는 성서에 근거하지 않은 신학적 이해로, 전체 하느님의 백성과의 교감이나 논의 없이 마치 ‘똑같은 세례를 받은 한 하느님의 자녀이지만 여전히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차별이 있고 수직적이고 위계적 교회는 변함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지난 1월 엘리자베스 수녀가 ‘가톨릭 여성평등 네트워크’(CNWE) 초청으로 '국제 가톨릭 교회개혁 네트워크'(CCRI)의 강의와 비슷한 내용으로 강연했다. 사진은 당시 사용한 PPT 가운데 원탁으로 앉아 대화한 시노드 모습.&nbsp;(이미지 출처 =&nbsp;<a data-cke-saved-href="https://www.youtube.com/@rndmcanada4097" href="https://www.youtube.com/@rndmcanada4097">RNDM Canada</a>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1월 엘리자베스 수녀가 ‘가톨릭 여성평등 네트워크’(CNWE) 초청으로 '국제 가톨릭 교회개혁 네트워크'(CCRI)의 강의와 비슷한 내용으로 강연했다. 사진은 당시 사용한 PPT 가운데 원탁으로 앉아 대화한 시노드 모습. (이미지 출처 = RNDM Canada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1월 엘리자베스 수녀가 ‘가톨릭 여성평등 네트워크’(CNWE) 초청으로 '국제 가톨릭 교회개혁 네트워크'(CCRI)의 강의와 비슷한 내용으로 강연했다. (이미지 출처 =&nbsp;<a data-cke-saved-href="https://www.youtube.com/@rndmcanada4097" href="https://www.youtube.com/@rndmcanada4097">RNDM Canada</a>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1월 엘리자베스 수녀가 ‘가톨릭 여성평등 네트워크’(CNWE) 초청으로 '국제 가톨릭 교회개혁 네트워크'(CCRI)의 강의와 비슷한 내용으로 강연했다. 사진은 당시 사용한 PPT 가운데 시노드 이후 미사 모습. (이미지 출처 = RNDM Canada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8월&nbsp;엘리자베스 데이비스 수녀가 ‘국제 가톨릭 교회개혁 네트워크’(CCRI) 초청으로 시노드 결과에 대한 소회와 다가오는 10월 시노드에 대한 생각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 출처 =&nbsp;<a data-cke-saved-href="https://www.youtube.com/@CRCat11291" href="https://www.youtube.com/@CRCat11291">Clyde Christofferson</a>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8월 엘리자베스 데이비스 수녀가 ‘국제 가톨릭 교회개혁 네트워크’(CCRI) 초청으로 시노드 결과에 대한 소회와 다가오는 10월 시노드에 대한 생각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Clyde Christofferson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교황의 ‘인민 신학’과 아시아의 만남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릭교회가 2000년의 역사와 세계적 종교로 확산된 데에는 서구 식민주의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예수의 ‘평등 정신’이야말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또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예수와 그 정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의 헌신과 노고 덕분일 것이다. 그렇기에 성직주의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꿰뚫어 보면서 평등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애써 온 엘리자베스 수녀 같은 노수도자의 깊은 염려와 고뇌가 시노드 문헌 글자 사이사이에 새겨져 있음을, 언젠가 전체 하느님 백성이 발견하고 감사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평등’이라는 말이 자칫 권력화되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신연의 미래는 저 노수도자의 우환 의식과 그것을 삶으로 지켜 내려는 애씀과, 또 그것을 지속하기 위한 자기 공부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데 있을 것이다. 성정모의 말대로 시노드라는 이 평등 교회 프로젝트가 지금 실현되지 못하고 나중으로 미뤄질지도 모르지만, 끝으로 그것의 영감과 직접적 동기와 용기를 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학을 불러내어 우신연 운동의 전망을 다시 한번 간략히 가늠해 보기로 하자.

시노드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교황의 자의 교서 ‘신학 촉진을 위하여’(Ad Theologiam Promovendam, 2023)는 시노드와 관련해 우여곡절과 설왕설래로 어지러워진 마음에 큰 위로가 된다. 이 자의 교서는 갑남을녀가 사는 구체적 삶의 맥락으로의 신학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함으로써 해방신학과 여성신학을 포함한 ‘제3세계’의 제반 상황 신학(contextual theology)을 지지하는 신학 발전의 기념비적인 문서로 여겨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민 신학은 무산자로서의 민중을 우선에 두면서도 ‘일반인’이 포함되는 인민을 신학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삼는 ‘아르헨티나 맥락의 상황 신학’이라고 볼 수 있다.5) 그런 점에서 ‘가난한 이’를 좀 더 개방적인 차원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인민 신학이 교황의 열린 관계론을 바탕으로 한 신학적 사상으로 타 종교나 타 문화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본다면, 아시아의 종교다원주의 신학과 만나 ‘다원주의적 인민 신학’이라는 다소 실험적인 이름의 신학으로 그 의미와 깊이를 더해 가는 신학 사상의 발전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교황의 열린 관계론적 사유란 그의 문헌들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서구 철학과 그것에 깊이 영향을 받은 성속 이원론적 신학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길을 모색함으로써 상황 신학이 파편적이고 특수한 부분에만 한정된 신학이라는 오명을 벗고 더욱 보편적인 신학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점이야말로 상황 신학을 강조한 자의 교서와 교황의 인민 신학이 아시아 신학과 창조적으로 만나는 자리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서구 근대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성속이원론, 인간중심주의, (신)식민주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를 우신연 신학운동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여러 부문 운동이 각기 목적과 역할이 있듯이 우신연이 종교 운동, 신앙 운동 단체이므로 자신의 기본 과제인 교회 및 신학 개혁 운동에 매진함으로써 ‘하느님나라’ 실현, 곧 문명의 대전환을 이뤄 내는 데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및 아시아 신학의 방향이자 미래 우신연 신학운동의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1) 경동현, '해방신학, 신자유주의와 맞서는 생명 신학으로'(성정모와 우리신학연구소 대담 정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4.08.26.
2) 황경훈, ''평신도 신학 운동’ 30년을 돌아본다 1',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4.06.26.
3) 엘리자베스 수녀는 캐나다의 ‘자비의 수도회’(RSM) 소속으로 수도회에서 여러 직책을 맡고 있고 또한 성서학 박사로 신학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친다. 교회개혁 그룹에 속하지는 않지만 2024년 8월 ‘국제 가톨릭 교회개혁 네트워크’(CCRI)의 온라인 세미나에서 지난해 시노드 참가 경험에 대한 소회와 올해 시노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CCRI 웹사이트의 동영상을 참고하라.
4) 영문 의안집은 교황청 사이트를 참고했다. “Instrumentum laboris” for the Second Session of the 16th Ordinary General Assembly of the Synod of Bishops (October 2024), 09.07.2024.
5) Rafael Luciani, Pope Francis and the Theology of the People, Orbis Books, 2017, 9, 23 참조.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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