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의 사상가들을 종합하다
오늘의 서양 철학은 그리스 동쪽에 있는 아나톨리아의 사상가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이들이 서양 철학의 시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최초로 만물의 보편적 ‘기원’ 혹은 ‘근원’을 물었다는 데 있다. 가령 엠페도클레스에 의하면, 만물의 근본 요소는 물, 불, 공기, 흙이며, 이들이 차가움, 뜨거움, 건조함, 습함이라는 성질들과 관계를 맺으며 세계는 다양하게 끝없이 변화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이라는 무규정적 세계가 물, 불, 공기, 흙으로 분화한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을 오늘의 언어로 하면 다원주의(pluralism)의 원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파르메니데스는 진정한 실재는 영원하고 불변하며, 그것은 우리의 감각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볼 수 없고 감각으로 포착되지 않는 영원불변의 어떤 것이 근원적 실재라는 것이었다. 오늘의 언어로 하면 일원주의(monism)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유들에서 영향을 받으며 그리스에서 종합적인 사상 체계가 등장한다. 그 원조가 소크라테스다.
보편 진리로 나아가다, 소크라테스
아테네 출신인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는 만물의 기원을 묻는 데서 더 나아갔다. 그는 ‘대문자 진리(Truth)’, 즉 보편적 진리를 추구했다. 대문자 진리를 가리는 그림자들, 즉 부분적 진리들(truths)을 하나씩 제거해서, 그림자가 가리고 있는 본연의 빛을 밝히려 했다. 그는 대문자 진리를 가리는 논쟁들이 스스로 자기모순에 봉착해 자폭하도록 유도하는 대화법을 썼다. 이 때문에 오해도 많이 샀다. 그가 사형을 당하게 된 것도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곤혹스럽게 하면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다는 오해들이 쌓이면서였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정치 체제가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이라고 하지만, 그리스식의 민주 정치도 한 철학자를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리와 사회 정의까지 추구하다
소크라테스는 근원에 대한 탐구 이상으로 인간의 윤리적 실천도 중시했다. 인간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최상의 가치가 ‘덕’이라면서, 그 가치에 대한 ‘앎’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가치는 ‘좋은 것’이고, ‘좋은 것’에는 보편성이 있으며, 사람이라면 자신의 앎에 대한 실천적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 용기, 정의, 우정 등을 불변하고 보편타당한 가치라고 보면서, 이 가치에 대한 ‘앎’이 ‘삶’으로 연결될 때 그 보편성을 확보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보편타당한 가치로 끝없이 나아감으로써, 어떤 지역(폴리스)에서든 통할 수 있는 불변의 사고와 보편적 행동의 시금석을 확보하고자 했다. 사람들이 이러한 진리를 깨칠 수 있도록 교육에 힘쓰기도 했다. 대화를 통해 저마다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도록 함으로써 ‘앎과 삶의 일치’의 길로 이끌었다. 철학적 대화로 보편타당한 진리를 도출해 내는 선구적인 사상가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신학과 종교가 큰 틀에서 근원적 이론과 그에 어울리는 실천을 요구한다면, 보편타당한 진리와 그 진리의 구체화를 위한 교육과 실천에 투신했던 소크라테스는 신학적, 종교적 자세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를 계승하며 종합하다, 플라톤
소크라테스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오늘까지 남아 있는 그의 사상은 제자 플라톤의 저술에서 추론해 낸 것들이다. 플라톤(기원전 428-348)이 스승의 사상을 자기의 생각에 포함시켜 전했다는 말에는 스승을 계승하되 은연중 자신의 가르침이 스승보다 종합적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 담겨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술했듯이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가리는 그림자들을 없애 대문자 진리(Truth)의 세계를 드러내는 방법론을 사용했다. 부분을 타파해 전체로 나아가는, 비판적이면서 귀납적인 방식이었다. 그런 방식은 부분적 입장들과 부딪힐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주류 견해들과 충돌했다.
그에 반해 플라톤은 보편적 진리로부터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전체에서 출발해 부분을 긍정하는 일종의 연역적 방식이었다. 이런 자세는 전체를 포섭하기에 상대적으로 갈등을 줄인다. 플라톤은 어쩌면 스승을 자신의 길을 예비한 인물처럼 설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중요한 것은 플라톤으로 인해 서양 철학이 오늘의 서양 철학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플라톤의 사유가 종합적이라는 사실이다.
보편 진리로서의 이데아를 제시하다
플라톤도 소크라테스처럼 제대로 된 정치를 위한 이론을 탐구했다. "국가·정체"(The Republic)에 그의 핵심 사상이 담겨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플라톤은 온전한 국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지혜로운 통치자’, ‘용기 있는 수호자’, ‘욕망 충족의 생산자’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정의다. 이상적 국가는 기존 체제를 변형하거나 관례적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정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의의 ‘이데아’가 정치 체제 속에 실현된 상태가 이상적 국가다.
이데아는 모든 현실과 사물의 원형이다. 생성(Becoming)하는 현실 세계와는 다른, 존재(Being)의 세계다. ‘생성’이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물리적, 자연적 불완전 상태라면, ‘존재’는 이성을 통해 인식되는 비가시적, 비물리적, 원형적 완전 상태다. 현실의 세계가 예를 들어 건물, 책(물질명사), 아름다움, 슬픔(추상명사) 등의 ‘다자’(polla)의 세계라면, 진정한 존재는 만물의 원형이자 불변하는 제일원리인 ‘일자’(hen)의 세계다. 후자의 세계가 ‘이데아’다.
이데아는 구체적인 경험 자체는 아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지시된다. 가령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손을 내밀 수도 있고, 밧줄을 던져 줄 수도 있고, 물속에 뛰어들어 직접 구할 수도 있다. 이들 행위는 모두 ‘선’(善)이다. 그 ‘선’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외형이나 감각 기관으로 포착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손을 내밀고 밧줄을 던져 주는 행위가 지시하는 세계가 선이며, 궁극적 선이 이데아다. 선은 모든 가치의 근원으로서, 국가의 정책과 시민의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동굴 비유, 지복직관, 보살도
이데아가 모든 현실과 사물의 원형이라면, 개개 사물들과 가치들은 이데아의 모상이다. 이와 관련해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든다. 동굴 밖에서 비추는 햇빛으로 인해 동굴 안쪽 벽면에는 그림자가 생기는데, 동굴 안에만 있는 사람들은 그림자를 보고 현실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현실이라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동굴 속 그림자와 같고, 동굴 밖의 빛이 이데아와 같다는 것이다. 동굴 안쪽에서 평생 동굴 벽만 보고 사는 이들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동굴 벽의 그림자를 진실처럼 여기며 지낸다. 이른바 사상가들도 다음 그림자가 언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동굴 벽을 연구하며 일생을 보낸다.
하지만 진정한 철학자는 동굴에서 탈출해 동굴 밖에서 환한 빛을 받고 있는 실제의 사람, 동물, 나무, 돌을 볼 것이고, 나아가 빛의 근원인 태양까지 직접 본다. 눈에 보이는 외형 자체가 아니라, 그 외형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의 세계(존재)까지 알고 그곳으로 나아간다. 철학자는 동굴 밖의 태양, 즉 인식 세계의 모든 것을 비추는 선을 파악한다. 이 선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신의 은총의 대용어로 사용되는 ‘지복직관’(至福直觀, Visio Beautifica)의 경지와 같다. 철학자는 개인의 앎에 머물지 않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그림자에 매인 이들에게 빛을 알려 준다. 이것은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의 즐거움을 홀로 누리지 않고 중생 구제를 위해 저잣거리로 들어가는 불교의 ‘보살도’와도 구조적으로 통하는 사상이다.
이데아는 인간의 시공간적 경험에 갇히지 않지만, 그 경험은 이데아의 세계에 참여한다. 가령 동굴 밖에서 보는 실제 나무, 돌, 하늘은 이데아를 알려 준다. 그런 식으로 실제 나무와 돌을 보는 경험은 이데아에 참여한다. 그런데 ‘참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개념화하기는 쉽지 않다. 가령 동굴의 안과 밖의 경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는지, 연결되어 있다면 동굴의 안에서 그림자를 보는 이도 이데아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지 등 궁금해진다. 동굴 밖의 환함과 그 환함의 원천인 태양의 관계가 정확히 어떤지, 빛을 받는 인간과 빛 자체는 동일한지 아닌지 등등 현실 세계와 이데아의 관계를 명확히 설정하기가 애매하다.
가령 소크라테스, 플라톤, 붓다, 예수 등 모두 ‘사람’이라고 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플라톤, 붓다, 예수 같은 구체적 인물이지, 이데아로서의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플라톤은 지각 가능한 사물들을 통해 지각을 넘어서는 이데아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지각을 넘어서는 세계라는 것 자체도 시공간적 지각 안에서 예상되고 상상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데아론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것은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비판한 내용이기도 하다.(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는 다음에 중요하게 살펴볼 예정이다.)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다
플라톤은 변하는 현상 세계가 아니라, 불변하고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에 대해 인식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면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서양 철학의 기초를 다졌다. 물질적 요소를 중심으로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던 자연철학자들에게서 벗어나서, 보이지 않으면서 보편적인 가치 중심의 학문, 이른바 ‘형이상학’의 기초를 놓았다. 눈에 보이는 물질계를 벗어나는 절대 진리의 세계를 각인시켰고, 전술했던 아나톨리아 사상가들의 다원론과 일원론을 종합했다. 이런 사유 체계는 여러 모양으로 변주되면서 오늘의 철학에까지 이르고 있다. 정치와 도덕은 상대적 경험 세계가 아닌 절대적 규범을 지향해야 한다면서, 소크라테스의 정치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했고, 오늘날 정치 철학의 모태를 만들었다.
20세기의 대표적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유럽의 철학적 전통을 가장 확실하게 일반적으로 특징짓는다면 그것은 그 전통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플라톤 이후 이어지는 서양 철학은 거의 이데아와 현상 세계의 도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칸트가 말하는 ‘물 자체’와 ‘현상 세계’, 신학에서의 ‘신’과 ‘인간’ 등이 비슷한 도식을 하고 있는 것도 그 증거들이다.
이런 식으로 플라톤을 위시한 그리스 철학자들로 인해 구체적인 형태(형形) 너머(상上)에 대한 사유(학學)가 추후 서양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사물이나 현상 자체가 아닌 사물이나 현상 너머 혹은 근원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은 20세기까지 서양 철학의 기초로 작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신학도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빚진 바가 크다. 그리스도교적 신론이 특정 지역과 민족을 포괄하면서 초월적 보편성까지 확보하게 된 것은 거의 플라톤 철학의 영향이다. 플라톤은 보편적인 진리를 전제하고, 그로부터 세상을 설명하는 종교적 사유 체계의 시원과도 같다. 플라톤이 없었다면 오늘의 신학도 없었을 것이다.

이찬수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신학, 불교학, 철학을 중심으로 이십여 년 종교학을, 십수 년 평화학을 강의하고 연구했으며, 아시아종교평화학회를 창립해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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