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두 해 동안 매달 네 번째 월요일에 '융합으로서의 철학과 신학'을 연재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이찬수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연재를 시작하며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으며 산다. 아주 복합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복합적 삶과 원리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계속되어 왔다.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에 대한 전인적 투신으로서의 종교도 이어졌다. 종교인들은 그 투신이 철학적 질문에 대한 심층적 해답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면서 신학도 다듬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서양 사상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훑으면서, 시대별 사조의 특징과 의미, 그것의 신학 및 신앙과의 관계 등에 대해 두루 알아보고자 한다. 가능한 대로 과학과 문화 등 인간 삶의 다양한 업적과 자취 및 동양 사상과도 연계해 융합적 고찰을 시도할 것이다.
1. 철학 없이 신학 없다
20세기의 대표적 개신교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종교철학자이기도 하다. 신학자들보다는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등의 사상을 더 많이 해설하곤 한다. 20세기 신학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할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1904-84)도 토마스 아퀴나스는 물론 칸트, 마레샬, 하이데거 등의 철학적 기반 위에서 전통 신학의 언어를 재해석한다. 두 사람 모두 신학자이고 신앙인이되, 철학을 공부하며 신학적 설득력을 확대시켜 왔다. 신학(theology)도 신(theos)에 관한 인간의 말(logos)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인간은 전 세계를 구성하며 다시 그 세계에서 두루 영향을 받으며 사는 융합적 존재라는 점에서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형성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역사와 문화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신에 관한 말이 하나의 학문이 된 데에는 유대교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그리스 철학, 로마의 정치, 경제, 종교 등이 두루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그리스 철학이 없었다면 오늘의 신학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오늘의 서양철학은 그리스 철학에 많은 빚을 지고 있으니, 그리스 철학은 서양의 사상과 철학 전반은 물론 신학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2. 서와 동이 교섭해 왔다
서양철학의 원조 격인 그리스 철학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동쪽 지역’의 사상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당시 그리스의 동쪽은 오늘날 튀르키예 지역이다. 고대 서양인들이 ‘동양’, 즉 ‘오리엔트’라고 불렀던 곳은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아나톨리아 반도다. 그리스의 동쪽 지역인 아나톨리아에서 전개한 사상이 없었다면 서양철학의 원조도 형성될 수 없었다.
서양철학이 점점 더 풍요로워진 데에는 오리엔트는 물론 서아시아(이슬람), 인도(힌두교, 불교), 중국(불교, 유교, 도교) 등 ‘아시아’의 사상과 교류한 영향도 크다. ‘오리엔트’가 동쪽 지역을 의미하듯이, ‘아시아’도 원래 ‘해가 뜨는 곳’을 의미하는 아카드어 ‘앗수’에서 온 말이다. 서양도 오리엔트, 아시아 등 동쪽 지역에서 영향을 받으며 저마다의 사상을 키워 왔던 것이다.
3. 여러 영역이 교차해 왔다
선구적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의 세계관도 자연스럽게 소화해 왔다. 근대에 들어 과학과 철학 등 학문이 나뉘고 세분화되었다가, 최근 이들은 다시 만나고 있다. 신학의 역사가 철학, 정치, 과학 등 여러 분야와 만나며 성립되어 왔듯이, 신학을 그저 신학의 언어로만 풀어서는 곤란하다. 신학 안에는 거의 전 세계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다. 신학이 특별한 영역처럼 축소되고 경직되어 온 측면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신학은 ‘융합학’이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학문이다. 융합학으로서의 신학의 성격을 더 적극적으로 되살려야 한다. 인류가 산출한 모든 학문, 특히 서양과 동양의 철학, 과학 등의 언어를 반영하며 22세기에도 설득력이 있는 학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신학이 여전히 설득력 있고, 신앙도 유효해진다.
4. 왜 서양일까, 동서양 융합을 지향하며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지구적 사유의 패러다임은 사실상 근대 서양이 주도해 왔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 문제의식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왜 문명의 패러다임이 서양에서 시작되었나의 문제다. 서양에서 주도해 온 세계와 우주, 특히 세계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분석과 상상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둘째, 오늘의 근대 문명을 성립시킨 근본 동력은 무엇이었나의 문제다. 무엇보다 인간 중심적 주체의 발견과 그 주체에 입각한 사물의 객체화의 의미와 한계를 짚어야 한다. 인간의 주체성과 사물의 객체성은 서양 사상의 특징이자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이 그저 이론으로만 머물지 않고 자연물을 인간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오늘의 과학과 경제를 낳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거의 전 세계가 이 서양 문명의 세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은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 동시에 그 한계도 같이 짚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것이 오늘의 신학과 신앙의 의미와 한계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첫째 문제의식은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지만, 동양에서는 상대적으로 이것이 둘째로까지 충분히 연결되지는 않았다. 물론 연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동양 철학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양성의 표현, 관점상의 차이일 뿐이다. 더욱이 세계를 주도하던 서양 문명이 결국 환경 파괴 등으로 지구를 교란해 오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상대적으로 ‘덜’ 인간 중심적이던 동양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때그때 동양의 사상과도 연계하며 주의 깊게 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찬수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신학, 불교학, 철학을 중심으로 이십여 년 종교학을, 십수 년 평화학을 강의하고 연구했으며, 아시아종교평화학회를 창립해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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