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2024년 12.3 저녁, 마른 하늘의 벼락처럼 펼쳐진 광경을 눈으로 보고, 아닌 밤중의 도깨비 같은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글자 그대로 혼비백산, 혼은 날아가고, 넋은 빠졌습니다. 그런데 해가 바뀌어 1월이 지나고 2월도 가서 3월이 되면서, 많은 사람이, 두 눈으로 본 것들마저 점점 잊어 가고 마음에서 멀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이 팔다리를 잃고, 목숨까지 바쳐 가며 일으켜 놓은 민주주의 체제는 허물어져 가고, 그에 못지않은 희생으로 이루어 놓은 경제적 성과는 무너져, 백만 단위의 자영업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국가 경제는 천길 낭떠러지 끝에 놓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악마의 탈을 쓴 채 의회 창문을 부수고 들어갔던 지지자들을 애국자로 치켜 세우는 인물이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국회 난입 광경을 보고도 같은 사람을 또 같은 자리에 세운 그 나라 국민들을 보며, 국제 사회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펼치고 있는 정책들 앞에서, 다른 나라들은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를 피해 살 길을 찾노라고 허둥대는 작은 동물들처럼, 외교력을 총 동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호랑이를 찾아가 살살 빌며 살려 달라 읍소하고, 그것으로 안 되겠다 싶으면, 자기네들끼리 이리저리 떼를 만들어 울타리를 치고 있습니다.

12.3 사태 이후,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된 우리나라는 앞으로의 역사를 결정할 절체절명의 이 시기에, 자기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그것이 목에 감긴 다음에야 도대체 왜 그것을 내 목에 씌웠는지 알려 달라며 뒤늦게 달려가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2. 산불

미국이나 호주에서 일어나 몇 달 혹은 해를 넘기면서 어마어마한 지역을 잿더미로 만드는 그 무서운 화마 소식은, 그야말로 ‘강 건너 불’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축구장 수만 개에 해당하는 산들이 재로 변하고, 소방대원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국민이 희생되며, 천년 고찰 등 국가 문화 유산들이 하릴없이 소실되었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진화 헬기 한 대가 추락하여 조종사가 사망했으며, 이제부터는 헬기 투입을 중단하겠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신문에 실린 경북 안동시 남안동 나들목 인근에서 찍은 사진은, 현장에서 지켜본 이의 심정을 짐작케 합니다. 산 아래 넓은 지역에 걸쳐 조성된 마을들 바로 옆까지, 여러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시뻘건 불길과 그 일대 하늘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거대한 연기 뭉치는, 화마 곧 불 마귀라는 표현이 연상시키는 지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타들어 가는 국민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하고, 서둘러 우리의 마음과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대자연이 어떻게 보복할지를 보여 주는 듯도 합니다.

지난 21일부터 일주일 가까이 번진 산불이 건조한 날씨와 강풍으로 27일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다. (사진 출처 = KBS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21일부터 일주일 가까이 번진 산불이 건조한 날씨와 강풍으로 27일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다. (사진 출처 = KBS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3.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5천 년 역사에서 한 세대 만에, 경제는 제일 가난한 나라에서 제일 부자 나라 클럽에 들어가고, 케이-팝을 앞세우고, 영화, 스포츠, 문화 여러 영역, 그리고 최근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으며, 문화적으로도 세계 무대에서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발언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것은 나른한 봄날 잠깐 스쳐간 꿈이었을 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많은 이가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부끄러워서도 못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인간에게 부끄러움은 죽음보다 더 끔찍합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이가 갑자기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을 우리는 최근의 역사에서 거듭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 국민이 모두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4. 갈림길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은, 물질적 피해에 더해서, 바로 이 부끄러움이라는 정신적 한계 상황을 두고도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면, 그동안 우리가 치른 엄청난 대가가 나름의 보상을 받는 셈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 앞으로도 계속 얼굴을 들고 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정신 차려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여라.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명심하여 잊지 않도록 하여라. 평생토록 그것들이 너희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여라. 그리고 그것을 자자손손 깨우쳐 주어라.”(신명 4,9)

역사는 반복되고,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같은 역사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주되고, 등장 인물이 바뀔 뿐입니다. 3400여 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명기의 이 말은, 천둥 같은 울림으로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흔들어 깨웁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이루어 낸 성과에 스스로 취해서, 정신을 잃은 채 졸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떨쳐 일어나면, 이런 상황을 극복해 내는 그 모습이 세상 사람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할 것입니다. 아니, 과거에 이룬 그 어떤 업적보다도 더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국민으로서, 인류 앞에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12.3 사태와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을 기록한 영상들은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의 취약성과 함께,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교과서로서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생각해도 똑같습니다.

5. 두 눈으로 본 것

“정신 차려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여라.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명심하여 잊지 않도록 하여라. 평생토록 그것들이 너희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여라. 그리고 그것을 자자손손 깨우쳐 주어라.”(신명 4,9)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백성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바다 건너에 그런 나라가 있지만, 그 앞날은 빤합니다. 한때 번영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꺼지기 직전에 잠깐 반짝이는 심지일 뿐입니다. 며칠 되지도 않아서,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선고를 시작하고 있는 헌법재판관들. (사진 출처 = 헌법재판소 누리집 동영상 갈무리)
지난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선고를 시작하고 있는 헌법재판관들. (사진 출처 = 헌법재판소 누리집 동영상 갈무리)

6. 재판관들

지금 우리 나라의 운명은 여덟 분의 헌법 재판관에게 달려 있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 국민들 앞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든지, 그 다음에 그분들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분들이 바라보아야 할 곳은 이쪽이나 저쪽이 아닙니다. 그날 밤에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을 기억하고, 법의 글자가 아니라, 그 정신을 떠올리기 위해서, 위로 하늘을 바라보고, 아래로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정신은 사람을 살린다”(2코린 3,6)고 했습니다. 법의 문자적 의미에 잡혀 있으면, 그때부터는 법이 ‘법 기술자들’의 손에 들어가 이리저리 비틀리고 구부러져서, 죽일 사람은 살려주고 살릴 사람은 죽이는 일이 벌어지기가 쉽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어린이의 눈에도 훤히 드러나는 법조계의 실상을 잘 표현합니다.

그런데 심판은 법정에서 법복을 입은 재판관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사회의 시민 하나하나는 특히 투표소라는 법정에서 일종의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지연, 학연, 혈연, 사회적 지위연 등 온갖 이기적 동기로 한 표를 행사하면, 그것은 국가와 지역 사회에 이번과 같은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헌법재판관과 더불어 모든 국민이 법의 문자를 뛰어넘어, 그 정신을 살리고, 그날 저녁에 본 것을 기억하기만 해도, 일곱 살 어린이에게조차 명백한 답이 태양만큼이나 환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법의 문자적 의미를 폐기하고 그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 오신 분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마태 5,17-18)

“‘...’ 하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규정을 하나 하나 들고 나서는,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언뜻 듣기에 그 율법을 폐기하시는 듯한 인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곧 이어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그분이 문자적 의미를 뛰어 넘어 그 정신을 살리러 오신 분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분에게서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을 만나는 것입니다.

2025.3.26 강론

이병호 주교(빈첸시오)

전 전주교구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