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동안 '신학적 사회 비평-시대의 표징'을 한 달에 한 번 싣습니다. 교회는 항상 ‘시대의 표징’을 읽고 그것을 복음에 비추어 해석할 책무가 있습니다.('기쁨과 희망' 4항) 이에 따라 우리 시대의 표징인 사회 위기, 생태 위기 현실을 분별하고 그리스도인의 선택을 성찰하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정경일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12.3 비상계엄령 선포로 시작한 ‘서울의 겨울’, 위협받는 것은 민주주의 질서만이 아니다. 그날 이후 매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흔들린다. 혹독한 ‘신앙의 겨울’이다. 왜 그런가? 미운 사람이 많아서다. 극우 알고리즘에 현혹된 채 내란을 일으켜 온 국민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야당 탓, 부하 탓만 하며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항변하는 나르시시스트 대통령,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는 무관심한 채, 당리당략에만 사로잡혀 내란 우두머리를 노골적으로 편드는 집권 여당,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 편 가르기를 하며 혼란을 부추기는 보수 언론, 황당한 음모론에 빠져 ‘정치적 내전’을 선동하는 극우 세력, 가해자인 대통령 방어권 보장은 가결하고 피해자인 국민 인권침해 직권 조사는 부결시킨 국가인권위원회 등등, 미운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 안의 미움이 이리 큰데,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니, 신앙이 흔들릴 수밖에.
신앙이 무슨 사물 같은 것이라면 차라리 어디에 내던져 버리거나 안 보이는 데 처박아 두고 싶을 때도 있다. 소위 ‘신앙 좋다’, ‘믿음 좋다’는 극우 개신교인의 무지막지한 반민주적 행태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 극우 세력의 중심에는 극우 개신교가 있다. 광화문 광장을 지키는 전광훈 목사 주도의 ‘태극기 집회’, 전국을 돌고 있는 손현보 목사 주도의 ‘세이브 코리아 국가비상 기도회’ 등,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격렬해지는 탄핵 반대 집회의 주동력은 극우·보수 개신교인이다. 탄핵을 찬성하는 동료 시민을 종북·종중 세력으로 타자화하며 증오를 부추기는 극우 집회에서 ‘주님’,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할렐루야’, ‘아멘’ 같은 익숙한 그리스도교 용어를 듣다 보면, 신앙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영혼이 황폐해지는 것 같다.
극우 개신교 집단은 윤석열 대통령을 메시아나 순교자처럼 여기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그가 경건한 신앙인 같지는 않다. 구치소에서 윤 대통령이 극우 개신교 인사가 보내 준 성서를 읽고 있다던데, 그래서 깨닫는 게 뭔지 모르겠다. 하느님나라 정의를 선포하는 예언서와 복음서를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가슴 깊은 데가 찔려 자신이 벌인 사태를 후회하며 회개할까? 헌법재판소 변론에서 거짓말을 남발하며 자기 정당화에 급급한 것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게다가 그가 주술에 기댄다는 의혹도 하나둘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극우 개신교인은 물론, 적지 않은 복음주의 개신교인마저 복음적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윤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는 태평양 건너 미국의 그리스도인에게도 같은 물음이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한창 대선 경쟁을 하고 있을 때, 미 복음주의자들 중에는 전혀 복음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를 지지해야 하는 것을 찜찜해 하는 이들이 꽤 있었나 보다. 이때 복음주의 분파 중 하나인 ‘신사도개혁’ 운동 설교자이며 “트럼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선전가”로 알려진 랜스 월나우가 나서서 복음주의 내부의 혼란을 단박에 정리해 줬다. 트럼프는 “혼돈 속에서 길을 찾도록” 하나님이 선택하신 “현대의 키루스(고레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고대 페르시아 왕 키루스를 움직여 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거기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 민족을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축하게 하신 것처럼, 현대에는 트럼프를 선택하셔서 그리스도인이 반동성애, 반낙태, 반이슬람 등 ‘문화 전쟁’,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이었다.
월나우의 트럼프 지지 논리는 즉흥적 말장난이 아니었다. 2013년에 그는 빌 존슨과 함께 출판한 "바빌론 침공 : 7대산 명령"(Invading Babylon: The 7 Mountain Mandate)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종교, 가족, 정부, 교육, 매체, 예술/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7대 권역을 재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신학적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트럼프는 ‘7대산 명령’을 실현하도록 도울 키루스 같은 인물이라는 정치적 논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전형적 전쟁 논리로, 결국 이교도 키루스 같은 트럼프를 지지해 “미국을 다시 기독교 국가로 만들자(MACA, Make America ‘Christian’ Again)”는 것이었다. 덕분에 미 복음주의자들은 신앙적 거리낌 없이 “예수는 나의 구세주,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Jesus Is My Savior, Trump Is My President)”이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트럼프 지지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 우파의 신학적 해석과 정치적 선전으로, 2016년 당시 미 대선에서 백인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77퍼센트가 트럼프를 선택했고, 이는 탄핵 직전까지 내몰렸던 트럼프의 백악관 탈환을 성사시킨 2024년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면, 한국 그리스도교 우파가 미국 그리스도교 우파를 모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극우 태극기 집회에서 미국 성조기가 범람하는 것은 기본이고, 최근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는 미 트럼프 지지 집회에서 나왔던 ‘Stop the Steal([선거] 도둑질을 멈춰라)’이나 반중·혐중 구호가 난무한다. 심지어 올해 1월 19일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난입·난동 사태는 2021년 1월 6일 선거 결과를 부정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국회의사당 난입 폭력 사태를 연상시킨다. 당시 그리스도교 십자가와 깃발로 뒤덮였던 국회의사당 폭동을 사회학자 새뮤얼 페리는 “그리스도교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한국의 서부지법 사태와 관련해서도 극우 개신교 집단의 직간접적 연루가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이와 같은 미국과 한국의 그리스도교 우파 간 유사성과 연관성은 한국 교회의 극우화를 우려케 하는 조짐이다.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그리스도인을 보면 신앙이 흔들리지만, 그래도 신앙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예언자들과 예수가 보여 준 정의와 사랑의 길을 따라 걷는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 덕분이다. 남태령, 한강진, 광화문에서, 자신이 민주주의를 지킬 때 민주주의가 자신을 지켜 준다는 것을 알고 행동한 시민이 만들어 낸 거대한 빛의 물결 속에 그리스도인의 빛도 있었다. 물론 그 수로 보면, 그들보다 극우·보수 그리스도인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답게 하는 것은 교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정신과 삶이다.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로마제국의 국가 교회가 아니라, 로마에 저항한 갈릴래아 예수의 하느님나라 공동체였다.
예수는 당대의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타자화하고 비인간화하고 주변화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우선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너무 깊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었다. 인간 예수의 신적 사랑을 경험하고 목격하고 기억한 사람들에게 예수는 메시아, 즉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마태 16,16)였다. 그래서 디트리히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타자를 위한 존재”라고 한 것이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반민주적 극우를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으며 극우 집단이 타자화하여 배제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곁을 끝까지 지키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사실이 신앙이 흔들리는 이 계절에 우리를 붙들어 주고 깨우쳐 준다. 겨울은 지나간다. 우리는 봄을 믿는다.
정경일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를 비교 연구했으며 사회적 영성을 탐구하고 있다.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심도학사 원장으로 일하면서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한국민중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아픔 넘어 : 고통의 인문학"(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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