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생존권 보장 촉구 위한 거리 미사 봉헌
20일, 전국 농민 집결, 총궐기 나선다
2015년 11월 14일 농민 생존권과 농사지을 권리를 요구하며 거리에 섰던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4일, 가톨릭농민회(이하 가농)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전국본부(이하 우리농)가 고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고, 농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봉헌한 미사에는 각 지역 가농과 우리농 회원, 사제 수도자들이 참석했다.
가농과 우리농은 9년 전과 다름없는 농민들의 현실에서 “계속 농사지을 권리와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 기후 재난 근본 대책 수립, 무차별적 농산물 수입 중지와 지속 가능한 농업 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농촌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나서야 합니다. 농촌을 잃어버리면 도시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밥을 생산하는 농민이 존중받는 세상을 이루는 것이 백남기 농민이 꿈꾸었던 세상일 것입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백남기 농민이 목숨 걸고 외쳤던 쌀값 보장과 농민들의 삶은 2015년보다 더 나빠졌고, 윤석열 정부는 근본 대책 마련이 아니라 ‘쌀 재배 면적과 생산을 줄이는 데만’ 급급하다면서, “밥 한 공기 300원, 쌀값 26만 원, 노동에 대한 공정한 가격을 요구하는 농민들에게 쌀값 폭락의 원인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농민들은 소득은커녕 기후 재난으로 농사 기반마저 무너질 위기이지만, 물가 상승의 주범이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있다면서, “이런 농민들에게 기후 재난 피해 보상이 아니라 농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는 농산물 수입을 내밀고 있다. 농업 파괴, 농민 말살 앞에 농민들은 피울음을 삼켜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폭력적이고 반생명적 죽음 문화에 맞서 지속 가능한 생명 농업 확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오는 20일 전국 농민대회 참여를 결의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산지 쌀값은 2018년보다 낮아졌다. 20킬로그램 기준 2018년 4만 8693원이던 쌀값은 2021년 5만 6803원으로 오르다가, 2022년 약 4만 7000원, 2024년 10월 기준 4만 7039원으로 떨어졌다. 특히 올해는 벼멸구와 집중 호우, 흉년까지 겹쳤다.
최근 5년간 쌀자급률은 94.3퍼센트이지만, 정부는 쌀값 폭락 원인이 과잉 생산이라며 농민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또 재배 면적 감축 할당을 주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농가에는 제재(페널티)를 가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쌀값 폭락의 진짜 원인은 매년 약 40만 톤(국내 생산의 약 11퍼센트) 수입하는 쌀이며, 이는 수입 의존도를 높이는 개방 농정 심화에 따른 것이라면서 통상 문제를 지적했다. 이런 현실에도 정부는 ‘민생 경제 1호 정책’으로 물가를 잡겠다는 명목으로 농축산물 수입 늘리기를 일관하고 있다.
가농 신흥선 회장은 8년 전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모인 우리는 역시 국민의 외침에 귀 막은 대통령의 말로도 기억하고 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거부권 1호를 발동했고, 농민, 노동자,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부패, 의료 붕괴, 민영화 추진을 보면서 농민들도 남은 3년은 너무 길다며, “쌀값은 올리고 윤석열은 끌어내리자”고 굳게 다짐했고, “우리는 농사를 짓고 싶다. 농사짓는 사람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도록 힘차게 연대하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원교구 가농 최요왕 농민은 “올해 여름을 거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더욱 막막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농업 정책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는 것과 같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농업 정책을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 정책은 근본을 지키기 위한 어떤 규정도 없다. 정부 정책은 그때그때 바뀌고, 농민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쫓아다니는 모양새였다”면서, “농업 문제에 있어서 헌법 같은 이른바 농민기본법, 교회의 십계명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것을 기반으로 한 판단과 심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이제 농민 수가 얼마 안 된다. 그러나 농업 문제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문제다. 그러니 국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힘을 써 줘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교회 역시 가농과 우리농이 생명농을 지지하고 지키기 위해 애썼던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농업을 지키기 위한 근본적 노력을 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연숙 회장(우리농 생활공동체 협의회)은 농민들에게 재앙이었던 기후 변화는 결코 농민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도시민들의 환경에 대한 무관심과 정부의 무대책이 고스란히 자연과 농촌 현장에 피해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농민과 도시민의 상황이 절대로 다를 수 없다. 금값이 된 채소와 과일로 농민들이 금값을 벌었는가. 물가를 잡겠다고 수입 농산물로 식탁을 차리라는 정부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우리 도시 소비자들은 농민을 무시하고 수입한 빛깔 좋은 배추와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 농민들이 생산비를 보전받고 행복하게 농사지으며 다음 해에도 농사짓겠다고 하는 기쁜 농산물을 받아 보고 싶다. 11월 20일 전국 농민대회에 우리 활동가들도 함께 큰 소리로 외칠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미사 강론을 한 안영배 신부(안동교구, 우리농 상임대표)는 2015년 11월 14일 당시, 쓰러진 지 317일만인 2016년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났을 때를 떠올리며, “많은 이의 희생과 헌신에도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듣도 보도 못한 세상의 모습이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쌀값은 계속 떨어지고 생산비는 계속 올라가고 이렇게 농업을 포기하는 것은 곧 식량 주권을 내려놓는 것이고, 서민들의 평범한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수순으로 갈 것”이라며, “농산물 수입 규모는 2020년 대비 현재 44배 늘어났다. 한국 정부의 유일한 농정은 바로 농산물 수입 개방”이라고 강조했다.
안 신부는 “여기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의 바람은 농사짓고 싶다는 것, 먹고사는 걱정 안 하고 농사짓게 해 달라는 것, 땀 흘려 땅을 갈고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할 줄 알고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양식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라며, “농민들의 소박한 꿈을 이뤄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가 찾는 하느님나라의 모습이다. 하느님나라가 어디서 어떻게 오느냐, 지금 우리가 바라고 기도하는 그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 그 꿈이 완성되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나라가 완성되는 바로 그 자리, 그 시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일에는 서울 시청역(숭례문 방향) 일대에서 오후 3시부터 전국 농민대회와 2차 총궐기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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