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와 춘천교구가 국회 2차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결의를 앞둔 13일, 시국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저녁,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 대성당에서 올린 시국 미사에는 사제 40여 명, 신자와 수도자 4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동안 대구대교구에서 시국에 관한 목소리를 낸 것은 2010년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생명평화 미사 이후 처음이다. 이 미사는 ‘내란’ 사태에 대한 대구대교구 공동체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자리이기도 했다.

대구대교구가 13일 주교좌 계산 대성당에서 시국 미사를 봉헌했다. 대구대교구가 시국 미사를 봉헌한 것은 이명박 정권 사대강 사업 반대 이후 14년 만이다. ⓒ정현진 기자<br>
대구대교구가 13일 주교좌 계산 대성당에서 시국 미사를 봉헌했다. 대구대교구가 시국 미사를 봉헌한 것은 이명박 정권 사대강 사업 반대 이후 14년 만이다. ⓒ정현진 기자

“네가 죽은 뒤에 장례식을 아직도 치르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의 삶이 장례식이 되어 버렸다.”(한강, “소년이 온다”)

주례한 원유술 신부는 미사 시작에 앞서 한강 작가의 소설 한 대목을 읽으며, “역사 안에서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수많은 원혼의 영혼들이 남아 있다. 식민지 청산을 하지 못했고, 분단과 전쟁의 아픔 속에서, 폭력과 온갖 탄압으로 우리 곁을 떠난 수많은 젊은이, 독립투사들.... 우리 현실 속에서 폭력과 탐욕 때문에 수많은 원혼이 눈을 감지 못하고, 우리는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며,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무시무시한 계엄을 선포하고, 내란을 일으키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 세대는 그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라면서도, “위로와 희망은 있다. 빛이 승리할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추운 겨울, 국회로 달려가고, 총부리에 맞서는 그들의 용기가 있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선결제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축제가 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의 삶들을 향했다”고 말했다.

이날 대구대교구 시국 미사에는 사제 40여 명이 함께했다. ⓒ정현진 기자&nbsp;<br>
이날 대구대교구 시국 미사에는 사제 40여 명이 함께했다. ⓒ정현진 기자 

성용규 신부는 강론에서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밤 그 짧은 시간 국회를 에워싸고 맨몸으로 차가운 쇠붙이를 밀어낸 그 시민들 덕분에, 우리는 정말 간발의 차이로 큰 불행을 피했다면서, 또 그들에게 빚을 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쩌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이 지경이 된 것은 우리 고향, 대구, 경북의 책임이 크다. 우리 종교 대구대교구의 책임도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고, 참석자들은 이에 응답했다.

“종교가 이 땅에 하느님나라라는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라는 그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과 타협하고 편한 길, 그러나 죽음의 길을 우리가 걸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용규 신부는 대구대교구 소유였던 <대구매일신문> 2021일 3월 19일자 만평에서 계엄군의 광주시민 학살 사진을 쓰고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한 사실과, 이를 사과한 뒤에도 전두환 찬양 광고를 게재한 일, 전두환 군부의 특혜로 얻은 팔공산국립공원 골프장도 언급하면서, “이런 토양에서 계엄을 선포하고 그에 찬성하는 집단이 자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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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계산 대성당을 채운 신자, 수도자들. 이날 미사에는 어느 곳보다 수도자들의 참여도가 높았다. ⓒ정현진 기자 

“일제강점기, 박정희 독재, 전두환 군부 독재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언젠가는 우리 신자 여러분 모두와 수도자 여러분 모두와 성직자 모두가 함께 모여서 역사 안에서 우리 대구대교구가 뭘 잘못했는가, 어떤 책임이 있는가를 식별하는 시간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성 신부는 “탄핵이 헌정 질서 중단”,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한 대통령의 직무 위임”과 같은 거짓말이 너무 당당하고 뻔뻔해서 언어를 오염시키고, 분열시키고, 파괴해 버릴 것 같다면서, “언어는 우리 서로를 이어 주는 금실이라는 한강 작가의 말과 이 뻔뻔하고 당당한 거짓말이 한 시간과 공간에 어떻게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한탄했다.

그는 “이 세상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돼 있고,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하는 곳이라고 믿고 있다. 이 세상은 함게 사는 곳이다. 이기적인 집단을 폐기하고 우리끼리 살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함께 살아야 한다”면서,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도, 증오도 아니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가련함’”이라며, “당신들을 보는 우리들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우리는 당신들이 너무 가련하다. 제발 이기심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13일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 성당에서 시국 미사가 봉헌됐다. (사진 제공 = 춘천교구 문화홍보국)
13일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 성당에서 시국 미사가 봉헌됐다. (사진 제공 = 춘천교구 문화홍보국)

춘천교구도 같은 시간 주교좌 죽림동 성당에서 시국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주례는 문양기 신부가, 강론은 김학배 신부가 맡았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오 11,16-17)

김학배 신부는 이날 복음 구절을 들며, “오늘 복음은 우리의 현실을 알려준다. 어제(12일) 윤석열의 담화를 보며 국민은 내란 범죄자 물러나라고 하는데, 오히려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한다. 내란수괴를 탄핵하라는데 국민의힘은 국민을 위해 반대하겠다고 한다”며, 이런 어리석은 자들에게 복음은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들로 드러났다고 말한다”고 일침했다.

그는 우리는 이전의 시국 미사를 통해 윤석열 퇴진을 요구한 바 있고, 그때에 이미 대통령의 자격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면서, “이태원에서 죽어간 젊음들, 채상병의 죽음에도 윤석열은 국민이 아니라 자기 사람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당시 책임지지 않았던 인사가 결국 내란 주범 중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13일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 성당에서 시국 미사가 봉헌됐다. (사진 제공 = 춘천교구 문화홍보국)<br>
13일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 성당에서 시국 미사가 봉헌됐다. (사진 제공 = 춘천교구 문화홍보국)

김 신부는 내란 상황에서 들었던 부산 고3 학생의 발언에 깊이 부끄러웠다면서, “교우 여러분, 민주 시민 여러분,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 맙시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책임을 지게 만들어 정의가, 평화가 살아 있음을 부정한 자들이 알게 하자”며, “이 혼란이 멈추도록 기도하자. 우리가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 탄핵이 완성되는 날까지 끝까지 함께함으로써 정의가 살아 있음을,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자리에 함께 서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 뒤, 모든 참가자가 국민의힘 강원도당까지 행진하고, 탄핵 가결을 촉구했다.

참례자들은 미사 뒤, 국민의힘 당사까지 행진하고 탄핵을 촉구했다. (사진 제공 = 춘천교구 문화홍보국)<br>
참례자들은 미사 뒤, 국민의힘 당사까지 행진하고 탄핵을 촉구했다. (사진 제공 = 춘천교구 문화홍보국)

한편, 각 교구 시국 미사와 입장 발표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16일 전주와 청주교구, 23일 인천교구, 30일에는 의정부교구가 시국 미사를 봉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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