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50년, 성찰과 전망' 심포지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올해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며, 지나온 길을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18일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이 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50년, 성찰과 전망' 정기 심포지엄에서는 함세웅 신부(서울대교구 은퇴 사제)와 김인국 신부(청주교구)가 지난 50년을 정리, 반성하고, 박상훈 신부(예수회),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이미영 선임연구원(우리신학연구소), 후루야시키 카즈요 수녀(일본천주교정의평화협의회 전문위원)가 방향을 제시했다.
이날 이용훈 주교(주교회의 의장)는 격려사에서 “신앙에 관한 교리와 사회 복음화를 위한 교리는 지상 순례의 여정을 걷는 신앙인들이 알고 따라야 하는 불멸의 두 축으로, 사제단은 이를 토대로 예언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 회복과 민주화를 위한 사제단의 움직임은 거룩함을 나누는 사제의 정체성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성스럽고 고귀한 결정체였다”며,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힘없고 약한 이들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고 투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연대하는 마음으로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픔을 공감하며, 시대 징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제단 50년은 민주주의 회복 위한 여정
내일, "그분께서 시키는 대로 뛰고 부리는 대로 날 수밖에...."
발표에서 함세웅 신부는 1974년부터 2000년까지를 돌아봤다.
1974년 7월 6일, 박정희 정권이 해외에서 귀국하는 지학순 주교를 불법 연행, 구속한 사건은 사제단 창립의 단초였다. 함 신부는 7월 23일 지 주교 구속부터 이듬해 2월 16일 석방까지 벌어진 일련의 교회 내 상황은 교회가 해야 할 시대적 성찰과 예언자적 역할을 되돌아보는 계기인 동시에 독재 정권 앞에서 교회가 침묵하고 있는 것을 드러냈다고 보았다.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 이틀 뒤 열린 명동 성당 기도회 강론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지 주교님 사건은.... 우리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회 감각을 참으로 가졌는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주교들과 성직자, 평신도 모두가 이 기회에 자신의 신앙생활을 깊이 반성해 보도록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친일파들 득세와 이념 갈등을 거친 유신 정권이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지학순 주교 구속은 단지 가톨릭교회와 주교에 대한 탄압이 아닌, 정권 아래 신음하고 고통받는 청년, 학생, 시민, 노동자, 농민들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는 사건이었다.
1974년 8월 인천과 서울, 9월 원주에서 이어진 사제들의 논의와 시국 발표, 기도회는 9월 26일 서울 명동대성당 ‘순교자 찬미 기도회’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사제들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공식 활동과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함 신부는 시작부터 현재까지 가장 중요했던 것은 “민주주의 실현”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지난 50년의 활동에서 부족한 점을 살펴봤다.
먼저 경제사 관점에서 그는 “사제단은 분배 정의를 강조했지만, 민주화의 성과는 사회 경제적 모순을 가져왔다”면서, “현재 한국은 국민을 보호하는 의지나 능력, 복지와 민주주의 척도는 아주 낮은 나라가 됐고, 결국 지난 50년 간 정치, 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성과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인권 보장, 반독재 민주화, 분단 체제 해체 역시 여전히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특히 “한국 사회 모순과 갈등, 대립의 근본 원인인 남북 문제에 더 적극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서로 싸우고 죽인 참혹한 과거를 ‘승전’이라고 기념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 모두 속죄하며 전쟁 불행을 막기 위한 노력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국 신부(창립 50주년 준비위원장)는 1999년 9월 23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단식 기도회부터 2024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2주기 미사까지 25년 여정을 성찰했다.
2002년은 사제단 활동의 새로운 국면이었다. 김 신부는 이때를 “성당을 나와 거리를 지나 광장으로 나선 때”라고 기억한다. 2002 한일 월드컵 물결이 전국을 휩쓴 때, 미군 장갑차에 목숨 잃은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에서부터 한미 불평등 관계를 절감한 시민들과 함께했다. 그는 “명동 언저리를 맴도는 가두시위를 넘어, 거룩한 성곽을 벗어나 세파 중심으로 진입하는 역사가 불쑥 생겨난 것”이라며, 이는 “덜 세속적으로 그러나 더욱 세상 안으로”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 구현이었다고 평가했다.
2003년 새만금 갯벌을 보전하기 위한 삼보 일배, 미군기지 확장으로 쫓겨나는 평택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한 2005-06년, 2007년 삼성그룹 이건희 일가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 고발, 2008년 새만금과 4대강을 지키기 위한 오체투지를 했다.
2009년에는 용산 참사와 평택 쌍용차 노동자들 해고에도 함께하며, 용산 참사에 사제단은 3월부터 2010년 1월까지 남일당에서 284일간 매일 미사를 드렸다. 남일당 본당(성당)이라고 불린 현장에서 봉헌한 매일 미사는 고통받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또 다른 역사를 만들었다.
2000년대가 시작된 뒤 10년간 일어난 여러 사건은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맞물려 이어졌다.
2012년 사제단은 제주 강정, 강원 삼척, 평택 쌍용차 공장, 언론 수호를 위한 여의도,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있던 서울 혜화동 등 전국 순례를 이어 갔다. 7월부터 11월 26일까지는 대한문 앞에서 월요 미사를 매일 봉헌했다.
2014년 세월호 그리고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미사, 2015년 진도 팽목항과 서울 광화문 단식 기도회는 2016년 신유신 타파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월요 시국 미사가 됐고, 2017년까지 이어졌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그리고 2023년 3월부터 1년간 전국 월요 시국 기도회를 두 차례 진행했다.
김인국 신부는 “(25년간) 엿새는 본당 사목, (월요일) 하루는 세상 사목을 한 셈이다. 길에서 길 위에서 그렇게 걷고 뛰었다”면서, “그러나 약자들의 연대는 너무나 허술하고 부실하고 일시적인데, 강자들의 동맹은 너무나 강고하고 조직적이고 일상적이었다. 길에서 들여다본 세상은 야속하고 살벌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 사목을 마치고 본당으로 되돌아올 때마다 한국 교회의 ‘사목’이 사회의 폭력을 치유할 약이 되는지 물었다”면서, “나의 교회는 앉은 자리가 안전해 보였지만 너무 왜소해 보였다. 따뜻하거나 따끔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순간마다 입을 앙다물고 눈을 감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고 돌아봤다.
김 신부는 “그러나 머뭇거리거나 빈둥거릴 틈이 없다. 누군가는 행동해야 한다”면서, “하느님이 목자를 자임하고, 예수님이 그 엄청난 이름을 우리에게 물려주신 것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이리 떼의 탐욕에서 양들을 지켜야 한다. 앞으로를 묻는다면, 그분께서 시키는 대로 뛰고 부리는 대로 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0년의 사제단 활동 성찰에 이은 토론에서는 사제단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채워야 할지 제안했다.
낮춤과 나아감
교우, 시민 사회와 처음처럼 연대하고 배우기 위해
천주교 사회운동 양성과 지원, 연대 요청
한일 과거사 진실 규명 위한 노력에 동참하길
먼저 박상훈 신부(예수회)는 사제단에 낮춤과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교회 안 권위주의와 성직주의가 사제단이 살아가는 길에서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세상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상태가 바로 복음화(케노시스)이며, 하느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는 드러날 수 없어 세상 안에서 매개되고 굴절되어 드러난다”면서, “복음은 세상 안에서 드러나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교회는 세상과 명확하게 구분되거나 독립, 자족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세상 한가운데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학이 세계와의 관계에서 분리되면 교의와 교리라는 부를 축적한 '교의적 자본'은 우상이 되며 신격화 된다면서, 이에 따라 “교회의 경직된 전통은 대안을 용인하지 않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승리 이야기와 같은 모양이 된다”고 말했다.
양운기 수사는 사제단이 분단체제에서 평화를 세워 나가고, 시민과 교우들에게 배우고 연대해 온 소수 사제들이라고 평가하면서도, “50년 전 교우들과 시민들에게 배웠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평신도라는 용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제단이 ‘평’ 자를 그대로 두고 배우고 신자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특권 의식이 담고 있는 시선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이며 구체적 실재”라고 제언했다.
그는 “교회 내 위계”와 성직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때에 성직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밝히는 것도 매우 시급한 일이며, 그 부작용의 정체를 모두가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소수가 활동하는 사제단은 더욱 소수로 있을 가능성이 높고, 연대할수록 미래의 사제단은 소수로 있는 위협을 감수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사제단이 소멸되더라도 소수의 정신으로 ‘현실주의 노선’을 거부하며 고통의 현장을 지킬 수 있다면, 누군가는 사제단의 이름으로 고개를 내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영 선임연구원은 사제단에 평신도 사회운동 지원과 양성, 부당한 교회 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와 교회 쇄신을 위한 노력, 사제단과 정치 권력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 것을 요청했다.
또 그는 “함께 걷는 교회의 길”에서 사제단의 역할에 대해, “보수적인 신자들이 시노드 정신을 주장하며 사제단의 활동을 더 강하게 저지할 우려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교회의 시선과 방향이 세상을 향해야 한다면, 그런 신자들을 변화시키고 움직여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초대하는 것이 직무요 역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영 연구원은 그런 함께걷기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공동 연구와 실천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사제단을 비롯해 천주교 사회운동이 신앙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설득할 신학, 성속 이원론을 극복하고 참여로 이끄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청년과 사회사목, 사회운동 안에서 활동할 이들을 양성,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 체계와 실행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면서, “사제 구성원들의 소속 교구, 본당, 수도회, 사목 현장에서 이를 지원하고 실험할 토대와 기반을 마련하고, 평신도 양성을 고민해 온 이들의 경험과 역량을 나누면서 젊은 일꾼들 양성과 연대가 이뤄질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후루야시키 카즈요 수녀는 사제단과 일본 정평협 모두를 경험하고 살핀 내용을 통해, 특별히 일제강점기 역사 청산을 위해 사제단이 함께 나설 것을 요청했다.
후루야시키 수녀는 한일 양국 교회는 주교단을 중심으로 교류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도, “일본 정평협이 사제단에게서 일제 강점기에 대한 자기 반성 요청을 받아 진지하게 대응했지만, 이후 교류가 끊어진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교단의 교류 내용에서 역사적 사안에 선을 긋고 사목적 나눔을 진행하는 것과 다르게 사제단과 정평협은 “교회로서 침략에 대해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작업이 남아 있고, 그것은 진실 규명을 위한 것”이라며, “두 주체가 함께 일제강점기 당시 가톨릭교회의 태도를 묻고, 식민 정책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한반도로 돌아간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으로 가톨릭교회로서 책임을 인식하고 용서를 청하며, 기억을 계승함으로써 위로받아야 할 이들의 몫을 찾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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