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프란치스코 교종, 캐나다 '참회 순례' 시작
프란치스코 교종이 37차 해외 사도순방을 위해 7월24일 오전 9시16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캐나다로 출발했다. 교종이 탑승한 ITA Airways는 10시간 비행 끝에 같은 날 오전 11시9분(로마 시간 오후 7시9분) 캐나다 서부 도시 에드먼턴 국제공항에 착륙해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살마 락하니 앨버타주 지사를 비롯한 시민대표들과 사제 등 종교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교종은 곧바로 에드먼턴 성 요셉신학교에서 장시간에 걸친 비행의 피로를 극복하고 25일부터 정해진 일정에 따라 공개행사를 시작하게 된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종은 캐나다로 출발하기에 앞서 언제나 해외 순방을 앞두고 기도한 것처럼 7월22일 새벽 로마 시내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찾아 전설적인 마리아 성화 ‘로마 백성의 구원’ 앞에서 기도하면서 캐나다 사도 여정을 성모님 손에 의탁했다. 이번 캐나다 순방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재임 후 37번째 해외 순방으로 교종은 이번 캐나다 여정을 ‘참회하는 순례’로 묘사했다. 이는 이번 순방이 캐나다 원주민과의 치유와 화해의 과정에 기여하기를 희망하는 교종의 뜻이다. 교종은 7월24-30일 방문 기간 동안 에드먼턴을 비롯해 퀘백과 북극 지방 등지의 원주민 공동체를 방문해 과거 가톨릭교회가 정부의 원주민 동화정책에 편승해 원주민 어린이들의 기숙학교에서 일어난 학대에 대해 참회하고 사과하는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조부모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우리들의 뿌리입니다”
교종, 캐나다로 향하는 기내에서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기념
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24일 캐나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이날 교회가 기념하는 제2회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에 대해 설명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기념했다. 만일 교종이 이날 캐나다 순방길에 오르지 않았다면 바티칸광장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강조했을 내용이다. 말씀 내용.
오늘은 교회가 기념하는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입니다. 즉, 우리들에게 역사와 전통, 습관과 기타 많은 가치를 물려주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날입니다. 조부모님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고 그분들의 지혜와 경험을 이어나가야 할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지만 그분들은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이자 삶의 경험과 신앙을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부모님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조부모님과 접촉해야 하고, 우리의 뿌리로 돌아가야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뿌리에서 힘을 얻어 꽃 속에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조부모님들은 미래세대를 꽃피우고 성숙하게 하는 의무와 존중받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수도자로서, 노인 수도자, 봉헌생활의 '조부모'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들을 감추지 마십시오. 그들은 수도자 가족의 지혜이며 새로운 남녀 수도자, 초심자들에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모든 삶의 경험을 물려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조부모가 있으며 일부는 돌아가시고 일부는 살아 계시겠지만 오늘 특별한 방법으로 그분들을 기억합시다. 그들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역사의 교훈입니다.
이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종은 기내에서 캐나다로 향하는 경로에 있는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아이슬란드, 덴마크 국가 원수들과 국민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관례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캐나다 원주민들께 깊이 사과하고 용서를 청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캐나다 도착 이튿날 첫 공개행사로 에드먼턴 인근 마스와시스(Maskwacis, 원주민어로 ‘곰 언덕’) 공원에서 퍼스트 네이션, 메티스, 이누이트족들의 족장, 지도자, 원로, 지식인들과 원주민 공동체 청년 등 2000여 명에게 연설하면서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과거 캐나다 정부의 원주민에 대한 서구문화 동화정책으로 운영한 기숙학교 시스템에서 원주민들과 자녀들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 다시금 사과하면서 용서를 간청했다. 연설 내용.
저는 제 자신의 슬픔과 하느님의 용서와 치유 그리고 화해를 간구하기 위해, 캐나다 원주민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여러분의 고국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저는 지난 3월29일부터 4월1일까지 바티칸을 방문한 원주민 대표단과의 만남에서 과거 역사에서 가해진 고통, 특히 기숙학교 시스템에서 자행된 강제 동화과정의 폭력과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죄송한 마음과 수치심, 고통을 느끼면서 과거의 잘못에 분개하고 이에 동참한 교회의 잘못에 엄청난 ‘고통과 반성’을 느꼈습니다. 그날 저는 원주민 대표단으로부터 그곳 어린이들이 겪었던 고통의 징표로 모카신 두 켤레를 받았으며, 캐나다에 오면 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가 받은 모카신은 저에게 ‘함께’ 따라야 할 ‘치유와 화해’의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걷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의 고통이 정의와 치유, 화해의 미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조상의 문화가 파괴된 어두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망각은 무관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기숙학교에서 일어난 ‘참혹한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든 그것이 오늘까지 원주민 공동체에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동화정책이 어떻게 원주민을 체계적으로 소외시켰는지, 기숙학교 시스템을 통해 여러분의 언어와 문화가 폄하되고 억압되었는지, 또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 영적 고통을 겪었는지 생각합니다. 그들이 어린 나이에 어떻게 집에서 쫓겨났는지, 그러한 학대가 부모와 자녀, 조부모와 손자녀 사이 관계에 어떻게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쓰라린 기억을 저에게 공유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원주민을 억압하는 세력의 식민적 사고방식을 지지한 것에 깊은 유감과 슬픔을 느낍니다. 저는 ‘부끄럽고 분명하게’ 교회와 종교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이 원주민의 전통문화 파괴와 강제동화 프로젝트에 협력한 것에 거듭 용서를 간청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자선이 결핍된 것도 아니었고 아이들에 대한 헌신과 보살핌이 두드러진 사례도 많았지만 기숙학교와 관련된 정책의 전체적 효과는 파국적이었습니다. 문화동화정책 자체가 ‘비참한 오류’였습니다. 이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양립될 수 없습니다. 이에 용서를 구하는 것은 첫 번째 단계일 뿐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용서는 치유를 위한 첫걸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 과정의 중요한 부분은 과거에 발생한 사실을 더욱 진지하게 조사하고 기숙학교 생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또한 캐나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시민 사회가 원주민의 정체성과 경험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능력에서 성장하기를 희망하면서 이에 대한 교회의 약속을 재확인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관통하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온 저의 존재와 캐나다 주교들의 헌신은 이 길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에 대한 간증입니다. 비록 제가 캐나다의 다른 지역을 방문하라는 많은 초청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이번 참회 여행을 통해 한 저의 말은 ‘모든 원주민 공동체와 개인을 위한 것’입니다. ‘치유와 화해’를 위한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기에는 부족하고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고통을 내면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침묵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여정입니다.
한편 교종의 연설 시작 전 원주민 크리족 추장 윌튼 리틀차일드는 원주민, 메티스, 이누이트족을 대표해 원주민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교종의 인간적 노력에 깊은 감사를 표하면서 교종을 환영했다. 원주민 공동체에서 ‘황금독수리’로 알려진 그는 이 지역 기숙학교의 전 학생으로 2015년 역사보고서를 발표한 진실과 화해위원회 위원이었다. 그는 연설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이 캐나다 원주민들의 치유와 화해의 여정에 합류한 것을 열렬히 환영하며 로마에서 원주민 대표단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한 말씀들은 큰 격려와 깊은 위안과 화해의 원천이었다고 강조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화해시키십니다”
교종, 에드먼턴 원주민 성당에서 화해는 그리스도의 선물임을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25일 저녁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원주민 본당으로 지정된 에드먼턴 제1민족성심 교회 신자들을 만나 기숙학교 제도에서 교회의 역할로 인한 고통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화해는 그리스도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원주민들이 그들의 전통악기와 춤과 노래로 교종을 환영하는 가운데 열린 이날 만남에서 교종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우리를 위해 배반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힌 사랑을 하는 것이며. 기숙학교의 많은 제자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강조했다. 말씀 내용.
저는 여러분의 땅에 친구이자 순례자로서 오게 된 것에 기쁨과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이번 캐나다 사도적 여행은 치유 과정을 지원하려는 열망의 구체적 표시를 의미합니다. 제1민족 성심 교회는 퍼스트 네이션, 메티스, 이누이트 공동체 사람들과 다른 나라 모든 이민자들을 환영합니다. 이토록 본당은 교회가 ‘모든 사람을 위한 집’ 과거 경험과 개인적 삶의 이야기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환영받아야 하는 집이 되어야 하는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참회하는 순례’를 하게 된 이유는 가톨릭교회가 열등감을 심어 주고, 공동체와 개인의 문화적, 영적 정체성을 강탈하고, 뿌리를 끊고, 편견과 차별적 태도를 조장하는 동화와 박탈정책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교로 추정되는 교육시스템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기도 합니다. 교육은 존중에 기초해야 하며 사전에 포장된 형식으로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생명의 신비를 함께 발견’하기 위한 여정으로 착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겉모습을 넘어선 화해의 형태를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대 그리스도교인들이 사랑했던 '생명나무'라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화해시키셨습니다. 생명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모든 창조물,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제1성심 교회는 그 상징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강력한 우주적 중요성’을 기본 포인트로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의 네 가지 상처(역자 주 : 손과 발 옆구리 등)의 극심한 고통을 통해 네 가지 핵심을 포용하셨고 가장 먼 민족들을 하나로 모으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에 치유와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캐나다 기숙학교로 인해 많은 원주민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인식하면서 그토록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화해에 대해 생각하기까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상상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떤 무엇도 존엄의 침해, 악의 경험, 신뢰의 배신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자로서 우리 자신의 수치를 없애고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말과 좋은 뜻이 아니라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 손발에는 못이 박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우는 참혹한 고통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화해의 선물인 ‘예수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평화, 구해야 할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자신과 과거와 화해하고, 상처받은 잘못과 기억, 인간의 위로로는 치유할 수 없는 외상적 경험과 화해하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단에서 평화를 얻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화해시킨 한 몸이기 때문에 ‘화해의 살아 있는 몸’입니다. 교회는 결코 개종을 통해 그리스도를 강요함으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유와 사랑으로 전파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상처받은 기억의 치유를 촉진하는 성령을 환영하는 장소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역 차원에서 기도하고 서로 삶을 나누는 차원에서 이를 수행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곳 제1민족 성심교회의 제단과 성막 위에 있는 전형적 토착 장막을 나타내는 네 개 기둥이 있음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를 여행할 때 하느님이 거하신 장막을 연상했습니다. 장막은 하느님께서 우리 여정에 함께 하시며 그분의 사랑을 일깨워줍니다. 하느님은 친밀한 하느님이시며, 예수님 안에서 연민과 부드러운 사랑의 언어를 가르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고 역사의 사막을 헤쳐 나가시고 화해의 길로 우리의 발걸음을 계속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교종의 사과는 화해로 가는 중요한 첫걸음”
교종의 캐나다 ‘참회 순례’를 보는 원주민들의 시각
캐나다 순례 이튿날인 7월25일 프란치스코 교종은 당시 캐나다 정부가 조장한 원주민에 대한 문화파괴와 강제동화 제도인 ‘기숙학교’에 교회가 가담한 것에 원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청했다. 한 세기가 넘는 기간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 아이들의 가족 방문을 억제하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나 주간학교에 다니도록 강요받았다. 기숙학교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를 말하거나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표현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종종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 성적 학대를 받았다. 생존자들은 ‘문화적 대량학살’에 대한 정부의 조직적 노력에 대해 증언한다. 2021년 구 기숙학교 부지 발굴조사에서 집단 묘지가 발견되어 세계적인 분노의 물결이 일고 캐나다 원주민의 고통에 커다란 관심이 촉발되었다. 조사의 궁극적 결과가 어떻든 기숙학교가 원주민과 지역 사회에 끼친 트라우마는 계속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참회 순례’ 동안 기숙학교의 많은 생존자는 자신과 가족들 이야기를 증언했다. 정신적 상처와 트라우마는 계속해서 원주민들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 시스템에 교회기관 협력은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정부와 교회는 과거 원주민에 대한 대우에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했지만, 많은 원주민은 전체 교회 이름으로 교종의 사과를 요구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전에도 캐나다와 다른 지역에서 토착민을 탄압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슬픔과 수치심을 표명했지만 교종이 직접, 원주민들 영토에서 명확한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됐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 바티칸에서 만난 퍼스트 네이션, 메티스, 이누이트 대표단에게 사과하면서 캐나다를 직접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7월25일 에드먼턴 마스와시스 공원에는 2000명 이상의 기숙학교 생존자와 가족이 참석했다. 원주민들은 춤과 북, 음악과 함께 고유의 언어로 다채로운 원주민 복장을 입고 언어, 문화, 영적 유산을 과시하면서 교종을 환영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기숙학교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하자, 자신의 땅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온 군중들은 환호성을 터트렸고 많은 사람은 약속을 지킨 교종의 용기와 겸손, 신실함에 감사를 표했다. 동시에 원주민 원로, 추장과 대변인은 기숙학교 제도와 식민주의 유산에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이 교종의 사과에 각자의 방식으로 깊은 감사로 응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는 분노와 상처를 다시 가졌거나 무관심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처리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종 사과의 역사적 의미를 인식하고 그것이 중요하지만 화해와 치유 과정의 첫 단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교종의 말에 구체적 행동이 뒤따를 것을 촉구했다. “원주민들이 더 잘 알려지고 존경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모든 사람이 함께 걷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는 마음을 관통해야 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가톨릭 신자들의 노력을 계속 격려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치유와 화해의 과정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여러분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역사를 보존하십시오”
교종, 7월26일 에드먼턴 스타디움 미사에서 조부모의 역할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캐나다 순방 3일째인 7월26일 성 요아킴과 성 안나 축일을 맞아 에드먼턴 커먼웰스 스타디움에서 거행된 군중미사 강론에서 우리가 신앙을 계승하는 데 있어 조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보다 앞선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론 내용.
오늘은 교회가 성 요아킴과 성 안나의 축일을 기념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조부모에 대해 생각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과 분리되어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모두는 고립된 개인이 아닌 보존되어야 하는 역사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란 뿌리와 가족은 우리를 앞서고 우리에게 생명을 준 독특한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 역사를 택한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역사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들 후손이며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충성을 중심으로 한 그분들의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부모님 덕분에 여기 있지만, 세상에서 우리가 환영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조부모님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앞선 역사로부터 보살핌을 받았으며, 그들로부터 선함, 부드러운 사랑과 지혜가 인류의 견고한 뿌리임을 배웠습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이 조부모님들의 ‘복음의 향기’를 들이마시며 애정과 격려, 보살핌과 친밀함을 통해 ‘익숙한 신앙’을 발견한 곳이 바로 그분들 집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부모님께 더욱 감사드려야 합니다.
오늘 축일을 기념하는 성 요아킴과 성 안나도 마리아를 사랑했으며 마리아도 그분들 모범을 본받아 ‘질식시키거나 억제하지 않는’ 사랑으로 예수님을 양육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무시하지 않고, 우리보다 앞서거나 우리가 돌보도록 위임받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저는 이 점에 관해 모든 사람에게 기억을 보존할 가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들을 기억할 것을 권고합니다. 선조들을 위해 그리고 조상과 함께 기도하고 기억하는 시간을 바치는 뿌리를 키워야 합니다. 그분들의 소중한 유산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기억과 우리 자신의 삶을 낳은 역사를 잊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우리는 손으로 우리를 어루만지고 팔로 우리를 안아준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의 역사에서 우리는 낙심의 순간에 위안을 찾을 수 있고, 우리를 인도하는 빛과 삶의 도전에 맞서는 용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문해 봅시다. 우리는 물려받은 이 보물을 지킬 수 있는 자녀와 손자입니까? 우리는 그분들에게 받은 좋은 가르침을 기억합니까? 우리는 시간을 내어 조부모와 원로들과 대화하며 그분들 말을 경청합니까? 그분들은 아직 쓰이지 않은 역사의 작가들입니다. 우리는 보존해야 할 역사의 자녀일 뿐만 아니라 아직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저자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빛과 그림자’, 즉 우리가 받았거나 받지 못한 사랑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생명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지만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 어머니, 조부모로서 생명을 주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보다 앞선 사람들에게서 받은 많은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어떤 사회를 건설해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지 자문해야 합니다. 뿌리에서 가지, 잎사귀, 꽃, 열매로 이어지는 생명을 주는 수액처럼 진정한 전통은 아래에서 위로 수직적 차원에서 표현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뿌리에서 열매까지가 아닌 "우리는 스스로 항상 이렇게 해왔어"라는 수평적이나 전후방 ‘전통의 희화’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마태 13,16-17)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며, 그들이 축복받은 이유는 선지자와 의인들이 갈망할 수 있었던 것, 즉 그들은 환영하고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은 메시아를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이전 사람들은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우리에게 달려 있는 열정, 힘 및 불꽃을 전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조부모님과 원로들은 ‘더 정의롭고 형제적이며 연대적인 세상을 보고 싶었고 우리에게 미래를 주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씨앗을 꽃피우고 퍼뜨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역사에서 '고유하고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우리를 뒤따르는 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폐쇄적이고 후진적 시스템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 장인, 희망의 직공, 미래의 건설자,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진짜 질문은 '내가 생명을 주고 있는가?', '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랑을 역사 속으로 인도하고 있는가?, '나는 이웃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나보다 앞선 사람들이 나에게 했듯이 나는 남을 아낌없이 섬기고 있는가?', '나는 우리 교회, 우리 도시,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에게 생명을 준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조부모와 원로들을 공경하고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우리 가운데 그분들 존재를 소중히 여겨야 할 영적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인들이 더 이상 쓸모없고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버려지지 않는 미래, 노인들이 돌보고 경청해야 할 필요에 무관심한 미래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들과 우리를 연결하는 유대를 끊지 않고 우리 뒤에 올 사람들과 대화를 촉진한다면 그 미래는 가능합니다. 청소년, 조부모와 손자, 모두 함께, 그리고 함께 꿈을 꾸며 전진합시다. 토착민 형제자매들이 겪은 폭력과 소외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미래를 위해 기도하면서 성 요아킴과 안나의 전구를 간구합니다.
“원주민들과 할머니는 교회의 소중한 보물입니다”
교종, 에드먼턴 인근 성 안나 호수 성지에서 말씀의 전례
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26일 에드먼턴 커먼웰스 스타디움 미사 후 오랫동안 치유의 장소로 알려져 원주민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에드먼턴 교외 성 안나 호수에서 말씀의 전례를 이끌면서 원주민과 조부모들은 교회의 보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수천 명 순례자가 매년 성 안나 축일에 열리는 순례 대열에 합류했다. 이 호수는 캐나다 원주민 퍼스트 네이션 가운데 하나인 수(Sioux)족의 갈래인 라코타(Nakota)족에 의해 신의 호수(Wakamne)로 불리우며 치유의 물로 유명하다. 캐나다와 미 북서부 가톨릭 신자들과 원주민 모두에게 영적인 중요성이 있는 장소로 19세기 후반 7월26일 성 안나 축일을 기념하여 순례를 시작한 퀘벡 가톨릭 선교사가 마리아의 어머니이자 예수의 할머니인 성 안나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곳이다. 교종은 호수의 물과 참석한 신자들을 축복한 후 말씀의 전례 강론을 시작하면서, 전례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수 세대에 걸쳐 함께 걸으며 이 ‘하느님의 호수’에 이르러 그 물에서 치유를 위해 찾아온 많은 순례자의 심장의 고동을 메아리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론 내용.
저는 오늘 ‘땅의 어머니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는 이 물을 조용히 묵상하면서 생명의 근원과 신앙의 근원으로 돌아가도록 영감을 받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거룩한 곳을 방문하고, 갈릴리 호숫가에서 많은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형제애에 대한 당신의 ‘혁명적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다양한 민족이 모이는 이 지역의 풍부하고 다양한 상황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메시지가 오늘날 여러 세기에 걸쳐 서로 다른 민족을 하나로 묶는 북소리로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이는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형제애가 진정한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하늘이 이 땅에 보내는 일치의 메시지는 여행을 떠나는 순례자로서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친교로 초대합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 낭독된 구약 에제키엘서(47.1-2,8-9,12)를 보면 토착 공동체에서 ‘신앙의 생수’을 전달하는 데 할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은 구석에서 혼자 책을 읽는 데서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대신 가족 내에서 어머니의 언어로, 할머니의 감미로운 서정적 억양으로 전승됩니다. 저는 이 같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소중한 역할에 감사드립니다. 가족들은 이러한 조부모를 소중히 여기고 돌보아야 합니다. 저는 집에 노인이 있는 모든 가족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는 보물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이 생명의 근원을 지키십시오.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소중한 유산으로 소중히 여기십시오. 저는 캐나다 원주민 여러분이 유럽의 식민통치에서 입은 깊은 상처를 갈릴리 호숫가에서 하신 예수님의 거룩한 기적을 기억하면서 성모 마리아와 성 안나의 전구를 통해 이 축복된 장소에서 물의 치유력으로 주님께 깊은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저는 화합과 평화가 지배하는 이 축복된 장소에서 경험의 부조화, 식민지화의 끔찍한 결과인 수많은 가족, 조부모 및 어린이의 지울 수 없는 여러분들의 고통을 기억합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캐나다 원주민에게 효과적으로 소개된 예수님의 할머니 성 안나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원주민 공동체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과거의 끔찍한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기대합니다. 유럽 식민화의 ‘고통스러운 유산’의 일부는 토착 원주민 할머니들이 자신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믿음을 전수하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상실은 분명히 비극적이었지만 여기에 여러분의 존재는 회복력과 새로운 시작, 치유를 향한 순례, 공동체의 삶을 치유하시는 하느님께 열린 마음의 간증입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순례자 여러분들도 모든 자녀를 포용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어머니 교회' 건설에 기여하도록 초대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지역 사회의 삶을 돌보고 치유하려면 혼자 죽을 위험이 있는 노인뿐만 아니라 만인을 만나고 만민에게 말해야 합니다. 젊은이를 포함해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사람들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밖으로 나가서 주고, 사랑하라”고 부르셨습니다. 모든 신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특히 많은 고통을 견뎌온 원주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좋은 방법은 그들이 청하는 것을 즉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동행하여 사랑하고 자신을 내어 주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행을 통해 자신의 생수의 흐름과 자신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독특하고 소중한 보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캐나다 원주민들은 저와 교회에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교회는 캐나다 원주민의 치유 과정을 돕기를 희망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치유과정에서 더욱 건강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이것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원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조부모님인 성 요아킴과 성 안나가 우리의 여정을 축복하기를 빕니다.
교종, 캐나다 퀘벡 도착 후 총독과 총리 면담
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27일 에드먼턴에서 퀘벡에 도착한 후 시내 올드퀘벡 시타델(성)에서 거행된 환영식이 끝난 후 캐나다 총독 메리 시몬을 방문해 비공개로 면담하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잠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트뤼도 총리는 교종과 동행한 바티칸 국무장관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실무적으로 회담했다. 메리 시몬 총독은 지난해 7월6일 원주민으로는 최초로 캐나다 30대 총독으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 의해 임명된 인물로 세 자녀를 둔 75살 어머니로 영국인 모피상 부친과 현지 이누크족 여성 사이에 태어나 영어와 이누크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그녀는 원주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제임스베이와 북부 퀘벡 협정을 주도했다. 1975년 체결된 이 협정은 제임스베이 지역에 사는 크리족과 이누이트족의 권리를 인정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2002년 존 크리티앙 총리에 의해 캐나다 최초의 ‘북극 대사‘로 임명되어 북극 지역의 협력을 강화했으며 덴마크 주재 캐나다 대사를 역임했다. 특히 그녀는 2008년 스티브 하퍼 전 총리로부터 기숙학교 생존자와 캐나다의 모든 원주민에 대한 공개사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기숙학교의 개탄스러운 시스템은 문화말살 사례”
교종, 퀘벡 당국, 외교사절, 원주민과 시민단체에 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27일 퀘벡 정부 당국, 외교관 및 원주민과 시민단체 대표들에게 연설하면서 캐나다의 역사적인 기숙학교의 ‘개탄스러운 시스템’은 '문화말살'의 비극적인 사례라고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원주민의 합법적인 권리를 증진하고 그들과 그 나라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증진해 나가라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먼저 메리 시몬 총독과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친절한 환영에 감사를 드리며 캐나다의 특별한 자연유산과 광대한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캐나다 국가의 상징인 ‘오염된 공기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거대한 크기의 단풍잎은 우리로 하여금 창조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감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 에드먼턴의 원주민들과 강력한 순간을 함께 나누면서 그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티칸 성좌와 지역 가톨릭 공동체는 유엔 선언의 정신에 따라 문화적 전통, 관습, 언어 및 교육 과정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는 구체적이고 적절한 형태의 영적 동반을 통해 원주민의 권리와 토착문화에 존재하는 건전한 가치를 증진하는 데 구체적으로 전념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언어, 문화 및 세계관을 훼손함으로써 많은 원주민 가정에 해를 끼친 기숙학교 제도를 포함하는 동화 및 정착정책을 슬프게 생각합니다. 원주민 가족의 많은 아이들과 지역의 가톨릭기관이 이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깊은 수치심과 슬픔을 느끼면서 이 나라 주교들과 함께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토착민들에게 저지른 잘못에 용서를 다시 간청합니다.
일부 신자들이 그 시대에 일어났던 복음보다 세상의 관습을 따른 것처럼 비극적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모든 국민을 위한 더 나은 나라를 건설하려는 열망으로 특징지어지는 캐나다의 가장 높은 이상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여러분 모두가 공유하는 목표, 즉 원주민의 정당한 권리를 증진하고 치유 과정을 선호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원주민들과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화해를 위한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호소에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약속은 원주민의 권리를 절대적으로 인정하려는 관심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토착민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바티칸 성좌와 지역 가톨릭 공동체가 함께하기를 희망합니다.
가톨릭교회와 캐나다 토착민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는 상호이해와 치유를 위해 헌신하면서 비극적인 깊은 상처에서 뛰어난 결실을 맺은 사랑으로 특징지어지는 관계입니다. 저는 바티칸에서 원주민 대표들의 말을 듣기 위해 다섯 차례 만난 것에 감사드리며 이제 캐나다에서 좋은 관계를 새롭게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원주민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분개와 수치심에 응답하고 진실에 따라 모든 캐나다인과 형제적이고 인내하는 여정을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확고한 열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정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일하고, 끊임없는 희망에 영감을 받습니다.
치유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식민 정신의 열매인 ‘고통과 경멸의 역사’는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다문화주의는 단풍나무 잎사귀의 얼룩덜룩한 색처럼 다양한 사회의 결속력을 위한 기본입니다. 새로운 도착자를 포함시키는 것은 도전이 될 수 있고 차이점을 수용하고 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우크라이나와 아프가니스탄 이민자를 수용하는 데 보여 준 캐나다의 관대함에 대해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모든 나라가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의 수사학’을 넘어 국가의 가능성에 따라 그들이 사회에 책임감 있게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 기회를 제공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권리와 민주주의는 필수적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보편적 차원,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수태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모든 순간에 인간생명에 대한 정당한 봉사를 통해 그 구체적인 기여를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전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종종 잊혀지는 여러 전쟁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친구와 적으로 나누어 전쟁거리를 만들고 다시 한번 무장할 필요가 있다며 군비경쟁과 억제전략은 세상에 평화와 안보를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전쟁을 어떻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전쟁을 막을 방법을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전쟁 반대라는 범주를 넘어 전 지구적 도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정책이 시급합니다. 우리 시대의 ‘평화, 기후변화, 팬데믹, 국제 이주운동과 같은 큰 도전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정치는 당파적 이해관계에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모든 나라가 오늘날 긴급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공동의 일치'로 손을 잡고 일할 것을 촉구합니다. 캐나다 정부의 환대와 관심, 존경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큰 애정을 가지고 캐나다와 그 국민이 제 마음에 진정으로 가깝다고 확신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