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무진장 많다는 게 이렇게 큰 문제가 될 줄이야.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 할지 몰라서 글이 나아가지를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이면 거뜬하지‘ 하고 문을 열었는데 결국 한 달을 넘겨서까지 끙끙대며 이 글을 쓰고 있다니! 그러는 사이에 또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 그걸 들여다보고 있으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내 등을 두드렸다. 똑똑!! 뭐하고 계시나요? 어서 사건을 수습하셔야지요?

아, 날이면 날마다 맞닥뜨리는 트러블들.... 그 가운데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문제부터 말하는 게 낫겠구나. 무엇이 문제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와중에 어떻게든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일부터 언급을 해 보련다. 그러니까 3주쯤 전이었나? 개밥을 주고 난 뒤 벌통 앞에 순찰을 나갔을 때였다. (꿀벌 납치범 말벌을 잡기 위해서. 하루에 많으면 50여 마리, 적어도 10여 마리는 거뜬히 잡는다.) 벌 날아다니는 소리가 요란해서 보니 벌통 둘레는 물론 벌통 뒤 비닐하우스 안, 벌통 앞 반경 3미터 정도까지 벌 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벌통 안에 있는 벌들이 죄다 나와 전쟁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 같은 사나운 광경!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혹시 때에 맞지 않는 분봉인지도 모르겠다 싶어 벌 떼가 한데 매달려 있는 분봉 난 자리를 찾아본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분봉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뭐지? 함께 갔던 다울이가 말했다.

“엄마, 일단 피하자. 이러다가 벌한테 된통 쏘이겠어.”

다울이 말을 듣고 일단 후퇴하기로 하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나 혼자 다시 벌통 있는 밭으로 갔다. 예상대로 밤이 되니 한낮의 소동은 잠잠해져 있었다. 잠잠하니까 조금 안심이 되어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훈연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연기를 피어 올리며 벌통 속 살피기에 들어갔는데.... 엥? 이게 뭔 일이지? 두 통 중 한 통의 벌 수가 확 줄어 있지 뭔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세력이 불어나고 있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로 상태가 좋던 벌통인데! (오히려 산란도 거의 없고 먹이만 축내던 벌통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하나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일단 상황 파악을 한 것으로 위안을 삼고 집으로 돌아갔다. 잔뜩 엉킨 실타래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느낌 속에 말이다.

그때부터는 다급하게 인터넷 검색을 하고 집에 있는 양봉 관련 책들을 뒤적이며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궁리했다. 나보다는 조금 더 경력이 있는 지인에게 전화 상담도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문득 ‘도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봉이라는 게 멀리 떨어져 사는 나쁜 벌들이 우리 집 벌통을 습격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지도 몰랐다. 우리 집 벌 두 통 사이에서도 도봉이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이웃집을 약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충격!) 이것 말고는 다른 원인을 떠올릴 수가 없어서 일단 그렇게 이해하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꿀벌이 있어서 좋아요. ⓒ박다나<br>
꿀벌이 있어서 좋아요. ⓒ박다나

고민 속에 다음 날 낮에 벌통 앞에 가 봤더니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난리통이었다. 어서 결단을 내려야지 가만히 있다간 수없이 많은 벌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 과감하게 합봉을 시도했다. 벌 수가 크게 줄어든 벌통의 벌들을 다른 벌통에 이사시킨 것이다. (합봉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상황이 워낙 다급해서 막무가내로 합쳤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페로몬 교란용으로 식초를 준비했는데 두 세력 간에 충돌이 일어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마저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해놓고 나니 당장 눈앞에 있는 불은 끈 것 같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일종의 도박을 건 느낌이랄까? 혹시라도 두 세력 다 여왕벌이 남아 있어 서로 화합하지 않고 싸운다면 한 통도 못 건지고 두 통을 한꺼번에 잃게 될지도 모른다.(또한 여왕벌이 한 마리도 없다면 그것도 문제다. 그럴 땐 어떡하지?)

내 딴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한치 앞의 상황도 보이지 않고 물음표 속에 휩싸여 있으니 마음이 참 심란했다. 그때 별안간 ‘벌들의 생명력이 인간의 처치에 모든 것을 의존할 만큼 연약할까? 인간이 어떻게 해주지 않은 세월 동안에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내며 그들은 살아왔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일단은 그들의 살고자 하는 힘을 믿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믿자, 그들의 선택을!

그렇게 내가 ‘살리고 죽이고‘의 차원을 떠나 그들이 ‘살고 죽고’를 결정하는 차원으로 바라보니 놀랍게도 생각이나 감정이 담담해졌다. (어쩌면 기후위기라고 하는 문제 상황도 같은 맥락일런지 모른다. 인간이 다른 모든 생명체들을 살리고 죽이고 구하고 내치고가 가능한가?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만을 주체로 문제해결자로 보는 시각은 인간예외주의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도나 해러웨이의 생각에 동의한다.) 어떤 결과를 마주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을 준비가 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만난 벌통은???

다행히 벌들이 잘 지내고 있었다. 꽃가루를 다리에 매달고 바쁘게 집으로 돌아가는 벌, 벌집 속에 몸을 반쯤 집어 넣고 꿀을 채워 넣는 벌, 나의 움직임을 감시하며 경계하는 벌.... 여왕벌도 두 마리가 아니고 한 마리인 게 확인되어 벌통 상황이 안정화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듯, 비로소 나오는 안도의 한숨!

벌들은 나와 함께 하는 실뜨기 놀이를 중단하지 않았고 그럼으로 나도 벌들과 함께 되기를 지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 언제 또 우리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할지 모른다. 나는 여전히 무지하고, 무지해서 무자비할 때가 많으며, 둔감하기까지 하고, 행동이 느리다. 문제 발생 소지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안 일어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거다. 그럼에도 문제가 발생하면 나는 뭐라도 할 것이고, 거기서 조금은 배우는 게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배움으로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반려종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닥치고 훈련해‘라고 (외치지는 못하고) 속삭여 본다.

트러블 속에서 훈련하기. ⓒ박다나

 

  • 쏠루세는 적어도 하나의 슬로건(물론, 하나 이상)이 필요하다. 나는 현실적인 생존을 위해 사이보그를”, “빨리 달려, 꽉 물어”, “닥치고 훈련해라고 외치면서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고 제안하겠다. 친척 만들기-그리고 인정하기-는 어쩌면 가장 어렵고 가장 시급한 일인지 모른다. -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176쪽에서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키워드

#정청라 #양봉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