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부터 새 학기를 시작하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삼월이 되면 봄 방학이 온다. 한 주간 주어진 이 쉼의 시간이 되면, 학생들도, 교수들도 잠깐 한숨을 돌린다. 학생들은 밀렸던 숙제를 하기도 하고, 그냥 무작정 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교수들도 나머지 학기 수업 자료들을 점검하면서 나머지 학기를 보낼 체력을 보강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비우고 쉬는 봄 방학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미팅들이 계속 생기고, 코로나로 인한 비상 사태가 조금 느슨해지면서, 일 년 동안 보지 못했던 학생들이 마스크를 쓴 채 내 집 문을 두드렸다.

학비를 벌고 또 가족의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가정 용품을 파는 대형 마트에서 일했다는 한 학생은 아주 예쁜 꽃을 가져다 주었는데, 새로움을 향해 눈을 크게 떠 보는 그의 젊음 같아 싱그러웠다. 그리고 그는 아주 수줍어 하면서, 집에서 기르는 닭이 낳은 거라며 계란 다섯 개를 내미는데, 그의 다정한 마음이 깊이 느껴졌다. 그의 고민은 자기가 일하는 그곳에서 성실하고 일 잘하는 그녀를 보고, 승진 시켜 줄 테니, 학교로 돌아가지 말고, 그냥 남으라는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였다. 멕시코 출신의 농사를 짓는 그의 가족도, 주변의 친구들도 굳이 계속 공부를 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그녀와 하루 종일 산책을 하면서, 그의 꿈도 들어 주며, 십 년 후 어디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기보다 훨씬 밝고 즐거웠던 친구가 자살 시도를 했다면서, 십 년 후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고, 아이를 여럿 낳을 것이며, 그 숫자만큼 입양을 할 거라고 했다. 멕시칸 이민자 출신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안잘두아의 책을 선물로 주면서, 서로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정다운 무언가가 되어 가자고 약속했다.

한 학생이 가져다준 꽃과 계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젊은이의 여정은 꽃을 닮았고, 따스한 정이 묻어나는 계란에는 벌써 시작된 부활이 잠들어 있다. ©️박정은<br>
한 학생이 가져다준 꽃과 계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젊은이의 여정은 꽃을 닮았고, 따스한 정이 묻어나는 계란에는 벌써 시작된 부활이 잠들어 있다. ©️박정은

그리고 또 하루는 일 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한국 학생이 왔다. 불법 이민자로 살면서 여러 아픔을 겪어서일까, 나이에 비해 마음이 퍽 깊고 아름다운 친구인데, 이번 코로나로 무척 힘들게 지냈음이 분명했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짠했다. 그럼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자리를 성실히 지켜낸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매운 한국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아직 뚜렷한 길은 보이지 않아도, 현재 주어진 것을 감사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일구어 갈 생은 아름다울 거란 확신이 들었다. 함께 인스타그램을 보며 졸업생들이 뭘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작년 오월에 쿰 라우데(우수상)로 졸업을 했는데, 전혀 축하를 해 주지도 못했었다. 만일 학교에서 졸업식을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하다가, 우리는 모든 것을 “당연히” 그리고 “언제나”라고 생각하지만, 생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진리를 떠올렸다. 그러니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그의 수줍은 행복감을 마음껏 축복해 주고 싶었다.

봄 방학에 읽고 쓸 계획도 많이 세웠지만 많이 하지 못했다. 쓰고 있는 논문을 마저 쓰려고 했었는데, 손도 대지 못했다. 그래도 후배 교수와 함께한 한나절도 행복했다. 간호대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봄 방학을 깨끗이 반납한 그의 열정이 소중하고 고마웠다. 더구나 우리 학생들의 삶이 어렵다는 것, 어려움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려는 학생들의 마음을 깊은 곳에서 응원하는 그 교수의 고운 맘을 발견하며, 우리의 미션을 사는 그가 더욱 귀해 보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일하는 동료들이 있는데, 나 혼자 공부만 많이 하면 얌체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난 봄 방학 내내 사람들을 만나고,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쟁적인 사회 속에서 지친, 여전히 학부생 같은 느낌이 나는 예쁜 젊은이와 하루 종일 수다를 떨며, 포인트 레이스에 가서 잠 자는 바다코끼리를 보고 왔으며, 새로운 삶을 향해 가기 위해 우리 수도원을 떠나는 수련 수녀님과 긴 그리고 고요한 대화도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내 봄 방학은 테마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십 년 넘게 나의 봄 방학은 미시시피로의 여행이었는데, 비록 몸은 이곳에 머물렀어도,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소중한 속내를 들었고, 그들의 꿈을 만났다. 마치 그것은 꽃봉오리가 움을 뚫고 나오는 어떤 생명의 소리 같은 것이었다. 봄에는 생명이 꽃을 터뜨리느라 뿜어내는 에너지에 현기증이 느껴진다. 땅도 그렇고, 나무들도 그렇고, 생명의 움직임에, 가만이 있어도 현기증이 난다.

빨간 목련이 움을 찢고 나와 꽃을 피우는 시간. 봄은 저렇게 치열하게 생명을 일구는 열정 속에서 우리에게 온다는 것. 죽음 속에서 생명은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박정은
빨간 목련이 움을 찢고 나와 꽃을 피우는 시간. 봄은 저렇게 치열하게 생명을 일구는 열정 속에서 우리에게 온다는 것. 죽음 속에서 생명은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박정은

코로나로 위축되었던 우리 마음이 이제 조금씩 펴지기 시작하는 걸까? 나는 오크랜드 경기장에 가서 드라이브 스루 백신을 접종했다. 한 시간 넘게 차에 앉아 끝도 없이 펼쳐지는 줄을 보면서 왠지 죽음의 행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죽음의 춤"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서도 이어지는 긴 줄을 따라 주사를 맞는데, 드라이브 스루로 햄버거를 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정말 인상적인 것은, 친절한 자원봉사자들의 태도였다. 두려움과 불편함 속에 주눅든 많은 사람에게, 그들의 안내는 친절하고 따스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게 아니라, 겨울 속에, 혹은 겨울을 뚫고 나오는 생명이 봄인 것처럼, 코로나 속에서도 생명의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사람들 때문에,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사람들 때문에 코로나가 지나가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만나 따스한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했어도, 세상이 너무 혹독해, 생명을 꽃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젊은이들을 떠올린다.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중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아픔을 들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얼얼하다.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의 틀을 강요하는 걸까? 그리고 그 틀이 정작 그 자신에게 맞기나 할까?

나에게 주어진 일주일의 시간, 여전히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고뇌와 아픔, 그리고 꿈을 들으면서 보냈다. 이 사순절 광야의 한가운데서, 힘들어도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나가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광야로 나아가는 그리스도를 뵙는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이미 시작된 부활의 서막을 감지한다. 그리고 죽음 한가운데서 새 생명의 신비로 나아가기를 배우는 사순절 한가운데서,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설사 약속의 땅으로 못 들어갔더라도, 광야에서 죽은 모세는 행복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어두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된 새 노래를 듣는다.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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