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아동극 "8시에 만나"]

오늘부터 매달 1,3번째 금요일에 매체에 드러난 아동에 대한 '어린이처럼'이 연재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김유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눈과 얼음으로만 덮인 땅에서 날마다 심심한 펭귄 두 친구에게 어느 날 비둘기가 날아 와 말한다. “내가 너희한테 하느님의 소식을 갖고 왔으니 잘 들어. 이 세상에는 서로 싸우는 인간들과 동물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하느님도 이제는 지쳐서 이렇게 말했어. ‘내가 대홍수를 만들어 온 천지에 물이 넘쳐 나 세상이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알았지?”

비둘기는 대홍수를 피할 유일한 방법인 ‘노아의 방주’ 승선권 두 장을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조금 심술 맞고 키가 작은 친구 펭귄이 있다. 친구를 두고 갈 수 없어 고민하던 둘은 결국 트렁크에 친구를 담아 몰래 ‘노아의 방주’에 오른다.

▲ 아동극 "8시에 만나"의 한 장면.(사진 제공 = 아시테지 한국본부)

왠지 티 없이 순진할 것 같은, 순백의 얼음판 위를 뒤뚱거리는 펭귄은 어린이들과 매우 닮아 보인다. 어린이들은 질문이 많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그렇다. 극중 펭귄들의 질문은 곧 어린이의 질문이다.

하느님이 누군데? 하느님은 어떻게 생겼지? 죽으면 다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무슨 벌을 주는데? 비둘기에게 대홍수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그들은 묻는다. “그렇다고 홍수를 일으킬 필요까진 없잖아. 혹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 잘 말해 보면 안 될까?”

하느님이 왜 대홍수를 일으켰는지, 그래야만 했는지 펭귄들은 줄곧 의문한다. 친구 하나를 버리고 올 수 없던 상황을, 다른 친구들은 모두 물속에 빠져 버린 절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찾은 답은 바로 대홍수가 하느님의 실수라는 것. 어른들의 세계에서 구약의 대홍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근동의 홍수 설화나 구약 성경의 신관 등이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세계에서 그것은 너무나 단순명료하게도 하느님의 실수란다.

이것을 그저 인지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만 웃어넘길 수 있을까. 어린이들의 질문과 시각은 때로 진리를 탐구하고 선으로 향하는데 큰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구약의 대홍수에 대해 어른들은 얼마나 의문하는가.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죄악으로 넘쳐나 하느님이 벌하실 만하다,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았나. 대홍수를 다룬 영화 “노아”가 꾸준히 여러 편 만들어졌지만 이러한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 새로운 질문을 하는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방학을 맞을 때마다 아이와 함께 연극을 한 편씩 본다. 이 작품 “8시에 만나”는 제12회 서울 아시테지(ASSITEJ) 겨울축제의 올해 우수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아시테지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로 매번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마다 작품성이 뛰어난 아동청소년연극을 공연한다. 아동극에 대한 정보를 줄곧 접하기는 힘들어서 좋은 공연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1년에 두 번 아시테지 축제에서는 웬만한 작품들은 다 만날 수 있다.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자극적인 공연에 실망해 아동극을 외면한다면 오산이다.

▲ 울리히 흄 글, 요르그 뮐레 그림, 유혜자 옮김,"8시에 만나", 현암사, 2010
이 연극은 같은 제목의 동화책 “8시에 만나”(울리히 흄 글, 요르그 뮐레 그림, 유혜자 옮김, 현암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원작이 지닌 주제의 깊이와 유머 넘치는 대화가 연극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다섯 손가락을 붙인 채 양 팔을 몸에서 약간 띄우고 종종거리며 걷는 배우들의 몸짓은 펭귄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또 노래와 함께 젬베, 바 차임, 오션드럼 등 다양한 리듬악기로 자아낸 음향은 극의 전체적인 리듬을 살려 유아들도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다.

대홍수가 끝나 육지에 내린 펭귄들은 지평선 너머 무지개를 만난다. 노아는 무지개가 “햇빛이 비치지 않는 일은 없을 거라는 하느님의 약속”이라고 일러 준다. 이를 두고 키 작은 펭귄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다니 하느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해석한다. 끝까지 하느님의 실수란다. 애초에 펭귄들에게 노아의 방주는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펭귄들은 수영을 아주 잘 하니까.

펭귄들의 이야기에, 아니 어린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무지를 반성하며 진리를 찾는 빛, 세상을 전복하는 상상력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내가 아동문학을 하는 이유, 이 글을 쓰려는 이유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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