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잿더미가 된 북미 대륙 위에 새롭게 들어 선 나라 판엠은 부와 권력의 중심 캐피톨과 열 세 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캐피톨에선 매년 헝거게임이 벌어지는데 이는 각 구역에서 차출된 소년, 소녀들이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며 최후의 생존자 한 명을 가리는 죽음의 경주다. 캐피톨은 과거 열 세 구역이 반란을 일으킨 대가로 헝거게임을 고안해 공포 정치의 방편으로 삼는다. 그들이 다스리는 열 세 구역 사람들이 24시간 생중계되는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무력감과 공포를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 "헝거게임: 더 파이널", 프랜시스 로런스, 2015
2008년 발간된 수잔 콜린스의 판타지 소설 “헝거게임”(The Hunger Games) 시리즈는 베스트셀러로 큰 인기를 누리며 영화로도 제작되어 마지막 4부 “헝거게임: 더 파이널”이 최근 개봉되기도 했다. 북미에서 이 소설과 영화의 열풍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고 할 정도다.

디스토피아로 설정된 미래 사회에서 소년, 소녀들이 생존 게임에 내던져지는 이야기는 요즘 소설과 영화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원작 소설의 설정이나 문화 상품으로의 소비 방식이 “헝거게임”과 매우 유사한 작품으로는 “다이버전트”(Divergent) 시리즈가 있는데 이 소설 또한 베스트셀러로 2014년부터 영화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메이즈 러너”(Maze Runner) 역시 미로 속에 감금된 소년들의 생존과 탈출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북미권에서 ‘영 어덜트’(Young Adult) 장르로 구분된다. ‘영 어덜트’는 대개 16-17세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SF, 로맨스, 판타지 등의 장르문학으로, 주 독자층은 청소년을 포함한 20대 성인이다. 한국문학과 비교하자면 “완득이”를 대표작으로 하는 ‘청소년 소설’ 장르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영 어덜트’ 문학은 순문학이나 리얼리즘 문학보다는 장르 문학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다르다.

“헝거 게임”, “다이버전트”, “메이즈 러너” 등의, 어찌 보면 무척 잔혹하고 황당한 이야기는 따라서 ‘영 어덜트’라는 장르 문법으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선명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생존 게임에 던져진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줄곧 생산되고 관심 받는 이유와 의미는 뭘까.

이미 “헝거 게임” 이전에 일본 영화 “배틀 로얄”(2000)은 아이들 간의 생존 게임이라는 설정으로 꽤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을 이러한 게임으로 밀어 넣는 이유는 학교 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을 강력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려는 목적에서다. 입시 교육의 폐해가 컸던 일본에서 이런 영화가 제작된 건 그것이 바로 청소년의 현실이기 때문이었을 테다. 판타지는 현실의 반영이며 현실과 유리된 판타지는 없다. 생존 게임에 던져진 아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아래서 각자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오늘날 아이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존 게임에 갇히기는 했지만 그들의 목표는 최후의 승자로 목숨을 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그들은 순수한 분노와 무모한 용기로 자신을 생존 게임에 떨어뜨려 놓은 체제 자체에 균열을 낸다. 체제에 복종하고 체념하며 살아가는 기성 세대와, 청소년이 다른 점은 그 저항과 도전 정신일 테다. 어른들의 생존 게임이 아닌 아이들의 생존 게임 서사는 바로 여기에 새로운 힘이 있다.

(사진 제공 = (주)누리픽쳐스)

“헝거 게임”의 소녀 주인공 캣니스는 처음부터 혁명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야기는 헝거 게임에 차출된 어린 동생을 대신해 그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기로 자원하면서 시작된다. 친구를 죽이면서 목숨을 부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에게는 새로운 부활의 삶이 펼쳐진다. 또 고통받는 사람들과 만나는 가운데 그는 구원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른이 아닌 한 소녀가 자신의 소명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와 관객의 공감과 반향은 더욱 커진다.

“다이버전트”의 소녀 주인공 트리스 역시 철저한 통제 사회 속에서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의식으로 체제의 모순에 저항하고 그것을 깨려고 한다. “이건 진짜가 아니야‘(This is not real)라고 외칠 수 있는 힘은 기존의 질서에 갇히지 않은 채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려는 의지와 노력에서 나온다.

소년도 아닌 소녀 주인공들은 그렇게 생존의 정글에서 탈출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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