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재발방지, 민사배상 등 합의
중대재해법 형사재판 책임 남아

(왼쪽에서 두 번째) 이동우 씨 부인 권금희 씨는 합의서 서명에 앞서 재발 방지를 거듭 촉구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수나 기자
(왼쪽에서 두 번째) 이동우 씨 부인 권금희 씨는 합의서 서명에 앞서 재발 방지를 거듭 촉구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수나 기자

동국제강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 씨 산재 사망에 대해 사측과 유족이 16일 동국제강 본사에서 합의서에 조인했다.

이동우 씨가 숨진 지 88일, 유족 농성 59일 만이다. 산재사망 사고가 일어났던 지난 3월 21일부터 포항성모병원에 안치된 이동우 씨의 장례도 치러진다.

고 이동우 씨의 명복을 비는 것으로 시작된 조인식에서 이찬희 상무(동국제강 동반협력실장)는 합의가 늦어진 점을 사과하고, "자원을 투입해 사고 예방 대책과 안전조치를 철저히 마련해 또다시 회사에서 중대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이동우 씨의 어머니와 부인 권금희 씨는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조인식 뒤 권금희 씨는 “3월 21일이란 말이 나오면 너무 슬프다. 그날 아침이, 믿을 수 없었던 상황이 자꾸 떠오른다”면서 “이 종이가 우리 남편이 되진 않는다. 우리 가족을 위로할 수 없다. 이제 반 왔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한 가정을 파괴한 사람들의 죗값을 꼭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다.

합의서에 서명하는 권금희 씨. ⓒ김수나 기자

이날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산재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이하 지원모임)은 기자회견을 열고 주요 합의 내용 및 장례 일정 등 추후 계획을 밝혔다.

주요 합의에 따르면, 애초 유족의 요구였던 동국제강 대표이사의 대면 공개 사과 대신 장세욱, 김연극 두 대표이사의 공동명의로 동국제강 홈페이지 1면에 1주일간 합의된 사과문이 게시된다. 사과문에는 사고에 대한 사측의 잘못과 책임의 주체를 적시하기로 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사측은 유족에게 본 사고에 대한 자체 사고조사보고서와 ILS시스템 설치 및 운영 개요가 추가되는 재발방지 대책안을 제공하기로 했다.

ILS시스템은 전기로 작동되는 기계설비의 보수 작업 시 전원을 차단하는 장치다. 권영국 변호사(유족 법률대리인)에 따르면 사실상 동국제강은 지금까지 이 시스템을 제대로 설치, 관리하지 않았다. 지난 3월 이동우 씨가 천장 크레인 보수작업을 할 때 갑작스러운 크레인 작동으로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에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한 필수적 장치다. 이번 합의로 동국제강은 모든 관련 설비에 이 시스템을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동국제강은 유족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보험급여 외에 민사배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하고, 유족은 민사배상과 관련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단 회사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기소돼 1심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협의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권 변호사는 중대 산업재해 발생 시 회사의 재정적 부담을 더 크게 지울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남긴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합의서를 교환하는 권금희 씨와 이찬희 상무(동국제강 동반협력실장). ⓒ김수나 기자

권영국 변호사는 이번 합의를 위해 유족이 세운 원칙은 “원청의 실질적 책임자의 공개 사과”, “재발 방지 대책안 약속”, “노동자의 생명을 중시하는 정당한 배상”이었다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유족의 노력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4월 18일 시작된 협상 자리는 6월 14일까지 모두 8번 진행됐다.

지원모임은 “협상은 회사의 입장이 없다는 내용으로 시작돼, 일정하게 합의된 내용도 다음 협의 자리에서는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번복돼 난항을 겪었다”면서, “6월 14일 협상에서 회사는 형사상 이의 부제기 조항과 합의 체결 이후 본 사고와 관련해 회사를 비난하는 의견 표명, 집회 등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들고 나와 협상과 정회를 수회 반복하며 9시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산재사망을 대하는 자본의 입장이 얼마나 완고한지 새삼 확인한다”면서, “하지만 유족들은 협의 과정에서 세운 원칙과 기준을 관철했다. 형사상 이의 부제기나 합의 이후 회사 비판 제한과 같은 족쇄 조항을 배제했다. 아쉬운 점은 대면 사과와 징벌적 손해배상의 배상 기준을 양보한 점”이라고 말했다.

조인식에 앞서 고 이동우 씨의 명복을 비는 모습. (왼쪽) 유족 측 (오른쪽) 동국제강, 창우이엠씨(하청업체) 측. ⓒ김수나 기자

지원모임은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되는 첫해 노조도 없는 사업장에서 유족과 시민사회가 함께 싸웠던 첫 사례로, 산재사망에 대한 원청의 책임과 피해배상, 사과 등에 대한 작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낸 싸움이었다면서, 형법상 업무상 과실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위반에 따른 형사 재판에도 지속적 관심과 연대를 요청했다.

이어진 연대 발언에서 황인근 목사(NCCK인권센터 소장)는 “기업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몇몇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노동자와 그 가족을 행복하게 해야 함을 기억하고, 정부는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도록 장치를 마련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달려오라”고 말했다.

이동우 씨와 같은 간접고용노동자라고 인사한 서재유 씨(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집행위원, 코레일네트웍스 정책부장)는 “이번 사측의 사과가 이 가족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양심이 있다면 앞으로 법적 결과와 상관없이 이 가족이 살아가는 내내 마음을 다해 이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미, 류호정 국회의원(정의당)은 사업주의 책임을 면피하는 쪽으로 추진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안 발의를 기필코 막아내고 산재사고를 줄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유족과 지원모임은 이날 저녁 7시 동국제강 본사 앞 이동우 씨 분향소에서 시민사회장으로 영결식을 진행한다. 17일 장례식과 함께 포항성모병원 앞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다음 날인 18일 오전 7시 발인과 함께 고인의 집과 일터였던 동국제강 포항공장 앞으로 가는 노제가 치러진다.

16일, 동국제강 비정규직 고 이동우 산재사망 해결을 위한 지원모임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수나 기자<br>
16일, 동국제강 비정규직 고 이동우 산재사망 해결을 위한 지원모임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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