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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에서 꿈꾸는 자조와 협력[코로나19 공동기획 1] 돈의동주민협동회 최봉명 간사
<가톨릭평론>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공동기획으로 노동, 빈곤, 인권 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코로나19의 그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짚어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활동하는 돈의동주민협동회 최봉명 간사를 만나 봤다.

 

코로나19와 폭염에 속수무책인 쪽방촌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 골목. 고층 건물 뒷쪽에 있어 잘 눈에 띄지 않는 이곳에 400여 명이 살고 있다. ⓒ김수나 기자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다음이 쪽방촌이란 말이 있다. 이들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 기준에도 못 미치는 비주거지다. 최봉명 간사(50, 바오로)는 쪽방촌을 코로나19, 오랜 폭우와 연이은 폭염에 “선택지가 없는 재난이 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곳은 스스로 돕고 서로 돌보는 자조적 공동체를 이뤄 가는 곳이다.

코로나19로 가장 힘겨워진 것은 폭염이다. 이전 같으면 시나 구청의 무더위 쉼터라도 갈 수 있었지만, 올여름엔 이마저도 없다. 게다가 긴 폭우로 습기와 곰팡이도 더 심해졌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강화되고, 아프면 집에 머물기가 강조되지만 쪽방은 쾌적함과 깨끗함,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지역에 살며 출퇴근하는 그는 주민의 삶과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견주어 본다.

“더울 때 저는 대안이 있어요. 창문을 열어 놓고 선풍기만 틀어도 좀 낫죠. 쪽방은 그것조차 안 돼요. 그래도 더우면 저는 에어컨을 틀 수 있지만 쪽방은 에어컨도 못 틀죠. 노후주택이라 실외기를 설치할 수 있는 곳이 적어요. 보통 건물 한 동에 에어컨 한두 대가 복도에 있지만,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기세가 많이 나오고 방마다 시원한 바람이 가지 않아 효율이 낮아요. 전처럼 무더위 쉼터에 갈 수도 없으니 지금은 그게 가장 큰 문제예요.”

쪽방에서는 거리 두기나 가구별 위생 유지도 어렵다. 사람 하나 누우면 꽉 차는 1평 남짓한 크기의 방 여러 개가 다닥다닥 붙은데다 창문이 없고 수도와 화장실을 같이 쓴다. 코로나19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만약 쪽방 건물에서 누구 하나 감염되면, 건물 전체 거주자는 살던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 집조차 감염병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다.

실제로 지난 6월 이곳 쪽방촌에 단 하루 머물렀던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아, 같은 건물에 있던 모든 이가 다른 시설로 옮겨져 격리에 들어갔다. 그 뒤로 다행히 확진자는 더 나오지 않았지만, 매우 좁은 공간에 모여 살아야 하는 쪽방촌의 공간적 특성 때문에 한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돈의동주민협동회 최봉명 간사.(50, 바오로) ⓒ김수나 기자

코로나19 시대, “응급 구호적 주거가 필요하다”

방법은 없을까? 그는 대구쪽방상담소의 사례에 주목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 자가격리 시설로 썼던 여관, 여인숙을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 내내 운영하는 것이다. 방마다 개별 화장실과 샤워실, 에어컨이 있어 서로 접촉하지 않고 무더위를 피할 수 있다. 대구 쪽방촌 사례는 그가 주거에 대한 관점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복지의 관점에서만 봤던 주거를 이제는 의료, 보건의 관점에서 ‘응급 구호적인 주거’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거권이 좀 더 나은 삶의 질, 인권의 증진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제는 주거를 생명과 관련해서도 봐야 한다는 것이죠.”

2018년 1월 5일, 라면을 끓이다 번진 불로 주민 희생

코로나19로 가중된 고통은 사실 이미 있었던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가 더 드러난 것일 뿐이다. 이곳 주민들은 그 약한 고리를 딛고 “함께 협동해 스스로를 돕고 나누는 공동체”를 살아가고 있다. 주민협동회를 꾸려 매달 출자를 하고, 마을식당을 운영하며, 반찬 나눔, 마을 장례도 함께한다. 라면을 삶다 일어난 화재로, 폭염의 열사 질환으로 더 이상 이웃이 희생되지 않도록 스스로 또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섰다.

쪽방에는 조리시설이 따로 없어 보통 각자 방에서 버너로 음식을 한다. 건물이 오래되고, 좁은 공간에 모여 살다 보니 한 곳에서 불이 나면 바로 번진다. 열악한 쪽방의 주거환경은 재난에 속수무책이다. 더는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주민 10여 명이 제안해 반찬 나눔이 시작됐다. 주민들이 방에서 조금이라도 불을 덜 쓰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반찬 나눔은 몇 달째 멈춘 상태다. 하지만 최소한의 식사는 멈출 수 없어 마을식당은 계속 운영한다. 쪽방촌에서 마을 식당을 이용하는 주민은 하루 평균 40여 명이다. 전에는 사랑방에 모여 밥을 먹었지만, 코로나19 뒤로는 각자 그릇을 가져와 음식을 담아 간다. 마을식당의 운영이 가능한 것은 무보수 주민 봉사 덕이다.

하루 평균 40여 명이 이용하는 마을식당 입구의 게시판. 마을식당은 주민 봉사로 운영된다. ⓒ김수나 기자

주민협동회, “혼자는 어렵지만 함께하면 할 수 있다”

최봉명 간사는 쪽방 같은 비주거를 없애고 특정 개인이 아닌 실제로 사는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 스스로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서로 힘을 모으고 있다.

돈의동 쪽방촌에는 약 400명이 사는데, 이 가운데 현재 180여 명이 주민협동회 출자 회원이다. 한 달에 할 수 있는 만큼 출자해 각자 필요한 종잣돈, 누군가에게 급히 필요한 소액대출, 뒷날을 도모할 자금을 모으고 있다. 수급자이거나 신용불량 상태라 시중 은행에 저축할 수 없는 이곳 주민에게 주민협동회의 출자는 앞날을 향한 소중한 출구다. 현재 총 출자금은 20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액수를 떠나서 우리에게는 정말 큰돈이에요. 182명이란 회원 수도 엄청난 것이죠. 처음에 돈 떼일까 봐 믿지 못하고 걱정하던 주민이 많았지만 이제는 무언가 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출자 회원이 되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어요. 그만큼 신뢰가 형성된 것이고, 신뢰 자체가 우리에겐 큰 자산이자 무엇이든 해 보겠다는 근거가 되어 줍니다.”

주민들이 이렇게 힘을 내고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생의 어느 비탈길에서 주저앉게 되더라도 “낙오된 약자”에 머물지 않고 다시 자립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는 이제 정부만 바라보지 말자며 새로운 처방을 제시했다.

출자금 통장. 주민들의 출자금은 각자의 통장, 접수대장, 출자금원장, 통장기록, 전산기록, 저장장치 모두 6곳에 똑같이 기록돼 서로 간의 신뢰가 형성되도록 했다. ⓒ김수나 기자

이를테면 시민사회계나 종교계 등이 쪽방촌 부지를 매입해 적정한 공공 주거 공간을 만들고, 주민협동회 같은 주민자치 조직이 운영할 수 있게 임대하는 방식을 상상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주거급여가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쪽방 문제는 공공의 영역에 있어야 해요. 노숙까지 가는 과정에서 쪽방, 여관, 고시원 같은 주거취약 상황을 겪는데 이런 곳을 개인이 운영하다 보니 수요가 많으면 세를 올리고, 방이 부족하면 방을 쪼갭니다. 그러면서 주거환경이 더 열악해집니다. 1평 남짓한 쪽방이 월세가 24만 원 안팎이에요. 말도 안 되게 비싸요. 대개 주민이 수급자라 주거급여를 받아 세를 내는데, 공적 기금인 주거급여가 양질의 주거가 되도록 쓰이지 않고, 결국 쪽방 주인들 배만 불리는 겁니다."

턱 없이 비싼 월세는 쪽방촌의 주거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장 논리에 따라 개인의 이익을 좇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이곳 주민의 삶의 질은 어디에서도 고려되지 않는다. 이제 그는 이런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도심 곳곳에서 도시정비 사업이 진행되면서 쪽방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해도 또 다른 취약 주거는 계속 형성될 것이란 설명이다.

주민이 삶의 의지 발휘할 수 있는 적정 주거 공간으로....
교회 선교본당은 소중한 경험, 지속적 시도 필요하다

공적 재원으로 인간다운 주거환경을 만드는 것은 제도적 차원의 과제이지만 주민협동회와 같은 주민 자치와 자조의 경험도 중요하다. 그는 실패하더라도 주민의 의지로 마을 공동체를 꾸려 가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 대부분이 수급자라 돌봄이 필요한 상태인데다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 이뤄 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돈의동 주민협동회가 진행하는 사업은 서로 협동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통해 자조 경험을 쌓는 중요한 기반이다. 주민협동회는 앞날을 도모하면서 스스로 힘을 기르기 위해 출자하고, 관리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쌓고 있다.

최봉명 간사는 “주택은 워낙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마냥 얹혀 가겠다는 뜻이 아니다. 관리나 운영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마음껏 실패하고 싸우고, 엎어지면서도 다시 의기투합해 자신의 삶을 끌어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그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본다.

한 가수의 팬클럽 회원들이 후원한 겨울용 이불이 주민사랑방에 쌓여 있다. ⓒ김수나 기자

교회나 각 개인이 쪽방촌과 함께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는 “선교 본당처럼 쪽방 본당”을 상상해 본다. 그는 “선교 본당이 재개발을 막아내거나 주민 삶의 질을 본질적으로 추동해 내진 못했지만 교회의 소중한 경험”이라면서 선교 본당과 같은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교회가 쪽방촌을 매입해 사제를 파견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면 주민들이 삶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원하거나 출자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는 “현실적으로 후원이 필요하지만 후원보다는 깊게 엮이고 싶다”면서 “동지란 의식으로 출자하고, 그런 자산이 쌓여 또 다른 공동체를 시작할 때 출자할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최봉명 간사는 주민과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그가 주민협동회의 일들을 매우 꼼꼼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해 온 것도 “자조와 협력”을 향한 공동의 신뢰가 쌓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코로나19로 잠시 멈칫했지만 돈의동 주민협동회는 비영리민간단체로 나아갈 준비를 하면서 이 신뢰를 통한 꿈을 계속 키워 가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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