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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가 주는 경고

무작정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구례까지는 약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하동과 화개장터를 거쳤습니다. 물이 빠진 화개장터는 생각보다 빨리 복구가 시작됐습니다. 구례 시외버스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잠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지만, 무조건 시장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마침 몇몇 가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민들이 가재도구들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가재도구들을 함께 치웠습니다.

마침 제가 들어갔던 곳은 세탁소였습니다. 손님이 맡긴 옷과 이불들이 물에 잠겼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세탁기계도 물에 잠겼습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합니다. 밤새워 장대비가 내리고, 새벽에 평생 겪지 못한 큰물이 밀려와서 어른 어깨까지 물이 찼습니다. 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이 빠지고 돌아오니 기가 막혔을 뿐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할 말조차 없었습니다.

물에 잠긴 옷가지들을 옮기고, 닦아내고 쓸어내고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상 물난리를 겪었는데, 물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이중 삼중의 고통이 계속됐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물에 잠긴 앨범을 찾아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닦았습니다.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을 기억하며, 옛날 추억을 화제로 삼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어르신의 유품도 나왔습니다. 작은 지갑 안에는 몇 장의 지폐도 있었습니다. 큰 따님은 “심봤다~”라며 웃었습니다.

물에 잠긴 한 세탁소에서 가재도구를 정리하던 사람들이 돌아가신 어르신의 유품을 발견하고, 장흥에서 달려온 곡인무영 스님에게 유품과 관련된 기억과 추억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영식
구례의 한 주민이 자신의 집에서 나온 가재도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장영식

이번 물난리는 가장 길고 늦게 끝난 장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물난리는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지만, ‘기후 악당’ 한국의 정치인들과 이윤에 눈먼 기업가들이 과학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지금처럼 자연을 착취하고 이윤을 위한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한, 재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삶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과학의 경고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미 기후위기를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었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10년 이내에 큰 태풍이 왔을 때를 가정했을 때, 부산의 해운대와 김해까지 물에 잠기는 충격적인 모의실험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성장과 개발로부터의 대전환을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여전히 그린벨트를 풀고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덕도 신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학이 주는 경고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알래스카 북극곰 서식지인 미국 최대 야생보호구역에서 석유개발을 허용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재선을 위한 방법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지지자들의 결집을 위한 술책입니다. 나쁜 정치인을 뽑은 결과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앞으로는 빈부격차만 키우는 ‘경제성장’을 외치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 투표해야 한다. 물론 그러려면 시민들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가장 피해가 컸던 '구례5일장'에서는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의 수고와 헌신이 함께했습니다. ©장영식
물에 잠겼던 비닐하우스는 휘어지고 쓰러졌습니다. 주민들은 이 참혹한 재난 앞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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