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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공간, 자존”, 코로나 시대 홈리스로 산다는 것[코로나19 공동기획 3]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 로즈마리 학생회장

<가톨릭평론>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공동기획으로 노동, 빈곤, 인권 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코로나19의 그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짚어 본다. 세 번째로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 로즈마리 학생회장을 만나 봤다.


로즈마리는 애칭이다.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이하 야학)에서는 교사나 학생 모두 애칭을 쓴다. 나이도 이름도 살아온 숱한 사연도 스스로 말하기 전엔 잘 모른다. 다만 지금 모습으로 삶의 무게를 가늠한다. 로즈마리 회장이(64살) 이곳에 온 지는 5년쯤 됐다. 그는 홈리스 당사자이자 야학 학생이면서 노숙인 권리와 반 빈곤운동에 연대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이 야학에 온 계기가 됐다. 동짓날이면 열리는 ‘노숙인 추모제’도 참 좋았다. 거리에서 죽어간 이들의 안타까운 삶의 끝을 함께 기억하는 일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늘 쪼들리고 어렵게 살아서 누구든 만나지를 못했어요. 이곳을 먼저 다닌 친구가 알려줬는데, 나도 힘들면 다녀야겠다 싶었어요. 야학 프로그램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기서 환갑을 차려 준 기억이 나는데, 아마 그 전부터 왔을 거예요.”

야학은 홈리스행동이 운영한다. 2001년 창립된 홈리스행동은 노숙 등 극한의 주거 빈곤에 처한 이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야학은 홈리스가 단지 경제적 빈곤만이 아닌 교육과 문화적 배제 상태라는 인식에서 2010년 출발했다. 야학에서는 기본권, 한글, 글쓰기, 요리, 공예, 휴대폰과 컴퓨터 사용, 텃밭 등 삶에 필요한 주제를 다양하게 다룬다. 지금 학생이 스무 명쯤 되는데, 전에는 더 많았지만 코로나로 추가 모집이 어렵다. 입학식, 개강식 등 야학 행사는 늘 잔치처럼 다 같이 모여 진행했지만, 지금은 반별로 움직인다.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 로즈마리 학생회장. (사진 제공 = 가톨릭평론)

야학, 배움과 쉼, 연대가 어우러지는 공간

야학에서의 배움은 스스로를 넘어서는 경험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인권은 언제 어디서나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이 학인들을 깨운다. 이들은 바깥으로 눈을 돌려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직접 찾아 나선다. 매주 구역을 나눠 홈리스들을 만나 말을 걸고, 음식 등 급히 필요한 것을 나누기도 한다.

로즈마리 회장은 노숙인들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국회든 시청이든 달려가 동료, 활동가들과 목소리를 낸다. 코로나19가 시작된 뒤 노숙인 자활 예산이 깎였을 때도 이를 막아냈다.

“노숙인이 서울시 자활사업에서 일한 뒤 받는 임금이 60만 원 선이었는데, 40만 원 선으로 줄인 거에요. 가장 어려울 때인데 예산과 근로 시간도 줄였어요. 서울시 의회 앞에서 일인 시위도 하고, 담당자 만나 항의도 했어요. 그랬더니 원래 금액으로 돌아갔다고 해요.”

야학은 홈리스행동과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빈곤사회연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함께 쓰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 있다. 서로 연대하는 단체가 모이다 보니 현장 활동도 함께 한다. 로즈마리 회장은 이를 “반 빈곤운동”이라고 했다. 그는 “폭력, 무시, 멸시를 일삼는 이들을 감시하고 어렵고 소외된 사람에게 힘을 실어 주려고 역 근처로 감시 활동을 나가 제제하거나 민원을 넣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무연고로 숨진 이들을 위한 장례식에 더욱 마음을 쓴다.

야학은 고단한 일상을 잠시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역이나 공원에서도 잠시 앉아 있기 힘든 나날이다. 이들에게 역과 공원은 단지 공공장소가 아니다. 앉아 쉬거나 쪽잠을 자고, 밥을 먹고, 짐을 부려 놓는, 갈 곳이 없는 이들의 일상이 이뤄지는 거처다. 이들은 코로나19 시기를 그야말로 맨몸으로 버티고 있다. 집 대신 그들의 쉼터가 돼 준 공원, 역, 지하철, 길가에서도 이들은 감염 위험과 방역을 이유로 쫓겨났다. 코로나19로 지원이 더욱 절실해졌지만 오히려 감염병은 그 추방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있을 데가 없는데, 코로나 때문에 자꾸 나가라고 해요. 그래도 야학에 오면 잠시 머물 수 있어요. 시간 맞으면 밥도 먹고 짐도 잠깐 두고요. 내 물건을 둘 데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좋아요. 컴퓨터를 하고, 여름에 더울 때 여럿이 있으면 에어컨을 틀수 있고, 피곤하면 의자 붙여 눕기도 하고,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고, 누굴 만나기로 한다면 여기서 만나고.... 야학은 우리에게 ‘있을 데, 갈 데가 있다’는 의미예요.”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에서는 권리, 한글, 글쓰기, 요리, 만들기, 컴퓨터, 텃밭 같은 교육이 이뤄진다. (사진 제공 = 가톨릭평론)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에서는 권리, 한글, 글쓰기, 요리, 만들기, 컴퓨터, 텃밭 같은 교육이 이뤄진다. (사진 제공 = 가톨릭평론)
홈리스행동이 들어 있는 주택 앞마당에 한 학인이 가꾼 텃밭. ⓒ김수나 기자

밥 :  “홈리스에게 코로나19는 감염 공포 아닌 기근”

로즈마리 회장은 코로나19로 “먹는 게 가장 급한 문제가 됐다”고 했다. 민간 지원도 대부분 끊기고 그나마 운영되는 무료급식소에는 사람이 몰려 오래 기다려도 밥을 먹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홈리스행동은 이를 “홈리스들에게 코로나19는 감염의 공포일 뿐 아니라 먹는 일을 걱정해야 하는 기근”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만 해도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민간급식소 절반이 문을 닫았다. 8월 중순 수도권의 강화된 2단계 조치로 급식소 운영은 또다시 줄었다.

“얼마 전 무료급식소가 300명에게 밥을 주는데 700명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에도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급식이 끝나도 기다린 이들에게 빵을 주거나 다른 급식소라도 갈 수 있었어요. 또 누가 주먹밥을 주기도 했고요. 이젠 그렇게 주는 데도 없어요. 추석 때도 많이 기다렸는데 300명에서 마쳤다고 해요. 우리가 저녁 8-10시에 활동 나가면 밥을 못 먹었다고 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한 끼 밥을 위해 두세 시간 이상 걸려 성남이나 인천 등지로 향하는 홈리스들의 고달픈 여정을 듣는 일도 잦다. 매주 두 번 현장 활동을 나가면 전에는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할 수 없어, 요구르트 등으로 대신한다. 그러면 “그거 말고 밥이나 떡을 달라”는 말이 돌아와 로즈마리 회장은 마냥 안타깝다.

“코로나 때문에 급식이 줄어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많아요. 굶은 지 오래된 분들은 돌아가실 것 같아,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라도 사서 조용히 갖다 드리기도 해요. 대부분 이가 없어서 라면을 불려서 드세요. 우리들은 한눈에 보면 얼마나 배고픈지 아니까요. 심지어 어디 먹다 남긴 김밥이라도 있나 둘러보게 되죠, 너무 배가 고프니까.”

“어디 가니 (급식이)끊겨서 못 먹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올수록 그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급식소를 더 늘리고, 급한 데로 먹는 장소라도 시급히 더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로즈마리 회장은 "반 빈곤운동" 활동가이기도 하다. (사진 제공 = 홈리스행동)

공간 하나 :  “자꾸만 집에 가라지만 우리는 역, 공원이 집”

‘집에 머물라’는 감염병 시대의 방역 수칙에서 홈리스는 철저히 소외됐다. 지난 4월 유엔이 나서 홈리스에게 안전한 숙소를 제공하고 거리 청소 등을 이유로 홈리스의 물건을 철거하지 말고, 통행금지나 봉쇄조치 때 벌금 등 처벌받지 않도록 코로나19에 대한 홈리스 보호 지침을 촉구했지만 현실에서 홈리스는 보호받기는커녕 배제됐다.

실제로 지난 5월 서울 중구청 등은 쓰레기차를 동원해 서울역 광장에 있는 거리 홈리스의 물건을 사전 계고도 없이 철거했다. 코레일 부산, 경남본부는 심야 시간에 부산역 대합실을 폐쇄했고, 홈리스를 쫓아냈다. 서울 용산역 철도 부지에 있는 노숙 텐트촌의 출입구 역시 한동안 폐쇄됐고, 서울교통공사 자하철과 서울역 등에서도 노숙이 금지됐다. 방역 대상이 코로나19가 아닌 홈리스에게로 향한 대표적 사례다.

“역 근처에 앉아서 쉬거나 졸기도 했는데, 다 못하게 해요. 앉지도 말고 집에 가래요. 시민청 아래 있던 사람들은 바깥으로 쫓겨 나갔고, 탑골공원이 폐쇄되고 지하철역 노숙이 안 되니까 사람들이 원각사나 공원 주변으로 밀려났어요. 화가 나요. 자꾸만 집에 가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런 데가 집인데....”

머물 공간이 사라진 것 말고도 이발, 진료, 옷 등도 대면 제한으로 봉사가 거의 끊겼다. 코로나19로 홈리스의 삶을 유지했던 최소한의 의, 식, 주가 더욱 위태롭게 됐다. 이들은 이제 더는 내몰릴 곳도 없다.

로즈마리 회장은 "반 빈곤운동" 활동가이기도 하다. (사진 제공 = 홈리스행동)

공간 둘 : “두 다리를 뻗고, 추억의 물건이 놓이고, 거북이와 함께 사는 나만의 공간”

로즈마리 회장은 2년 전 거북이 두 마리를 얻었다. 거북이와 함께 살 공간이 없어 지인에게 맡겨놨는데, 최근 힘드니 데려가란다. “주인이 이러니 거북이도 노숙자가 돼서 딱하다”는 그는 거북이와 같이 살고 싶지만 아직 여의치 않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그는 “용하게” 살아가곤 있지만 생활의 안정감을 얻기는 어렵다고 느낀다. 앉아서 자는 일이 잦다보니 “두 다리만 뻗어도 진짜 행복”하다지만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물건도 그렇고 모든 것이 자리가 안 잡혀요. 주거, 집은 마음에 안정을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과 같이 있으니까 전화 벨소리나 통화하는 것도 신경 쓰여요. 극동방송이나 CTS(기독교텔레비전) 보는 거 좋아하는데, 혼자만의 공간이 없으니까 편하게 볼 수도 없고요. 나의 공간이 없는 게 붕 뜬 삶 같아요.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 안 보이지만 해결돼야 할 부분이에요.”

그는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사진을 걸어 놓고 싶다. 공간이 없는 삶을 사는 동안 예전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들도 어디론가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삶이 더는 정처 없이 흩어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자존 : “가난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아랫마을'은 야학을 운영하는 홈리스행동,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빈곤사회연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함께 있는 공간이다. ⓒ김수나 기자

우리 사회는 홈리스를 실패자나 낙오자, 무능력한 존재로 쉽게 규정한다. 하지만 홈리스행동은 이를 거부한다. “나는 게으름뱅이가 아닙니다. 가난은 가족의 책임이 아닙니다”라는 홈리스행동 마당에 걸린 현수막도 이를 말해 준다. 홈리스 상태는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사회 구조적 문제지만, 홈리스가 되면 비루해진 삶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기 쉽다. 로즈마리 회장은 홈리스들이 야학을 다니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 비하와 자포자기를 넘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 전에는 은연중에도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됐다, 얻어 먹으러나 다닌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야학에서 권리교실 등을 공부하면서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고 단지 어려움에 빠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힘을 얻었어요.”

그 힘으로 그는 지금 여력이 닿는 만큼 배우고, 동료들과 그 배움을 나누고, 더 어려운 동료들을 돕는다. 사실 지인들은 그에게 “떠돌아다니지 말고 앞가림 좀 잘 해라.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뭘 나서서 하느냐”는 말을 자주 던진다. 자신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에 하는 말이라 가만히 듣기만 한다는 그. 다만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됐고, 벗어나면 좋은데 벗어나질 못하니까 그저 받아들인다”는 말은 속으로 삼킨다.

“이제 나이도 많이 들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때가 따로 있겠어요? 어떻게 바꿔 보기는 어렵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행동하고 돕고 싶어요. 제 힘이 부족하더라도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요. 또 제가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누구도 당하거나 겪어 보지 않으면 잘 모르겠지만, 내 친구이고, 나와 함께했던 이들이라 생각하고 실제 만나 보면 우리를 좀 더 이해하고 친해지고 함께 나눌 수 있어요.”

그는 꿈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기회가 되면 텃밭을 가꾸고 많이 힘들 때 위로가 돼 준 노래 부르기도 다시 하고 싶다. 야학에서 노래반을 몇 학기 들었고, 노숙인 합창단도 했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못하게 돼 무척 아쉽다. 스트레칭도 하고 춤도 배우는 건강반도 꼭 다시 하고 싶다. 언제쯤 텃밭, 노래, 춤, 요리, 인문학 그를 기쁘게 하는 이 단순한 것들이 돌아올까.

홈리스행동 대문을 들어서면 "나는 게으름뱅이가 아닙니다. 가난은 가족의 책임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수나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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