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과 연대 단체, 대통령 집무실 앞서 신속 추진 촉구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과 연대 단체들이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외쳤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을 위한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이하 지구지정)이 기한 없이 늦어지는 가운데, 이들은 11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주민결의대회를 열고 신속한 지구지정과 주거권 보장을 정부에 촉구했다.

정부는 2020년 영등포, 대전, 부산의 쪽방 지역을 공공주택 사업으로 정비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2021년 2월 5일 국내 최대 쪽방 밀집 지역인 동자동 쪽방도 공공개발을 약속했다. 바로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이다.

이는 정비기간 동안 쪽방 주민들에게 임시 이주 공간 및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사업 완료 뒤 재정착하도록 하는 공공주도 순환형 쪽방 개발이다. 주거권 운동 단체들에 따르면 특히 정부의 동자동 쪽방 공공개발 계획은 뜻밖의 소식으로 쪽방 주민들의 큰 환영과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공공개발 위한 실행이 늦어지고 있다.

당초 국토부의 계획은 2021년 12월까지 지구지정 완료, 2022년 보상 기본조사 및 보상계획 수립, 2023년 1월부터 임시 이주와 공공주택 착공이었지만, 사업의 첫 단계인 지구지정을 하지 않고 있다.

지구지정을 위해서는 중앙도시계획위원회 논의도 필수로 거쳐야 하지만 이 또한 진행되지 않았다.

11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지구지정 촉구 주민 결의대회. ⓒ김수나 기자
11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지구지정 촉구 주민 결의대회. ⓒ김수나 기자

주거권 운동 단체들은 공공개발 계획 발표 6-7달 안에 지구지정된 영등포와 대전 쪽방촌과 비교해도 동자동 지구지정이 매우 늦다고 지적한다. 이들에 따르면 국토부는 쪽방촌 공공개발이 사유재산을 침해한다며 강력 반대하는 토지, 건물 소유주들의 주장에 따라 민간개발 계획을 검토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현재 쪽방촌 주민과 연대 단체들은 주민 주거권 보장, 사업 추진 과정에 주민 당사자 참여 보장, 주민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임대주택 공급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민간에 이윤이 집중되는 민간개발 방식이 아닌 애초 계획대로 공공주택 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본다. 그간 민간개발 방식이 주민을 내쫓고 법에 규정된 이주, 주거 대책마저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의 주거권을 확실히 보장하는 것은 공공개발뿐이라고 본다.

또 주민과 주민 자치 조직이 단지 개발사업의 시혜와 공급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인정돼야 온전히 주민을 위한 개발계획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택 추진 티에프(TF)에는 국토부, 서울시, 서울주택도시공사, 용산구, 쪽방상담소,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들어가 있다.

동자동 쪽방 주민과 연대자 등 이날 참가자들은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 보장을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동자동 쪽방 주민과 연대자 등 이날 참가자들은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 보장을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쪽방 주민의 주거권 보장은 공공개발뿐

이날 주민결의대회에는 동자동 쪽방 및 양동 쪽방 주민들과 민주노총서울본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학생들,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쪽방 주민들은 그간 민간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삶을 반복해야 했던 경험을 들며 취약계층의 주거권 보장은 공공개발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광헌 씨(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는 “동자동이 공공개발된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다. 청와대, 국토부 어딜 찾아가도 그때 몇 마디뿐이었다”면서, “건물주들은 우리가 돈 몇 푼 받아먹으려 한다고 하지만 이 사업은 정부가 먼저 하겠다고 한 것”이라면서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재개발과 쪽방 주민에게 임대주택 공급이 확정된 양동 쪽방촌 주민 박종만 씨(양동쪽방주민회 부위원장)는 공급될 임대주택의 주거 면적이 14제곱미터(약 4.2평)에 불과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민간개발은 여러분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공공개발로 돼야 한다. 새 정부 출범했으니 새 정부는 어려운 사람들 위해서 힘써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쪽방을 상징하는 종이 상자 집에 쪽방 주민들의 요구안이 붙어 있다. ⓒ김수나 기자
쪽방을 상징하는 종이 상자 집에 쪽방 주민들의 요구안이 붙어 있다. ⓒ김수나 기자

이에 대해 박승민 씨(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민간개발이 확정된 양동에서는 2019년부터 주민들을 내보냈는데 주민들은 이주비도 없고 아무런 법적 보장도 받지 못하고 방세 두 달 치만 받고 나갔다”면서, 남은 주민들에게 공급될 임대주택의 크기에 대해 개발자 측은 ‘쪽방에서도 사는데 여기서는 왜 못 사느냐’며 주민들을 열악한 기본 환경으로 이주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개발될 때마다 쫓겨났던 아픔 때문에 민간개발을 신뢰할 수 없다. 안정된 주거는 공공에서만이 책임질 수 있고, 가난한 이들은 공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면서, “공공개발을 열망하며 기다리는 주민들을 무책임하고 무관심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정호 씨(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는 환경의 열악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질환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다면서, “건물주, 토지주, 부동산 이런 사람들은 취약계층의 환경은 신경도 안 쓴다. 돈만 받아 가면 되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거리의 홈리스, 배고파서 줄 서는 사람들, 추위에 떨며 방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돌아가는 이들, 여름에 40도가 넘는 쪽방에서 선풍기마저 뜨거운 바람이 나와 거리로 나와 상자를 깔고 누워 있는 이들도 모두 우리 국민”이라면서 조속한 동자동 지구지정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이 "개발이익보다 주거권이 먼저", "주거원은 인권" 등을 외치는 모습. ⓒ김수나 기자
참가자들이 "개발이익보다 주거권이 먼저", "주거원은 인권" 등을 외치는 모습. ⓒ김수나 기자

열악한 쪽방촌, 주거권만이 아닌 건강권의 문제
장례를 위한 애도조차 막는 집값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권은 단지 주거만이 아닌 이들의 건강 및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제대로 된 주방 시설이 없고, 냉장고조차 놓을 수 없어 즉석식품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는 주민들. 햇볕이 들지 않고 낮과 밤의 시간 변화를 알 수 없어 각종 수면장애와 우울증을 동반하는 창문 없는 작은 방. 움직임을 제한해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키는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좁은 공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배수와 환기시설. 바퀴벌레와 쥐가 들어와 각종 세균과 질병에 노출된 방. 한층 전체가 쓰는 공동 화장실과 공동 세면실과 코로나 감염의 문제. 집주인조차 수리를 꺼리는 낡은 건물....

지난 2020년부터 쪽방촌 방문 진료를 하고 있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임성미 의사는 쪽방의 열악함을 하나씩 꼽았다. 그는 “방문 진료를 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취약한 주거의 문제가 주거 문제로 끝나지 않고 연쇄적으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까지 취약하게 만들고 있음을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자동 공공개발은 단지 주거의 문제만이 아닌 주민들의 건강권 확보의 문제이며 인간답게 살 권리와 연결된 문제”라면서, “지구지정이 늦어지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인 의식주조차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민간개발업자와 토지 소유주들, 이를 방관하는 대한민국 정부 모두의 책임이다. 방관하지 말고 인간답게 살아갈 곳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동자동 쪽방 주민들과 연대하고 있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학생들의 노래와 발언이 진행됐다. ⓒ김수나 기자
이날 동자동 쪽방 주민들과 연대하고 있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학생들의 노래와 발언이 진행됐다. ⓒ김수나 기자

동자동 쪽방촌에서 현장 연구 중인 방예원 씨(연세대 문화인류학과)는 “현장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매일 이웃의 문을 두드리며 식사하셨나 안부를 묻지만, 정작 자신의 아픈 모습은 감추고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삼오오 모여 집을 정리하고 한두 달 지나야 겨우 장례를 치르며 모두가 애도하는 사이에도 집값 떨어진다며 방 내놓을 생각만 하는 사람들 있다. 오랜 시간 동자동에 살아온 주민인데도 주민으로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주민들은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고자 분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경제적 번영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을 말하기에 앞서 “인간답게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 용산 집무실 목전에 있는 동자동의 상황을 묻고 해결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국토교통부가 약속한 공공개발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국토교통부가 약속한 공공개발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한편 이동현 활동가(홈리스행동)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구지정에 대한 구체적 답변 없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한 상태다.

지구지정 촉구에 대한 주거권 운동 단체들의 질의에 대해 국토부는 지난 3월 21일 “현재 동자동 쪽방촌 정비를 위한 지구지정 추진 단계로 일정 요건을 갖춘 쪽방 주민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할 예정이며, 단지 내 쪽방 주민들의 자활, 상담 등을 지원하는 복지시설 및 자치조직 활동공간 등을 마련해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재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며, “향후 주민 간담회, 재정착 희망 여부 등을 포함한 설문조사 등을 통해 주민의 의견을 지속 수렴하여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2022 홈리스주거팀이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한 데 대해서는 9일, 지구지정 등 공공개발 건에 대한 답변은 일절 없이 “당선인과의 면담은 인수위 운영 일정상 어렵다”고 답한 상태다.

이날 주민결의대회는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동자동사랑방,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2022 홈리스주거팀이 주최했다. 2022 홈리스주거팀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등 15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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