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미국 교회와 코로나19- 장기풍

벗님들과 요즘 느끼는 저의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미국 교회와 코로나 바이러스

3월17일, 오늘은 세인트 패트릭 데이입니다. 한국에서는 성 파트리치오라고 부르지요. 매년 이날 미국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도시마다 성대한 퍼레이드를 펼칩니다. 초록색 옷과 킬트(kilt, 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 지역의 전통 남자 주름치마) 차림의 악대를 앞세우고 클로버 깃발을 휘두르며 행진합니다. 전통적인 뉴욕 맨하탄 퍼레이드는 아침 일찍부터 연도에 많은 사람이 나와 기다리고 TV에서 생중계합니다. 그런데 오늘 모두 사라졌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퍼레이드는 물론 모든 행사가 취소됐습니다. 각급 학교도 휴교하고 극장, 식당도 영업을 중단했습니다. 매년 2000만 관광객이 몰리는 맨하탄 거리가 처음으로 한산해졌습니다. 모든 식당이 문 닫고 맥도날드도 드라이브 스루만 오픈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뒤늦게 미국을 강타했지만 사실은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지난 겨울 1500만 명이 감염되어 1만 4000명이 사망한 ‘미국 독감’ 후유증이 가시기 전에 종류가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내습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다루는 트럼프 행정부도 대책 없이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 트럼프 대통령 별장 호화파티에 초대된 브라질 대통령 등 4명이 확진판정 받았고 “검사받을 필요가 없다”고 뻗대던 트럼프도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코로나 검사를 받았습니다. 특히 오바마 시절 구축했던 질병관리 전국 시스템이 트럼프 취임 후 해체되어 전국적으로 체계적 방역대책을 세우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한동안 코로나19를 미국 독감과 구별하지 않고 코로나 환자를 격리는커녕 마구 휩쓸려 다녀도 막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많은 미국인조차 미국정부의 코로나19 현황발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 가톨릭교회도 한동안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미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사순절이 시작된 재의 수요일 무렵입니다. 그때까지는 성당에서 기침하는 사람이 있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Oh, My God!'은 “하느님 맙소사”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한 말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뜻으로 점잖은 사람들은 피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미사에 참례한 어느 신자가 재치기를 하자 두 곳에서 동시에 “Oh. My God"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만큼 신자들이 민감해진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언론에 본격 거론되기 시작하자 사순 첫째 주부터 각 교구마다 미사에 대한 지침이 내려졌습니다. 미사 중 평화의 인사는 아예 생략했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거의 악수로 인사하기 때문입니다. 또 양형 영성체가 사라지고 성당 입구 성수그릇도 비워졌습니다. 사순 2주일에는 미사참례 신자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3월15일 사순 3주일에는 아예 5분의 1정도로 격감했습니다. 내가 다니는 뉴욕 롱아일랜드 성 이냐시오 로욜라 성당 주임신부는 맥 빠진 미사 분위기를 살리려고 미사전례를 라틴 창미사로 바꾸는 등 안간 힘을 쏟았지만 반주자가 독창하는 라틴성가를 따라하는 사람도 몇 명 안 돼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거나 코로나에 대한 집단공포심을 물리치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평소 친한 신자끼리 인사하러 다가가 손을 내밀면 화들짝 놀라 신발이나 팔꿈치를 맞대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한국처럼 미사를 중단한 것은 아니지만 성경학교 등 모든 단체회합이 취소되고 신자들 사이 분위기마저 삭막해졌습니다. 차라리 미사와 활동을 중단한 한국 교회가 부러울 정도입니다. 어쨌든 16일부터는 이곳 교구도 미사를 중단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쯤 되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와 사순절에 맞춰 교회에 침투한 ‘악마의 바이러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역교회는 물론 가톨릭교회 본산인 바티칸까지 사실상 폐쇄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힘든 시련의 시기입니다. 때마침 세계 많은 나라 가톨릭교회가 한시적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사순절기간 속죄를 위한 참회의 시간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과연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했는지, 정의를 구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내적 참회를 통해 우리 모두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면 참으로 구원의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악마에 의한 고통의 시련이 끝나면 부활 대축일 승리의 ‘알렐루야‘를 노래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회개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대 앞 보라색 보 위에 놓인 가시관이 현재 가톨릭교회의 시련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속죄와 구원을 위한 참회와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입니다. "주여,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