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조현철]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의 힘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오는가? 말이 ‘진선미’를 표현하고 전달한다고 보면, 말의 힘은 말 그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전제가 있다. 말은 발화자, 곧 말을 하는 사람의 삶과 결합되고 일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은 자체의 힘을 순식간에 잃어버린다. 사상누각과 같다.

지난 여름의 ‘조국 사태’는 말의 이런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조국’이 세상을 향해 쏟아냈던 좋은 말, 멋진 말, 감동적인 말, 정곡을 찌르는 말, 그 수많은 말. 그런데 삶이 말과 판이하니, 삶이 말을 배반하니 그 많은 말이 한순간에 힘을 잃었다. 아니, 파괴적 힘으로 변했다.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분열과 혼란을 일으켰다. 진실이 아니라 ‘진영’만이 중요해졌다.

다시 성탄을 지내며, ‘나자렛 예수’를 생각한다. 요한 복음은 그분에 관해 이렇게 알려 준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그 말씀을 ‘살았다’. 말씀은 곧 진리이고 사랑이다. 예수는 시종일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했다. 예수의 삶이 사람들에게 힘이 있었다면, 심지어 구원이었다면, 그것은 말과 인격이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말씀이 된 사람으로 충실히 살았기 때문이다. 이 일치는 거저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 유혹을 겪은 ‘사람’으로서, 그 유혹을 이겨 냈다.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분이었다.(히브 4,15) 예수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히브 5,8)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 맹자는 ‘의'(義)가 ‘수오'(羞惡)의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보았다. ‘수'(羞)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자세를 말한다. 반성하고 성찰하는 마음이다. '오'(惡)는 공동체나 사회의 잘못된 점을 미워하는 사회적 비판을 뜻한다. ‘의’가 서려면 이 두 가지 자세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에만 집중하면 사회적 사안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 반면에 ‘오’에만 열중하면 삶이 말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오’는 온갖 화려함으로 치장하고 활개를 치지만 진솔한 ‘수’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우리 현실의 문제가 아닐까.

'목자들의 경배', 맛디아스 스톰.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올해 ‘기후파업’, ‘기후비상’이라는 말의 사용 빈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모두 ‘기후위기’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음을 암시하는 긍정적 변화라 할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대응으로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원인 석탄발전에 대한 비판과 에너지 전환에 대한 비판과 요구가 무성하다. 하지만 무성한 기후위기의 담론 속에서, 정작 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우리의 삶의 양식을 개인적으로 반성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은 얼마나 될까. 기술로 해결만 된다면, 지금까지 추구해 온 편리와 풍요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지배적인 듯하다. 그래서 에너지 전환으로 현재의 삶의 양식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논쟁의 초점이 되는 수가 많다. ‘조금 더’가 아닌 ‘조금 덜’이라는 말은 인기가 없거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렇게 된다면, 설혹 기후위기를 극복한다고 해도, 기후위기의 근원인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기 위한 사람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계속 극도의 긴장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불안한 삶도 계속될 것이다. 기후위기의 비판과 대응에는 ‘조금 더’를 ‘조금 덜’이라는 삶의 양식으로 변화시키려는 반성과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말과 삶, 말과 현실이 동떨어지면 어떤 경우든 말은 힘을 잃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그곳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했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의 절반이 지난 지금, 비정규직 실태는 공공부문에서도 거의 그대로다. 자회사를 설립해서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는, 편법 정규직 전환이 난무할 뿐이다.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손에 쥐고도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비정상적 현실이 정상으로 행세하고 있다. 말과 삶 말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크다.

최근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의 부제는 ‘A man of his word’다. ‘자기 말의 사람’, 곧 자신의 말을 지키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영화가 보여 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힘은 다른 데 있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힘은 바로 말과 인격의 일치에서 나온다. 지극히 평범한 말이 지극히 비범한 힘을 갖게 되는 까닭은 바로 이 일치에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성탄을 기리는 이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육화의 삶, 자신의 말을 살아가는 삶으로 초대하신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하도록 요청하신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서강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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