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본 정의와평화협의회 의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

일본 주교회의 정의와평화협의회 의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삿포로 교구장)가 한일관계 회복과 양국간 평화를 위해서 각 정부는 경제가 아니라 역사와 인권을 중심으로 문제를 다시 봐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양국이 새로운 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담화에서 한일 갈등의 근본적 책임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있다고 확인한 바 있는 가쓰야 다이지 주교는 10월 9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주관한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가쓰야 주교는 학술대회에 앞선 8일,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관계 회복과 평화를 위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특히 비폭력에 의한 평화의 실현을 호소했다.

그는 일본 주교단은 1986년 일본 교회가 처음으로 전쟁의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부터 현재까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일본 주교단은 과거사와 침략의 책임, 그리고 과거의 침묵과 이에 동조한 책임에 대해 분명하게 사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가쓰야 주교는 지난 담화문 내용이 보도된 뒤, 일본 교회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특히 삿포로 교구 사무국은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적어도 내가 만나는 신자들, 또 일반 시민 대부분은 침략 전쟁과 식민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알고 있다”면서, 일본의 일부 극우 세력,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마치 일본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알려지는 것에 크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의와평화협의회 의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 ⓒ정현진 기자

한일 관계 회복, 경제적 관점 아닌 역사와 인권 관점 필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돈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일본 정부의 문제는 인권이나 역사가 아니라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이고, 그래서 이 문제는 인권, 역사적 차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돈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진심으로 사과받았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가쓰야 주교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 정부가 인권 문제를 중심에 둬야 한다면서,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는 돈,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사죄해야 할 문제이며, 피해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또 하나 필요한 태도는 각자의 주장과 요구에 갇히지 말고 그로부터 벗어나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면서, “한국은 일본에, 일본은 한국에 다가가 상대의 아픔과 문제에 공감하고 그러한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상호 존중과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헌법 9조, 가장 교회적인 평화 그 자체
또 다른 전쟁 결과인 '조선적 재일동포'와 '조선학교', 차별 이유는 아베의 대북 태도

“일본 교회에서 정의와 평화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헌법 9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아베 정권이 말하는 무력에 의한 ‘적극적 평화’는 교회가 말하는 비폭력을 통한 평화와 정면으로 배치된 것이고, 평화헌법 그 자체가 교회가 가르치는 평화입니다.”

일본 교회는 오랫동안 이른바 평화헌법이라는 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본 헌법 9조는 “국권 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과 행동을 영원히 포기하며,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일본 정부에 의해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결의이자, 군국주의에서 벗어난다는 국제적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2015년 안전보장관련법을 가결시켜 집단적 자위권, 즉 다른 나라 분쟁에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헌법 9조 수정안을 만들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동북아 평화라는 측면에서 이는 일본만이 아니라 주변국 역시 당사자가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다쓰야 주교는 “군비 증강을 통해서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가고자 하는 것이 아베 정부의 목적이지만 교회가 추구하는 평화는 철저하게 비폭력을 통한 평화”라면서, “교회는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묻고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와평화협의회 총무 미츠노부 이치로 신부(예수회). ⓒ정현진 기자

한국과 일본간 역사에서 인권을 통해 다시 돌아봐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는 ‘조선적 재일동포’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도 있다.

최근 조선학교 차별정책의 하나로 무상교육에서 배제하고 이를 재판부가 합법이라고 판결하는 상황에 대해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미츠노부 이치로 신부(예수회)는 이 문제 역시 아베 정부가 북한을 적으로 보는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츠노부 신부는 고이즈미 총리 시절 일본이 남북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베 정부 이후 모두 무너졌다면서, “현재 남북과 북일 문제는 일본이 양측과 교류하면서 노력해야 하는 면이 있지만, 현재 일본은 그 역할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은 북한을 적으로 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조선학교를 적으로 두고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사법부조차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정당하다고 판결한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현재 일본 가톨릭교회 몇몇 단위는 인권 차원에서 지역의 조선학교를 지원하고 연대하고 있지만, 일본 가톨릭 교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접근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주교회의 정의와평화협의회는 지난 8월, 11월로 예정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 교황에게 일본 사회의 문제를 정리한 문헌을 전달한 바 있다.

정의와평화협의회는 “일본 천주교 정의와평화협의회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드리는 요청”이라는 제목의 문서에서 “헌법 9조와 평화주의의 위기, 한일관계 악화, 북핵폐기와 핵발전 철폐,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 피해자 구제, 오키나와의 인권침해 문제, 사형제 폐지 문제” 등 6가지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달했다.

가쓰야 주교는 이 문서의 배경에 대해, “교황이 일본이나 동북아 평화와 관련된 문제를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일본 교회 차원에서 한번 더 일본과 동북아 문제를 생각할 수 있도록 문서를 냈다”며, 이는 동북아 안보 문제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바라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일본을 방문해, 나가사키, 히로시마, 도쿄 등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신자들을 만나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교황의 일본 방문은 38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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