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조현철]

이 나라에 온통 ‘조국’ 문제 밖에 없는 것 같더니, 청와대가 이제는 민생 행보에 나서겠다고 한다. 좋은 말이다. 민생은 곧 ‘민'(民)의 살림살이고 살림살이의 핵심은 ‘민’의 노동이다. 그러니 민생 행보는 시혜성, 생색내기용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정당하고 떳떳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정당한 노동 환경의 구현이야말로 민생을 챙기겠다는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기회만 되면 ‘사법개혁’을 말한다. 사법개혁, 정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법개혁을 외치기 전에, 개혁을 왜 하려는 것인지, 개혁을 하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곰곰이 따져 묻고 반성부터 해야 한다. 사법개혁은 결국 법의 정의로운 적용과 집행을 위한 것이다. 개인의 정당한 권익을 보장하고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다. 민생이 그렇고, 사법개혁이 그렇다면, 이미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법적 판단이 난 사안들이 외면당하는 이 현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청와대는 여기에 먼저 대답해야 한다. 수많은 노동자가 억울한 피해자가 되고 있는 이 현실, 정의가 풍지박산 난 이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청와대는 여기에 먼저 대답해야 한다.

민생을 살피고 사법개혁을 하겠다는 청와대와 정부가 가장 먼저 가 봐야 할 곳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고, 한국GM 비정규직 해고자들이다. 모두 불법파견으로, 직접고용으로 법원 판결이 났지만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런 현실을 방치하는 정권이라면 사법개혁을 아무리 한다고 한들 힘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한국도로공사는 공기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초로 방문하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했던 그런 공기업이다. 그런 공기업이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직접고용 판결을 받았으면, 그 공기업의 대표는 사과부터 했어야 한다. 그 다음, 판결대로 이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이 나고도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의 농성은 계속되고, 도로공사 본사에는 250여 명의 노동자들이 20일 넘게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6월부터 문제되고 있는 톨게이트요금수납노동자 문제로 9월 30일 '톨게이트직접고용대책위'를 결성했다. ⓒ한경아

도대체 누가 이 상황의 ‘원인 유발자’인가? 한국도로공사 경영진이다. 누가 피해자인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온 노동자들이다.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나오고 있는데도 도로공사는 서둘러 자회사를 만들었다. 이렇게 일을 꼬이게 해 놓고 직접고용 확인을 받은 304명의 노동자들은 기존 업무가 아닌 다른 보조 업무로 전환 배치한다고 위협한다. 나머지 1200명 노동자들도 내용이 동일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끝까지 판결을 받아 보자며 버티고 있다. 사장 면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한다. 이른바 ‘구사대’를 동원하여 여성 노동자들이 상의를 벗고 저항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이며 위협한다. 옆에 있는 경찰은 방관으로 협조한다. 물과 전기를 끊어버린다. 공기업이란 곳이 이런 반인권, 반노동의 후안무치한 행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정부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최소한 공공부문은 비정규직 없애겠다는 약속을 한 청와대가 이런 공기업, 이런 정부를 보고도 두 손을 놓고 있다.

민생을 팽개치면서 민생을 살피겠다는 정권, 사법적 불의를 외면하면서 사법개혁을 외치는 정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되뇌는 이른바 촛불정권의 뻔뻔함과 이중성이 정말 놀랍고 실망스럽다. 이런 현실에서 사법개혁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직접 대답을 들어 보고 싶다. 개혁, 개혁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국민을 위한 개혁인가? 그 국민들,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 있다.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 있다. “그러니 이제라도 청와대에서 나오라! 직접 가서 노동자들을 만나라!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있는지 확인하라! 법을 지키고 문제를 해결하라!” 이것은 법의 요구만이 아니다. 상식의 요구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로공사가 틀렸다. 정부가 틀렸다. 청와대도 틀렸다. 도로공사 수납노동자들이 옳다. ‘불법파견, 직접고용’이라는 법원 판결을 받고 ‘법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모든 노동자가 옳다. 청와대는 이번 기회가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이고 반인권적인 노동 현실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옳은 것을 실현하는 것이 정의다. 시민종교사회도 이 불의한 사태를 해결하고 정의가 구현되는 진정한 개혁을 이루는 데 힘을 모을 것이다. 푸른 하늘,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을 농성 중인 노동자들, 단식 중인 노동자들도 모두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꿀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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