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월 13일(주님 세례 축일) 루카 3,15-16.21-22

유년설화라고 알려진 부분에서, 루카는 요한과 예수님을 평등하게 다룬다.(루카 1-2장) 그리고 나서 루카는 성인이 된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긴 문장을 할애하고 오늘의 구절 앞부분에서 요한의 가르침을 요약하고 있다.(루카 3,1-14)

요한과 예수님

요한은 매우 강한 어조로 회심을 요구한다. 그는 당대의 권력가들과 부패한 사람들과 대립하기까지 한다. 요한의 기본 주제는 공의와 사랑의 실천이다.(3,7-14) 그의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 그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부각된다.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3,19)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로서의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한 자신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고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다.(3,16) 그의 참회의 요청과 세례는 단지 예수님의 증언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루카는 마태오와 마르코와 함께 이 사실을 두 번째로 강조한다. 구약을 보면, 불이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루카가 예수님의 세례를 간단하게 서술하는 부분도 이와 비슷하다. 루카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기 위하여 나자렛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마태오와 마르코를 비교) 루카는 단순하게 예수님이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3,21) 세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마태오의 경우와 다르게, 예수님과 요한 사이에 대화도 없다. 루카에게, 요한은 이미 끝난 과거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들, 예수님 뒤에 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은 세례자 요한의 차원을 간직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혀 모르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리는 선구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세례.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옳은 것을 행하기

이교도 코르넬리우스와 만난 뒤,(사도 10,1-33) 베드로는 이런 사실을 매우 잘 이해하게 된다. 베드로는 코르넬리우스가 정직한 사람이며, 사도가 가져온 복음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건은 베드로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사도 10,34)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 준다; 모든 민족들이 초대되었다.(사도 10,35) 그러나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나려면,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의” 증인들이다.(사도 10,37) 요한 이후, 예수님이 나타나고 그분의 메시지는 제자들의 선포에 중심 본질이 되고 있다.

“평화의 메시지”(10,36)를 선포한다는 것은 “의로운 일을 하는 것”(10,35)을 의미한다. 그리고 의로운 것의 온전한 의미는 해방이다. 이것은 주님이 이사야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주기 위함이다”.(이사 42,7) 이 익숙하고 영감이 넘치는 말씀은 루카 자신이 곧 이용하게 될 것이다.(루카 4,16-20) 이것은 예수님의 “구원의 계획”이라고 불린다. 예수님께 충실하다는 것은 오늘날의 억압에 관하여 이 해방의 계획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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