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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길[구티에레스 신부] 2월 3일(연중 제4주일) 루카 4,21-30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루카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하느님나라 선포 사명을 예리하게 미리 보여 주는 “구원의 프로그램”을 제시한 뒤 즉시 따라 오는 구절이다.

실현의 날

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구원과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루카 4,21) 그분의 나자렛 이웃들,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고(4,22) 알고 있다 해도 그분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외양 넘어 그 이상을 보지 못한다. 이러한 대조가 하느님나라 선포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즉 하느님의 선물은 보잘것없고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온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배움에 열려 있지 않으며 특히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이 올 때에 편협함과 시기 때문에 더 거부한다. 간결하고도 기품 있게 예수님의 대답이 나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4,24)

예수님의 이런 생각은 이어지는 구절들에 반영된다.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는 유대 백성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이교도 국가의 한 과부에게 보내진다.(4,25-26) 이렇게 하느님의 메시지는 주변, 변방으로부터 온다. 똑같은 일이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에게도 일어난다. 엘리사는 이교도인 한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해 주고 예수님의 청중들에게 경멸당한다. 선택된 백성이 아니라 이교도를 치유했다는 것이다.(4,27) 예수님과 같은 동포들은 메시지를 알아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밀어내고 벼랑에서 떨어뜨리려고 한다.(4,28-29)

신자들은 자주 하느님을 독점하려고 하고 심지어 하느님이 그들을 섬기게까지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로서 우리들은 이와 똑같은 유혹에 쉽사리 떨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새로운 것에, 특히 별로 중요하지 않고 소외된 쪽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다.

사랑의 길 (이미지 출처 = Unsplash)

사랑의 최우선성

예레미야는 수줍은 젊은이였고 말을 할 때도 더듬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를 예언자로 선택한다.(예레 1,4-5)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는 예레미야는 항의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힘이 예언자의 개인적 자질로부터 오기보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보게 한다.(1,17-18) 예언자의 역할은 하느님의 사랑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 사랑은 무엇을 세우거나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항상 생명을 지향하는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 바오로의 탁월한 표현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듯이, 사랑은 영원히 지속된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궁극적인 중요성을 주는 것이다. 사랑은 “가장 훌륭한 길”(1코린 12,31)이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가치를 가질 수 없다.(13,1-3) 사랑은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섬기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를 강요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냥 제공될 뿐이다.(13,4-7) 때때로 우리는 다른 이들을 섬기기보다 우리의 양심에 부담을 덜기 위하여 결단을 감행한다. 섬김은 우리 존재가 다른 사람들이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기를 요구한다.

사랑은 하느님께 그 기원이 있으므로(13,13) 오기를 기다리고 달게 받는 것이다. 요한 사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사랑하는 구체적인 길을 어떻게 따를 것인지 찾아야 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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