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2월 23일(대림 제4주일) 루카 1,39-45

예수님의 탄생 축제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의미는 여인으로서 마리아의 조건과 그의 신앙을 기억하는 것이다.

두 여인의 수태

방문이라고 부르는 이야기는 두 임신한 여인들의 만남과 관련된다. 갈릴래아 여인인 마리아가 유다, 그의 뱃속에 있는 아들이 어느 날 거부당하고 사형 판결을 받게 되는 그 장소로 가고 있다.(루카 1,39) 마리아가 인사하자, 장차 엘리사벳이 낳게 될 그의 뱃속의 아이가 “기쁨으로 뛰놀았다.”(1,41.44) 이 일이 있은 뒤 금방, 아이의 엄마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아이의 기쁨-아이는 장차 세례자 요한이 되는데-은 루카 복음 1장에 나타나는 모든 사건들의 초점이 된다. 이제, 요한은 예수님을 위하여 자리를 만들고 있다. 기쁨이 구세주의 오심에 첫 번째로 응답하는 모습이다. 성탄을 준비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두 겹의 축복을 말한다. 중요한 발현 때에 자주 그러는 것처럼, 루카는 엘리사벹이 “성령으로 가득 차”(1,41) 있다고 강조한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여인들 중에 가장 복된”(1,42)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마리아는 여인으로서 선택되고, 여인으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 이 사실은 찬미의 두 번째 소절에서 확인된다: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1,42)

믿음과 어머니됨

'마리아와 엘리사벳'.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문제가 되는 열매는 예수님이다. 그럼에도 복음 구절은 한동안 그분이 한 여인의 몸 안에, 그의 자궁 안에, 그의 살 속에 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마리아의 몸은 성령을 숨기고 있는 거룩한 방주가 되고 여성으로서 그의 조건(상황)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 준다. 마리아가 사촌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은 “주님의 어머니”(루카 1,43)를 알아본다. 이 주님의 어머니는 미카 예언자가 선언했던 대로(미카 5,2-5) 백성을 해방시키는 존재를 탄생시킬 여인이다.

루카는 물론 말할 나위 없이,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부활 뒤에나 깨달았던 내용을 엘리사벳의 입술 위에 미리 담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신앙의 고백이 (참으로 그렇다) 마리아의 어머니 위치를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벳에게 이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다.

마리아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역설하는 루카는 가장 근원적 문제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임을 보여 주고 싶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그의 아버지에게 선포되었고, 예수님의 탄생은 그분의 어머니에게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여인,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여인으로 어머니로 인식한다. 복음 구절의 끝머리에,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그의 믿음 때문에(1,45)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기 때문에(히브 10,5-10) 복되다고 선포한다. 그 믿음은 마리아의 몸속에서 육화된 믿음이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가 가진 믿음도 실망 한가운데에서 희망의 메시지로, 폭력과 불의의 죽음들 한가운데에서 생명의 메시지로 일상생활 속에 현존해야 한다. 이것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기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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