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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의 하느님[구티에레스 신부] 1월 20일(연중 제2주일) 요한 2,1-11

나타남을 의미하는 주님의 공현과 사순시기 사이에, 우리는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나타나는 신비를 따라가고 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매우 상징적이다. 즉, 하느님께서 결혼식과 잔치 한가운데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이름

바빌론 유배 이후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지치고 버림받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예언자는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간직한 “새로운” 것들을 말해야 할 긴급함과 성급함을 느낀다. 즉, 새로운 이름,(이사 62,2) 새로운 계약에 관하여. 여기에서 이사야는 결혼이라는 상징을 쓰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자주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새로운 관계가 지니는 온화함, 친밀함, 애정을 말하기 위하여 쓰여지는 상징이다. 하느님은 경직되거나 독재적인 하느님이 아니고 부드러움과 열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그분 백성의 사랑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신랑이며 친구 같은 분이다.

이 주제를 뽑으면서, 요한 복음은 단지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징표들” 중의 첫 번째 징표이며 요한 복음사가의 중심주제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사건은 매우 의미가 풍부하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혼인잔치에 초대되었다.”(요한 2,3) 아니면 예수님이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분은 그분을 알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예수님의 하느님은 교회 안에서나, 장엄한 경치로 둘러싸인 산꼭대기 위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혼인 잔치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나타난다. 하느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잔치를, 새로운 동맹을 준비하고 계신다. 상징으로 제시되는 것은 때가 오면(2,4) 온전한 실제로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그 전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새로운 관계다.

포도주 (이미지 출처 = Pixabay)

좋은 포도주

요한은 예수님께서 “정결례”(요한 2,6)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를 채우라고 일꾼들에게 시켰다고 말한다. 물과 정결예식은 예수님 당대의 어떤 종교적 관심을 말해 준다. 그때부터, 종교는 법규와 끊임없는 정화예식(그들의 쓸모없음을 나타내는 상징) 혹은 징벌과 죄책감의 두려움으로 따랐던 가르침에 대한 복종 그 이상이 아닐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요한사가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내용이다. 즉 예수님의 현존은 이 새롭고도 다른 하느님의 출현이라고. 하느님은 두려움과 징벌의 하느님이 아니다.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희생제물을 기뻐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가까이 계시고, 잔치에서 우리와 함께 기쁨과 걱정을 나누시는 하느님이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좋은 포도주”가 나왔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종교는 우리가 하느님의 기쁨을 나누기 때문에 기쁨으로 가득하고 잔치 분위기가 될 것이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실 것이다.”(이사 62,5)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하느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간다. 하느님께서는 일치와 다양함이 병존하는 교회를 세우신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시기”(1코린 12,7) 때문이다. 공동체가 믿는 하느님처럼, “그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공동체는 쉬지 않을 것이다.(이사 62,1)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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